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말한 것처럼 풍산역 광장의 단풍나무 여덟 그루는, 하나같이 삭고 문드러지고 뼛속까지 드러낸 채 형해(形骸)만 남았다. 야산 벌목장에 있는 고주배기가 저럴까? 대롱거리며 나부끼는 단풍잎이 외려 짠하다.

그렇지만 ‘풍산동’과의 연으로 여느 역과 달리 단풍나무가 제법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화단 곳곳은 물론 주차장 귀퉁이나 가장자리에 스무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가 내리 심겨 있다. 우리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풍나무는 이파리가 9∼11개로 좀 더 많이 갈라지는 당단풍이다. 또, 13개로 가장 많이 갈라지는 섬단풍은 한국 고유종이다. 이에 비해 풍산역 단풍나무는 모두 이파리가 5~7개로 갈라진 전형적인 ‘단풍나무’다. 추위에 약한 수종으로 중부 이남에서 자생한다. 그러니까 중부지방에서는 십중팔구 심어 가꾸는 나무이다. 그만큼 관리가 필요한 나무다.

개중에 눈에 확 띄는 단풍나무가 있다. 가을 단풍 가운데 으뜸이라는 복자기나무다. 구색을 갖추려고 심었을까? 1번 출구 밖에 한 그루, 2번 출구 밖에 세 그루가 보인다.

복자기는 삼출엽(三出葉)이다. 즉 잎자루 하나에 작은잎 3장이 난다. 꽃도 3송이씩 모여난다. 자연스레 열매 또한 3개씩 뭉쳐난다. 그러고 보니 종소명, ‘트라이플로룸(triflorum)’은 3을 뜻하는 ‘tri’와 꽃을 뜻하는 ‘florum’의 합성어이다. 영명인 ‘Three-flowered Maple’이나 중국명 ‘삼화축(三花槭)’도 ‘3개의 꽃이 만발한 단풍나무’란 말이다. 여기에서 ‘축(槭)’은 단풍나무를 뜻하는 한자말이다.

세 송이씩 모여나는 복자기 꽃(출처 : 수락산 스마일, 2020.4.10.)

 

한편, 학명에 나오는 ‘에이서(Acer)’는 ‘단단하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박달나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목질이 치밀하고 단단해서 ‘나도박달’이나 ‘개박달’이라고 했다. 수레의 차축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쇠심 같다고 해서 한자명을 ‘우근자(牛筋子)’라고 한다(산림청).

바퀴 가운데 끼워서 양쪽을 연결하는 수레의 ‘축’으로 단단한 복자기 등의 목재를 사용했다. 그만큼 목질이 치밀하고 단단하기 때문이다(사진 출처 : 123 RF).

 

일본에서는 귀목약(鬼目薬 : 오니메구스리, オニメグス)이라고 한다. 눈병 걸린 귀신까지 눈을 번쩍 뜰 정도라니 그들의 발상이 재밌다. 그만큼 복자기는 가히 내로라하는 단풍 모두 제치고 으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어딘가 그윽한 기품이 도드라져 보인다. 시과(翅果) 또한 유난히 크고 털이 아주 많다. ‘시과’란 평평한 섬유질의 날개가 달린 열매로, 씨앗을 어미로부터 멀리 날려 보내려는 전략의 산물이다. 위로 던졌을 때 뱅그르르 돌면서 내려앉는 복자기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헬리콥터의 회전 날개처럼 나선형으로 낙하하는 복자기를 쫓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비닐봉지 가득 열매를 주워 담았다.

한국과 만주 지방이 원산지인 복자기는 세계적 단풍나무다. 영국 왕립원예협회 RHS(Royal Horticultural Society)에서 정원 훈장을 받고, 1996년에 펜실베니아 원예협회로부터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4년에는 위대한 식물(Great Plant Pick)로 뽑히고, 2008년, 뉴잉글랜드에서 ‘Cary Award’를 수상했다 (Susan Mahr, 위스콘신 원예). 캐리 상은 가장 노련한 원예가들이 매년 함께 모여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강건함•적응성•이용성•병해충 저항성, 그리고 계절 연장성 때문에 뉴잉글란드 지방의 가장 탁월한 정원식물에게 수여한다(Tower Hill Botanic Garden).

이른 아침 바삐 역사로 들어가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짙붉은 진홍색의 이파리 틈새로 실하고 옹골찬 왕사마귀 한 마리가 보인다. 미동도 하지 않고 복자기와 한몸이다. 산기(産期)가 다 된 것도 잊은 채 눈부신 가을 아침, 너도 복자기를 즐기고 있구나. 아, 보금자리 야무지게 치고, 어여 이젠 돌아가야 할 텐데…. 북풍이 닥치기 전에.

 

풍산역 2번 출구 밖 승강기 바로 옆의 복자기. 실하고 옹골찬 왕사마귀 한 마리가 산기(産期)가 다 찬 것도 잊은 채 눈부신 가을 아침, 복자기를 즐기고 있다. 원 안에는 떨어진 복자기 열매(2021.11.03. 아침).

 

퇴근길 바삐 걷는 사람들. 덩달아 밀려나듯 역사를 나왔다. 다시 광장에 선 단풍나무를 바라본다. 살아 숨 쉬는 이파리가 아니다. 찬바람 이는 가을이 와도 몸치장할 줄 모른다. 명색이 단풍인데 연지 곤지 찍고 분 바를 염사가 없나 보다. 그저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가? 실낱같은 거미줄에 휘감긴 번데기처럼 허공을 맴돌다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한다.

단풍의 명승지였던 ‘풍산’을 살리려고 그랬을까? 풍산역에서 백마역으로 가는 샛숲 초입에 중국단풍 일곱 그루를 심었다. 세력이 좋은 교목이다. 광장에 버티고 선 단풍이 볼썽사나웠을까? 반대쪽 일산역 가는 길목에 또 다른 단풍이 보인다. 하늘마을 4단지 맞은편 작은 공원에 아홉 그루의 공작단풍을 심어 놓았다. 안타깝게도 두 그루는 죽고, 두 그루는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무튼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하늘마을 멧비둘기가 단풍씨 몇 알을 풍산역 곳곳에 뿌려 놓았다. 1번 출구 밖 역사에 붙은 화단에 1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신나무다! 심어 가꾸는 이팝나무보다 키가 크다. 같이 묻어온 사위질빵도 신나무에 기대고 꽃을 피웠다. 계단 아래 터 잡은 신나무 예닐곱 그루는 담쟁이덩굴과 함께 휑한 풍산역을 물들이고 있다.

그나저나 전정(剪定)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나무의 특성과 목적에 따라 시기와 방법이 다르다. 뛰어난 기술은 물론 나무를 보는 안목과 경륜이 필요하다. 촘촘한 가지, 웃자란 가지, 아래로 뻗은 가지, 안쪽 또는 위로 벋은 가지, 땅에서 올라오는 가지, 원줄기에서 난 잔가지, 고사지, 교차지, 평행지, 바퀴살가지(원줄기나 원가지의 거의 같은 위치에서 세 개 이상 나온 가지) 등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 줌으로써,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고루 스며들도록 다듬어야 한다.

단풍나무는 특히 수액이 나오는 시기를 피해야 한다. 최적기는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이다. 2월 중순이면 벌써 수액이 뿜어져 나와 절단 부위가 잘 아물지 않아 썩기 쉽다. 무지 탓일까, 귀찮아서 그랬을까? 바투 자르고(flush cut), 남겨 자르고(stub cutting), 밑도 끝도 없이 엔진톱으로 원줄기를 댕강댕강 날려버렸다. 누가 저렇게 모닥스럽게도 잘라버렸는지 모르지만, 삶을 하찮게 여기는 자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렵다. 이는 모두 1979년, 미국의 샤아고(A.L. - Shigo) 박사가 제안한 자연 표적 가지치기(Natural Target Pruning, NPT) 이전에 횡행하던 방식이다.

삶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죽지 못해 아등바등 버티고 선 단풍나무 8그루는 살면 살고 말면 마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스로 삶을 부지한 채 연명하고 있는 풍산역 단풍나무!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가지치기의 폐해를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가을이 깊다. 절기상 상강(霜降) 지나 입동이면 겨울이다. 소설(小雪)까지 지났으니 완연한 겨울이다. 손가락 마디마디 굵은 심줄 도드라진 이파리가 처량하다. 핏빛 단풍 간데없고 낙엽만 칙칙하게 나뒹군다. 몇 장 남지 않은 가랑잎만 나풀거린다. 심줄만 남아 해롱거린다. 아직은 생을 마감할 때가 아니라는 듯 온기 한 점 없는 주검마저 차마 떨치지 못한다. 실낱같은 삶의 끈을 놓지 못한다. 봄에 나올 잎눈, 꽃눈 부여안고 대차게 삭풍과 맞서고 있다!

가랑잎이라고 가벼이 보지 마라. 혼신을 다해 바스락거리는 어미의 외마디소릴 들어보라. 갈가리 찢어진 속살 너머로 골골이 멍든 골수가 드러나도 오롯하다. 그렇게 견딘 세월이다.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팬데믹도 풍산역 단풍을 어쩌지 못하리라. 어여 ‘새봄’이 오길 비손한다.

풍산역 곳곳에 많은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다. 2번 출구 밖에 절로 나고 자라는 신나무가 10여 그루, 백마역으로 가는 샛숲 초입에 있는 중국단풍 일곱 그루, 화단에 복자기나무 네 그루, 그리고 일산역으로 300여 미터 떨어진 작은 공원에 공작단풍 아홉 그루가 보인다. 사진 속의 공작단풍은 색다른 모습이다. 공작의 위용은 간데없고, 어미나무가 본색을 드러내고 우측으로 기다랗게 자라고 있다(2021.12.01.)

 

※ 이 글은 고양신문에도  실린 글입니다.  출처 : 박춘근 칼럼 [꼬장꼬장 밥보샘]

https://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6096

편집 : 박춘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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