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물 받고 소개하는 글을 매달 한두 번 써오다 10월 말 이후 쓰지 못했습니다. 매달 10권 안팎 받으면서 다 읽고 쓰려다 밀린 거죠. 공짜로 받은 책이라 소홀히 하기는커녕 더 정성스레 읽었다고 은근히 알릴 겸 책값으로 홍보라도 좀 하겠다는 취지거든요.

12월 11-18일 사할린 방문 예정이었는데 12월 초 코로나 급 확산으로 급 취소하느라 밀린 책 읽을 시간 좀 벌었습니다. 선물 받은 순서를 뒤집어 최근 출간된 따끈한 책부터 먼저 두 권 소개하렵니다.

1) 백낙청,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11).

백낙청 선생은, 1991년부터 ≪녹색평론≫을 이끌어오다 작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이 “한국 지식사회의 가장 지성적인 양심을 대변해온 한 사상적 거인”이라고 평한 분이죠. 저는 1990년대 후반 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평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와 셋이 만난 자리에서 선생을 ‘한국의 노엄 촘스키  (Korean Noam Chomsky)’라 소개했습니다. 30대 초반 MIT 언어학교수가 되어 정치평론과 사회운동을 통해 ‘세계의 양심’으로 불리는 촘스키와, 20대 후반 서울대 영문학교수가 되어 문학은 다른 문제와 격리될 수 없다는 문학관으로 ≪창작과비평≫을 이끌며 정치평론과 사회운동을 통해 ‘한국의 지성’으로 불리는 선생이 비슷하다는 거였죠.

80대 원로학자가 여전히 왕성하게 글쓰고 강의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작년 7월 ‘백낙청 50년 공부의 결정체’로 ≪서양의 개벽사상가 D.H.로런스≫라는 600쪽 넘는 묵직한 책을 펴낸 데 이어 이번에 거의 500쪽에 이르는 책을 내놨으니까요. 제가 문학과 예술을 소재로 박사논문을 썼는데도 소설가 로런스에 관한 책은 작년부터 띄엄띄엄 읽으며 아직 끝내지 못하다, 이 책은 받자마자 이틀 만에 여기저기 밑줄치며 다 읽었습니다. 대부분 이전에 잡지에 발표하거나 강연한 내용을 옮긴 글이라 쉽게 끝낼 수 있었지요.

책 제목에서 ‘근대’의 핵심은 자본주의입니다. ‘이중’ 과제는 ‘적응 (adapting to)’과 ‘극복 (overcoming)’이고요. ‘근대의 이중과제’는 500년 역사의 자본주의에 적응하면서 극복하자는 거죠. ‘나라 만들기’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통일을 추구하되, 특이하고 창의적인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 또는 ‘촛불혁명에 부응하는 남북연합’부터 실현하자는 겁니다.

이 책에서 선생이 강조하는 통일의 개념과 방법 특히 점진적 통일과 남북연합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등에 관해서는, 선생이 제 주장을 따른 것 같다는 건방진 착각을 할 만큼, 제 생각과 너무 똑같아 몹시 흐뭇합니다. 2015년 ≪이재봉의 법정증언≫을 펴낼 때 선생은 추천사에서 “북한의 실상에 관해 나는 이 교수와 약간 인식이 다른 면이 있고..... 남에서건 북에서건 분단체제가 작동하는 실상을 조금 더 ‘독하게’ 읽어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지 않다”고 했거든요.

저는 남한 보수.극우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가장 기본적 개인의 자유조차 맘대로 억압하고 훼손해온 게 분단과 전쟁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선생은 이 현상을 재미있게 표현하는군요. “남북분단 상황에서는 반공.반북을 위해 헌법이나 법률을 안 지켜도 된다는 오래된 관행이 계속 작동해왔다. 성문헌법에는 안 보이는 일종의 이면헌법 (裏面憲法)인 것이다. 그 폐해가 극대화된 것이 이명박.박근혜 시대의 민주주의 역행이요 국정농단이었다 (340-341쪽).” 다른 곳에서는 이를 ‘일종의 관습헌법’ 또는 ‘숨은 단서조항’ 이라며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개헌이라면 이 이면헌법의 폐기다”고 주장했고요 (276-277, 302쪽). 쉽게 말해 국가보안법 폐해 설명과 폐지 주장을 이렇게 문학적으로 고상하게 표현한 겁니다.

 

2) 고승우, ≪한미동맹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지식공작소, 2021.11).

고승우 선생은 1975년부터 <연합뉴스>의 전신 <합동통신> 기자로 일하다 1980년 전두환 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된 뒤, <말> 잡지 편집장과 <한겨레> 신문 부국장 등을 거쳐 <민주언론시민운동연합 (민언련)> 이사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입니다. 10여년 전 세워진 <주권방송>에 저와 함께 창립이사가 되고, 작년 출범한 <한반도 평화경제회의>에도 같이 참여하고 있으니 제 통일운동 선배이자 동지이기도 하죠.

지난달 이 책 출간 직후 받자마자 읽던 다른 책들 모두 덮어놓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제가 관심 갖고 공부해왔으며 평화와 통일에 힘쓰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라서요. “무기한으로 유효”하며 “수정 보완 조항이 없고 폐기만 규정되어” 있는 “21세기 최악의 불평등 조약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정상화를 주장하는 내용이거든요.

제가 지난 10일 올린 “미친 후원과 밑지는 장사”라는 글에서 “미국을 제대로 알고, 정책에 따라 지지하거나 추종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비판하거나 반대하기도 하면서, 미국을 이용.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미국을 바로 알기 위한 책’ 3권을 밑지며 팔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이 책도 함께 팔고 싶었는데, 선생을 통해 출판사에 알아보니 저자 가격으로 정가 24,500원의 70%를 고집한다더군요. 1만원 이하로 팔기엔 밑지는 폭이 너무 커 포기하고 말았지요.

그 때 소개한 ≪‘유엔사령부’의 실체와 그 문제점≫과 관련해, 선생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으니 이 책 저자들이나 독자들 모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엔사의 경우 한국 일부에서 ‘유령단체’라고 하지만 그것은 국제법적으로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없고 유엔사에 타격을 주는지도 의심스럽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312쪽). 유엔사 부사령관이 2년 전, “유엔사가 해체될 방법은 유엔의 결의안이나 미국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가능할 뿐이다”고 했듯 (46쪽), 한미동맹을 정상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겁니다.


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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