지난 10월 27일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있었던 "고 정순규 님 2주기 추모 기자회견"에서 정석채 씨가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서 있다. ©장영식
지난 10월 27일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있었던 "고 정순규 님 2주기 추모 기자회견"에서 정석채 씨가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서 있다. ©장영식

고 정순규 씨는 경동건설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그이는 2년 전에 부산 남구 문현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하고 사망했습니다. 고인은 구조물 공사 협력업체인 (주)JM건설 소속 노동자로 옹벽 벽체 거푸집 해체작업 중에 추락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 다음 날인 10월 31일 사망하였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이의 진상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건조사 과정에서부터 각 기관(경동건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부산지방경찰청)들이 재해 발생 원인을 다르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검찰은 부산지방고용노동청과 경동건설의 의견을 바탕으로 기소하였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유가족들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재해 발생 원인의 본질을 흐리며, 집행유예 등의 솜방망이 처분을 하였습니다. 노동부 등 관련 기관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들이 고 정순규 씨의 2주기를 맞아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장영식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들이 고 정순규 씨의 2주기를 맞아 추모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장영식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들은 고 정순규 씨 2주기를 맞아 11월 1일 오후 3시 부산가톨릭센터 사제관 경당에서 추모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이날은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날이었습니다. 추모 미사에서 천주교 부산교구 성소국장 김인한 신부는 강론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이야기를 하고, 산재노동자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의 아픔에 우리가 책임이 있다는 것이고, 그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고, 우리 이웃의 아픔임을 잊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시대적 양심의 기준입니다”라며 “우리가 이 미사를 함께 봉헌하는 것은 (정순규)미카엘 형제를 기억하고 또한 그 아픔에 함께하고, 또한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함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김인한 신부는 “세상의 무지와 망각보다 우리들의 사랑과 연대가 더 강하다는 것을 기업과 자본의 무관심보다 우리들의 기도가 더 강하다는 것을 믿고 있고, 이렇게 함께 모여서 확인하고 있습니다”라며 모든 이의 기도와 연대의 힘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성소국장 김인한 신부가 추모 미사 강론에서 "한 건설 노동자의 죽음 앞에 세상이 답한 것은 돈의 논리와 무관심이었다. 한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파하는 때에도 똑같은 답을 하였다. 그리고 한 노동자의 죽음에 '모른다'고 답하고 있다. 책임을 지려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한 사람의 생명앞에는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며 세상의 무관심을 질타하였다. ©장영식
천주교 부산교구 성소국장 김인한 신부가 추모 미사 강론에서 "한 건설 노동자의 죽음 앞에 세상이 답한 것은 돈의 논리와 무관심이었다. 한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파하는 때에도 똑같은 답을 하였다. 그리고 한 노동자의 죽음에 '모른다'고 답하고 있다. 책임을 지려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한 사람의 생명앞에는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라며 세상의 무관심을 질타하였다. ©장영식

고인의 아들 정석채(비오) 씨도 인사말을 통해 “지난 2년을 버텨온 것은 기도와 연대의 힘 때문이었습니다”라며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 미사에 함께한 모든 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합니다. 이로 인해 사망하는 산재 노동자들이 연간 200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고 김용균 열사의 죽음 이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실습생 어린 학생에서부터 늙은 노동자들에게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산업 현장에서 죽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 억울하고 외로운 죽임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문정현 신부는 “한국 사회는 코로나보다 산재가 더 무섭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고인의 아들 정석채 씨는 "가족들이 지난 2년을 버텨 온 것은 기도와 연대의 힘 때문이었습니다”라며, 미사에 참석하신 모든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장영식
고인의 아들 정석채 씨는 "가족들이 지난 2년을 버텨 온 것은 기도와 연대의 힘 때문이었습니다”라며, 미사에 참석하신 모든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장영식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앞다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규제를 풀겠다고 말합니다. 그 누구도 노동자들이 노동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안전한 삶을 위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산재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화하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탄소 중립을 말하면서 지구를 살리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말하는 이가 없습니다. 사람과 자연을 생산과 착취의 도구로만 생각할 뿐입니다.

우리는 위령 성월을 보내면서 ‘죽임’으로 상징되는 야만의 시대를 박차고 나와 차별과 불평등 없는 ‘살림’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살림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장영식
우리는 위령 성월을 보내면서 ‘죽임’으로 상징되는 야만의 시대를 박차고 나와 차별과 불평등 없는 ‘살림’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살림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장영식

지금 우리는 ‘위령 성월’과 함께 고 정순규 씨의 2주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던 산업재해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죽음 앞에 남은 자들의 성찰이 없다면, 야만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죽임’으로 상징되는 야만의 시대를 박차고 나와 차별과 불평등 없는 ‘살림’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살림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 이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도 실린 글입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장영식 사진작가  han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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