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가이자 원로 평화학자 박한식 선생의 새 책
≪북한기행≫, ≪선을 넘어 생각한다≫,≪평화에 미치다≫에 이어≪안보에서 평화로≫

1994년과 2009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주선해 북미 간 전쟁을 막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평화운동가이자 원로 평화학자 박한식 선생이 새 책을 펴냈습니다. <박한식사랑방>에서 2년간 강의한 내용을 ≪안보에서 평화로≫ (열린서원, 2022)라는 책으로 출판한 겁니다. 원로학자의 책에 한참 후학인 제가 영광스럽게 홀로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썼습니다. 

<추천사: 박한식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이 책 먼저 읽고 적극 권합니다>

박한식 선생님과의 인연이 좀 깊습니다. 1994년 양성철.박한식 편저 ≪북한기행≫ (한울, 1986)을 읽었습니다. 선생님을 포함한 재미동포 정치학자 6명이 1981년 북한을 방문한 기록을 1983년 Journey to North Korea: Personal Perceptions라는 영문 책으로 출판하고, 1986년 한글로 번역해 펴낸 책이지요. 제가 1984-1994년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북한에 별 관심이 없어 이 책들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1994년 귀국하자마자 시간강사로 <북한사회의 이해>라는 교양과목 강좌를 덜컥 맡아 부랴부랴 도서관과 책방을 뒤지며 북한 관련 책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한 권씩 읽어 제끼는 가운데 8년 전 출판된 ≪북한기행≫을 뒤늦게 읽고 선생님 성함을 머릿속에 담았습니다.

1994년 귀국하기 직전 미국이 금세 북한을 폭격할 것 같은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 한반도 전쟁 분위기가 사라졌지요. 카터 방북이 선생님 주선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 주선을 선생님에게 부탁했다는 소문도 들었고요. 2008년 여름방학을 애틀랜타에서 보내면서 선생님의 조지아대학 연구실로 찾아가 처음으로 인사드렸습니다. 그해 펴낸 제 책 ≪두 눈으로 보는 북한≫을 자랑할 겸 갖다드렸지만 북한 전문가가 알지도 못하는 무명 교수의 책을 읽어주시리라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2009년 미국 방송기자 2명이 두만강 연안에서 북한당국에 체포 구금됐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사과하고 그들을 미국에 데려갔지요. 클린턴 방북 역시 선생님 주선으로 성사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2018년 선생님의 첫 한글 책 ≪선을 넘어 생각한다≫를 출판 즉시 구해 읽었습니다. <남과 북을 갈라놓는 12가지 편견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책을 통해 ‘북.미 평화 설계자’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게 됐습니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문적 태도’를 배운 것은 더 의미 있었고요.

두어 달 뒤 선생님이 이현휘 제주대 교수를 통해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제가 2016년부터 <함석헌학회>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함석헌을 매우 존경한다며 <함석헌학회> 활동에 관심 갖고 계시다는 것이었지요. 이 교수는 선생님이 2019년부터 <한겨레>에 <평화에 미치다>를 연재할 때 선생님의 구술을 글로 옮겼는데, 그 연재에서 선생님은 “평생토록 정신적 스승으로 모신 함석헌 선생”을 서울대학 시절 만났다고 밝히셨더군요.

2021년 선생님의 두 번째 한글 책 ≪평화에 미치다≫는 몹시 감명 깊었습니다. 평화에 미쳐 살아오신 배경과 과정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많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받았지요. 그런데 여기저기 밑줄 치며 꼼꼼하게 읽다가 신탁통치, 소련붕괴, 남북의 이념.체제 등에 관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나 오류 몇 군데 발견했습니다. 8월 이메일을 보냈더니 즉각 전화를 주시더군요. 곧 서울에서 화상으로 열릴 출판기념회에서 저와 대담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론 인터뷰’ 같은 형식이 아니라 ‘학술토론’ 같은 대담을 원하신다면서요. 저명한 원로학자가 한참 후학인 제 비판을 수용하며 출판기념회에서 공개토론을 하자는 게 몹시 신선했습니다.

2021년 9월 선생님이 한겨레 통일문화상을 받으셨습니다.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해주실 때 제가 축하인사 드리며 너스레 좀 떨었지요. 저는 그 상을 2019년 받았으니 제가 선생님보다 2년 선배라면서요.

한겨레 통일문화상이 ‘한국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긴 합니다만, 선생님은 진짜 노벨평화상에 버금가는 큰 평화상을 2010년 받으셨습니다. 간디.킹.이케다 평화상 (Gandhi-King-Ikeda Award For Peace)입니다. 2001년 제정된 이 상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8명이나 노벨평화상을 받았기에 ‘예비 노벨평화상’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대개 전직 국가 원수나 행정부 수반이 받은 상을 처음으로 학자가 받은 겁니다. 선생님의 특이한 업적 때문이었겠지요. 끔찍한 전쟁을 막았으니까요.

첫째,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때 클린턴 정부가 북한 폭격을 준비하자 카터 전 대통령 방북을 주선함으로써 전쟁을 막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둘째,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2003년 부쉬 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하며 북한 침공까지 고려할 무렵 ‘북핵 위기 해소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워싱턴-평양 포럼’을 주선했지요. 셋째,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두 달 뒤 미국 방송기자 2명이 두만강 연안에서 북한당국에 체포 구금되자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 북미 관계 악화를 막았고요.

2021년 11월엔 제가 원광대학교에서 진행하던 <명사초청 통일대담> 교양수업에 선생님을 강사로 모셔 화상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그 무렵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2021년 12월 발간될 계간지 ≪통일인문학≫에 ≪평화에 미치다≫ 서평을 써달라는 것이었지요. 8월 출판기념회에서 제기했던 비판에 살을 붙여 실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제게 종종 전화주시던 선생님이 2022년 3월 자랑스러우면서도 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시더군요. 선생님이 2015년 조지아대학에서 은퇴하자, 재직 45년간의 평화에 대한 열정과 헌신에 대한 보답으로 대학당국이 ‘박한식 평화학 교수직 (Han S. Park Professorship of Peace studies)’을 만들기로 했답니다. 이에 대해 흔히 ‘현대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려온 제 은사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는 “박한식 평화학 교수직은 ..... 위대한 학자에 대한 경의일 뿐 아니라 평화학에 대한 찬양의 표시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더군요. 그런데 대학당국이 목표한 100만 달러 기금이 조금 덜 모여 교수직 개설이 늦어지고 있다는 거였죠.

제가 부족한 기금을 모으는 운동을 벌여보겠노라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그 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 및 북미 관계가 악화하며 한반도 안팎에서 갈등이 커지고 긴장이 높아지리라 예상했거든요.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남한-북한-미국을 잘 알며 관계 개선을 촉진할 수 있는 훌륭한 후임 교수를 빨리 뽑아, 2003년부터 전개했던 반관반민 남한-북한-미국 대화라도 다시 주선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제 모금운동을 <한겨레> 신문과 다양한 SNS를 통해 알렸지만, 실적은 아직 미미합니다.

선생님과의 이런 인연으로 2020년 시작한 <박한식 사랑방>에 큰 관심 갖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마침 <박한식 사랑방>을 진행한 뉴욕 김수복 선생, 로스앤젤레스 김미라 선생, 보스턴 이금주 선생은 제가 가까이 지내온 통일운동 동지들이라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지요.

24개월 매월 1회 진행한 강의엔 이전 출판된 두 권 책에서 다룬 부분이 적지 않지만, 제1강 <안보 패러다임에서 평화 패러다임으로>, 제2강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과 격동하는 새 세계질서>, 제5강 <미국 대선 후유증과 미국 민주주의의 장래> 등 새로운 주제와 거듭 강조하는 대목도 많기에, 제가 먼저 책 출판을 제안하고 주선했습니다. 

특히 제1강에서 ‘안보’와 ‘평화’를 맞대어 비교하며, 안보는 하나만 살고 다른 하나는 죽게 되지만, 평화는 서로 다 살게 되어 있다고 강조하시는 게 통쾌합니다. “안보 병에 걸려 있는” 우리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겠지요. 제3강 <한미동맹과 통일>에서 한미동맹은 동맹이 아니고, ‘속국 관계’나 ‘식민 관계’라 규정하고,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대목은 매우 의미 있습니다. 저 같은 반미적 통일운동가의 주장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언론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점잖은 대학자의 공개 발언이니까요.

저도 선생님 따라 평화에 미쳐보렵니다. 제가 1990년대 말부터 시작한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 위한 통일운동>을 위해서도 ‘하나만 사는 안보’가 아니라 ‘서로 다 사는 평화’ 병에 걸리면서요. 요즘 한미동맹 강화가 살 길이라고 외치는 정치인과 언론인이 많은데, 이 책은 우리가 한미동맹의 실체를 깨닫고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데 길잡이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 편집자 주] 이재봉 주주는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이재봉 주주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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