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은 단풍 위에 푸르게 비치는데 메로나 마을의 수심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사라폰티의 근심어린 표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안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사라폰티의 반려자 차나드슈였다.  차나드슈는 메로나 마을의 심리상담사이다. 요즘 들어 마을 주민들의 심리상담 요청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는 최근에 스티브와 알렉스가 마을에 분란을 일으키는 발언을  일삼으며 불거진 사태와 무관치 않다. 마을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차나드슈가 아유르베다 허브티를 끓이고 있다. 아유르베다(ayurveda)는 '삶의 지혜'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5천년 이상 일상생활에서 활용 되어온 인도의 전통 의학이다. 삶을 자연과 동일시하며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세계를 균형 있게 하여 건강을 만들어가는 대체의학이다. 아유르베다 티( ayurveda tea)는 인도에서 요가나 명상할 때 마시는 요기 티(yogi tea)로서 요즘 차나드슈 부부가 즐기는 차이다. 몸과 마음이 무겁거나 기분이 처지고 가라앉을 때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차나드슈가 사라폰티와 아유르베다 허브티를 마시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세상에서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절대불변의 이치가 하나 있어요.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도 있다는 사실이지요. 메로나 마을이 그동안 평안했으나 이제 혼돈의 시기가  잠시 왔을 뿐이오.  세상 이치가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사라폰티에게  차나드슈는 믿음직한 존재였다. 무엇보다  마음이 맑고 순수했다. 늘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감싸주었다.  언제나 자신을 챙겨주고 배려하는 차나드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메로나 마을에 입주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차나드슈였다.

"그래요. 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빛과 어둠은 늘 교차하기 마련이지요. 염려해줘서 고마워요."

(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사라폰티는 아유르베다 허브티를 마시면서 심신의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의 평온을 바라는 대다수 주민의 기대와는 달리  메로나 마을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스티브와 알렉스가 메로나 마을에 거칠기 짝이 없는 말의 폭탄을 던진 바로 그다음 날 아동문학가이자 화가인 카밀라가 글을 올렸다.

"윤리위원회가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지도 문제지만 그와는 별개로  한시적 자격제도는 문제가 있는 제도라고 봅니다. 차제에 한시적 자격제도를  없애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커뮤니케이션 팀장인 토마스도 덩달아 글을 올렸다.

"지금이라도 한시적 체류자들에게 영구 입주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검토하면 좋겠어요."

사라폰티가 즉각 반박 글을 올렸다.

"한시적 체류 자격제도는 메로나 마을 초기에 주민들의 만장일치로 결의된 사안입니다. 이 제도는 마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며 메로나 마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러자  스티브가 사라폰티를 반박하며 기어이 사라폰티의 역린을 건드렸다.

"그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자가 윤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상 메로나 마을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윤리위원장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네요."

스티브의 뒤를 이어  발란스키도 가세했다. 발란스키도 한시적 체류자이다.

"윤리위원장은 영구직입니까? 5년 임기에 다시 연장하여 5년을 더해 근무하고 있으니 영구직이나 다름없습니다. 임기를 단임제로 고치고 윤리위원장은 즉각 사퇴해야 마땅합니다. "

사라폰티는 기가 막혔다. 메로나 마을 초기에 윤리위원장을 맡을 때에도 다비드와 마을 주민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맡게 된 것이다. 5년이 지난 후에 연임할 때도 더 이상 맡지않겠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어 어쩔  수 없이 연임하게 되었을 뿐이다.  

한시적 체류자들이 윤리위원장의 사퇴까지 거론하자 마을 주민들은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주민들은 속으로 분노를 삼키고 있었지만 그저 사태가 가라앉기를 기대하며 관망하고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스티브나 알렉스와 같이 활동하고 있는 어거스틴과 가브리엘이 각각 한 마디씩 말했을 뿐이다. 어거스틴은 스티브와 알렉스를 점잖게 나무라며 '도에 지나친 발언을 삼가하라'고 일갈했고,  가브리엘은 스티브와 알렉스의 주장이 모순된 것임을 지적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누구에게나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 날이 있고 슬픔의 날이 있으면 기쁨의 날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사라폰티에게 슬픈 날이었다. 분노보다는 슬픈 마음이 들었다. 사라폰티가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었다.  분노 어린 슬픔이었고, 슬픔이 깃든 분노였다. 사라폰티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사라폰티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기며 레이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사라폰티의 부름을 받고 레이첼이 사라폰티의 집에 도착했다. 사라폰티는 레이첼을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매우 총명하면서도 대담한 데가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스티브와 알렉스 등이 메로나 마을에 입주신청을 할 때도 그들이 의심스럽다며 끝내 반대표를 던진 사람도 레이첼이었다.

"레이첼이 그때 반대표를 던질 때는 레이첼이 좀 까칠한가보다 생각했어요. 미안해요."

"아닙니다. 저에게 그 사유를 질문했을 때 충분히  답변하지 못해서 제가 더  죄송하죠." 

사실 그때만 해도 레이첼이 확신을 가지고 반대표를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스티브나 알렉스가 극우 유태인 혐오 조직과 연계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정보를 받고 그들을 의심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유를 윤리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이제라도 그때 반대표를 던진 이유를 말해줄 수 있어요?"

레이첼이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사실 그때 정보기관에 근무하는 지인과 통화하다가 들은 게 있었어요.  스티브나 알렉스가 극우 조직과 연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였지요."

"그 지인이 어느 정보기관 소속인지 물어도 될까요?"

레이첼이 한때 모사드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는 슈만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둘러대는 수밖에 없다.

"지인이 어느 정보기관 소속인지는 저도 몰라요. 그저 가끔 개인적인 안부를 묻는 사이거든요."

사라폰티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 레이첼이 반대했기에 망정이지 저들이 영구입주자격을 얻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스티브와 알렉스의 과격한 발언으로 사라폰티를 포함하여 윤리위원들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사라폰티가 레이첼을 친자매처럼 안아주었다. 레이첼도 사라폰티를 위로하며 말했다.

"다 함께 힘을 합치면 그들의 사악한 의도를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힘내세요."

그런 가운데서도 메로나 마을의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이제 스티브와 알렉스를 비롯한 한시적 체류자들은 윤리위원들의 신상을 들먹이며 인신공격까지 하고 있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사라폰티가 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레이첼과 닉 그리고 카포팅어와 하니볼라가 참석했다.  사라폰티가 비장한 각오로 입을 열었다.

"한시적 체류제도에 대한 의문을 넘어 윤리위원회의 정당성과 명예를 훼손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할 텐데 좋은 의견 있으면 말씀하세요."

스티브로부터 처음에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바 있는 하니볼라가 질문을 던졌다.

"한시적 체류자들은 그렇다 치고 일부 주민들이 동조하는 현상은 심상치가 않습니다. 특히 카밀라는 은근히  그들 입장에 동조하던데 카밀라에 대해 아시는 분 있나요?"

유럽의 꿈 커뮤니티에서 그들의 동향을 잘 알고 있는 레이첼이 대답했다.

"카밀라는 동화작가이자 화가인데 미술전시회를 몇 번 개최한 적이 있어요. 그때 스티브 등의 한시적 체류자들이 자주 전시회에 참석하면서 가까워진 듯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닉이 의문을 제기했다.

"카밀라도 밉살스럽지만 커뮤니케이션 팀장인 토마스가 더 문제입니다. 커뮤니케이션팀장으로서 마을의 중심과 균형을 잡기는커녕 한시적 체류자들과 어울리면서 결국 그들에게 부화뇌동하여 그들과 한패가 되어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라폰티가 그에 대한 답변을 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토마스의 경우 그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친목을 도모하다가 그리된 것이니 너무 대놓고 나무라기는 어렵습니다."

 스티브로부터 뒷통수를 맞은 바 있는 하니볼라는  스티브의 의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언뜻 보면 저들은 한시적 체류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영구적 입주자격을 얻는 것이 목적으로 보이지만 영구자격을 준다고 해서 사태가 종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닉과 레이첼도 동의했다.

"그 의견에 저도 동의합니다. 대신  저들의 저의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저들은 주민을 선동하고 윤리위원회를 모함하고 음해하고 있어요."

커뮤니티를 함께 하여 스티브와 알렉스의 동향을 주시해왔던 레이첼이 말했다.

"스티브와 알렉스는 메로나 마을에 선전포고를 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처음에 디루카송과 하니볼라에게 의혹을 제기한 것도 결국은 윤리위원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봅니다."

닉이  맞짱구치며 말했다.

"맞아요. 특히 알렉스의 주장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는 윤리위원회의 존립 자체를 흔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의 목적은 어쩌면 마을 주민들을 선동하여 윤리위원회를 불신하게 만들고 자신들이 마을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게 아닐까요?"

다들 닉의 의견에 동의했다. 카포팅어는 한 마디도 발언하지 않고, 다른 윤리위원의 의견에 동조하기만 했다. 사라폰티도 카포팅어를 주시하고 있을뿐이었다.

1시간에 걸친 논의를 거쳐 윤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하였다.

-  스티브와 알렉스를 비롯한 한시적 체류자들이 윤리위원회를 비난하고 근거없는  모함을 하는 사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마을 차원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 이 사태를 방치할 경우 메로나 마을은 무너지고 말 것이 명약관화하다. 더 이상의 관용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윤리위원회의 결의를 끝으로 하여 사라폰티가 회의를 마무리했다.

"실로 메로나 마을 초유의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주에 열릴 비상대책회의에서 다비드에게  우리의 결의와 의지를 전달하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사라폰티가 카포팅어에게 슬며시 말을 걸었다. 카포팅어는 감염내과를 전공한 의학박사이다. 수년간 윤리위원으로 함께 활동해왔지만 그는 여전히 신비스러운  면모가 있는 인물이다. 

"회의하면서 한 마디도 말하지 않던데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봐도 돼요?"

카포팅어가 주위를 살피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사 중이라서 지금은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곧 찾아뵙고 조용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시지요."

카포팅어의 의미심장한 말에  사라폰티는 신경이 쓰였다. 카포팅어가 별도로 조사하는 게 있다면 그건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불길한 내용일지 혹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내용일지 그것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다. 몹시 궁금증이 일었지만 카포팅어가 보고할 때까지 참아야 한다

사라폰티는 새삼스럽게 푸른 하늘과 흰구름을 바라보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오후의 메로나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 참으로 평화로웠다. 윤리위원회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는 여전히 두텁고, 사태를 해결하려는 윤리위원들의 의지는 강력하다.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당당하게 임하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쩌면 아침에 남편 차나드슈가 타 준 아유르베다 허브티 덕분일지도 모른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사라폰티는 모든 게  잘 될거라 다짐하며 멋지게 펼쳐진 가을의 들녁을 감상하는 일상의 여유를 되찾았다.

 

<3부>  /  <끝>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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