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정취를 맛보며 다비드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찬바람에 단풍이 지긴 했지만 나뭇가지에 남아있는 단풍 덕분에 가을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비드는 오랫만에 마하트마 간디의 서적을 읽고 있었다.  행복에 대해 간디가 말한 문구가 오늘 마음에 와닿는다.  

- '행복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

동양의 어떤 사상가는 간디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간디는 현대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조명탄이다. 캄캄한 밤에 적전상륙을 하려는 군대가 강한 빛의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공중에서 타는 그 빛의 조명을 이용하여 공격 목표를 확인하여 대적을 부수고 방향을 가려 행진을 할 수 있듯이 20세기의 인류는 간디라는 위대한 혼을 쏘아 올렸고, 지금  타서 비치고 있는 그 빛 속에서 새 시대의 길을 더듬고 있다.’

간디를 보는 시각이 참신하고 간결했다. 간디를 '현대 역사의 조명탄'이라고 평가한 사상가는 코리아의 함석헌이다. 최근 한류 열풍이 불고 있어서 유럽에서도 코리아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다비드도 알고 있다. 간디 평전에는, 함석헌이 '한국의 간디'라고 불리는 인권운동가로서 '씨알 사상'을 주창한 사상가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씨알 사상에 대하여 '사람 안에는 영원불멸한 심적 생명이 있다고 보고, 사회적인 규정이나 신분 따위와 관계없이 사람  자체가 역사와 사회의 바탕이자 주체라고 보는 사상'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다비드는 씨알 사상이 메로나 마을이 추구하는 이념과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 

다비드가 보니 메로나 마을에서도 조명탄을 쏘아 올린 자가 있었다. 스티브였다. 다비드는 사람의 심성을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다. 스티브가 심성이 곱거나 맑은 사람이 아님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눈과 얼굴 전체에서 풍기는 이미지에서 어둠의 세계에 속한 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스티브가 제기한 의혹은 분명 메로나 마을을 향해 쏜 조명탄이다. 간디의 조명탄이 역사와 문명의 길을 밝히는 조명탄이었다면 스티브의 조명탄은 어설픈 분노를 앞세워 설익은 욕망을 표출하는 조명탄이다.

(출처 : pxhere.com)

 

스티브로부터 권력을 남용했다는 의혹을 받은 디루카송은 스티브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니볼라의 생각도 같았다. 디루카송은 마을 주민들에게 해명을 했다. 사실대로 밝히면 오해는 금방 사라질 거라고 믿었다. 

"스티브의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맹세코 하니볼라에게 스티브의 입주자격 심사에 영향을  행사한 일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러자 스티브는 바로 반박 글을 올렸다.

"행정실장 디루카송이 나와 시비가 붙은 이후에 윤리위원회는 나에 대한 한시적 체류 판정을 내렸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디루카송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이는 권력 남용에 해당됩니다. 아울러 남편의 청탁으로 입주자격 심사에 영향을 미친 윤리위원 하니볼라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스티브가 아무 근거도 없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스티브의 화살은  행정실장은 물론이고 윤리위원을 겨냥하고 있었다. 불똥이 윤리위원회에까지 번지는 기미를 보이자 윤리워원장이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윤리위원장은 여성 율사 출신인 사라폰티였다.  회의에는 행정실장 디루카송도 옵저버로 참석했다.

"스티브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밝히는 일이 우선입니다. 행정실장은 스티브와 시비를 붙은 날이 언제인지 그 사유가 무엇인지 확인해주세요. 하니볼라는 윤리위원회가 스티브와 면담한 날짜와 최종판정한 날짜를 확인해주세요. 나아가 최종 판정에서 스티브의 입주에 반대표를 던진 위원이 누구인지도 확인해야 할 겁니다."

윤리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하여 5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장 사라폰티를 비롯하여 레이첼과 닉, 그리고 하니볼라와 카포팅어였다. 진상을 확인한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티브가 행정실장과 시비를 붙은 것은 윤리위원회의 판정이 난 이후 2주일이 경과된 시점의 일이었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스티브의 입주에 반대를 한  사람은 행정실장  디루카송의 부인 하니볼라가 아니었다. 반대한 사람은 레이첼이었다.  따라서 디루카송이 스티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아내인 하니볼라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성립되지 않는다.   

입주 심사  당시에 스티브는 한시적 체류 판정을 받자 그에 대한 분풀이로 서류 제출과정에서 디루카송과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 따라서 디루카송이 스티브와 시비가 일어 윤리위원회의 판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윤리위원장 사라폰티가 사태의 전말을 알리는 공지를 올렸다.

"스티브의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스티브가 행정실장과 시비가 붙은 날짜는  윤리위원회의 판정을 받고 난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관련 자료는 따로 공개하겠습니다. 따라서 디루카송이 스티브에 대한 사적인 감정으로 윤리위원 하니볼라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스티브의 체류 자격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하니볼라는 스티브의 입주자격 심사에서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습니다."

윤리위원장 사라폰티의 공지를 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그제야 안심하기 시작했다. 윤리위원회는 마을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자들이다. 법률, 의학, 자연과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민들의 신뢰가 두텁다. 스티브의 의혹 제기로 흔들렸던 주민들의 민심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한 스티브가 행정실장 디루카송과 윤리위원 하니볼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거도 없이  의혹을 제기하였고 그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는 게 밝혀졌으니 사과는 당연한 수순이 아니겠는가.  스티브의 사과 한 마디면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라고 주민들은 생각했다.

스티브가 한동안 잠잠하여 마을 주민들은 스티브가 자숙하고 있나 보다 생각했다. 찻잔 속의 태풍처럼 잠시 소란했던 메로나 마을은 다시 평온한 마을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민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메로나 마을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폭풍전야 (출처 : kr.lovepik.com)
 폭풍전야 (출처 : kr.lovepik.com)

 

그날 저녁 무렵 하니볼라가 레이첼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니볼라는 스티브가 제기한 의혹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했으나 사실이 밝혀져서 다행이다 싶었다. 레이첼이 스티브와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하니볼라가 레이첼에게 질문을 했다.

"이번 해프닝은 스티브가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겠지요? 의혹이 해소되고 사실이 밝혀졌으니 스티브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거라고 보는데, 레이첼은 어떻게 생각해요?"

레이첼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커뮤니티에서 토론하는 걸 보니 스티브는 고집이 세고 자신의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더군요.  자아 성찰이 부족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두고 봐야겠어요."

레이첼의 답변을 듣고 하니볼라는 다시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니볼라의 표정을 살핀 레이첼은 더 이상 발언을 삼가했다. 스티브가 디루카송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것은 주민들의 관심을 주목시키고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하기 위한 전조에 불과할 것이라고 레이첼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윤리위원으로서 하니볼라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의혹이 밝혀졌으니 별 탈은 없을 거예요."

레이첼의 위로에 하니볼라는 다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길 (출처 : 한겨레신문)
구비구비 흐르는 마음의 길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사태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주민들이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한동안  잠잠하던 스티브가  며칠 후 올린 글은 마을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윤리위원장의 공지가 사실이라 해도 이건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애초에 행정실장의 부인이 윤리위원으로 있기에 이런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의혹의 배경이 된 행정실장 디루카송과 윤리위원 하니볼라는 즉각 사퇴해야 마땅합니다. 또한 이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덮으려 한 윤리위원장은 주민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적반하장이었다. 사라폰티를 포함한 윤리위원들과 주민들은 혼돈 상태에 빠졌다. 스티브는 어떤 자이길래 이리도 뻔뻔하고 파렴치한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번에는 윤리위원장까지 물고 늘어지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라폰티는 메로나 마을이 설립된 이래 줄곧 마을 주민들의 존경과 찬사를 온 몸에 받아왔다. 메로나 마을에서 이제껏 어느 누구도 사라폰티에 대해 의문이나 의혹을 제기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매사에 공정하고 정직하며 헌신적으로 윤리위원장직을 수행했기에 오늘날 메로나 마을이 평화와 행복을 구가할 수  있었다.

스티브의 억지 주장에 이어 알렉스가  스티브를 능가하는 발언을 했다.

"윤리위원회가 전권을 휘두르는 일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윤리위원회가 입주자격에 대한 최종 심사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그 타당성과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스티브와 알렉스의 과격한 발언으로 메로나 마을에는 불신과 분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마을의 평화가 일순간에  깨지고  주민들은 이들의 발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비록 한시적 체류자라고 해도 그 기간동안은 메로나 마을의 주민으로서 당당히 발언할 권리가 있다. 스티브와 알렉스는 그 권리를 마음껏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다비드는 마을의 동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스티브와 알렉스에게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이들은 심성이 곱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의도가 불순해보였고 접근 방식도 잘못되었다.  의견이 있으면 얼마든지 온건하게 개진할 수 있을 텐데 이들은 거칠게 의혹부터 제기했고 비난과 공격을 하기에 바빴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데 로마법이 마음에 안 든다며 대뜸 고치라고 심술부터  부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마치 초식동물이 사는 곳에 야생동물이 침입하여 우리 안을 마구 휘젖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은 메로나 마을을 공격하기 위해 조명탄을 쏘아 올렸지만 그  밝은 불빛으로 인하여 그들의 숨겨진 의도와 비열한 실상도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밝히는 게 자신의 임무이며 역할이라고 다비드는 생각했다.

 

편집 :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객원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