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장마가 좋습니다. 봄부터 가뭄이 극심했는데 정원과 과수원의 화초와 나무엔 양분을 주고 농부에겐 휴식을 제공하니까요. 마당 밭일이 아무리 밀려도 비가 내리면 만사 제치고 책에 매달릴 수 있거든요. 장마철이 독서의 계절이 되는 거죠.

마침 7월엔 10여권 책을 받았습니다. 진보당에 관심 가지면서 조봉암, 진보당, 사회민주주의 등에 관한 책들을 읽다 중단하고 선물 받은 책부터 붙잡았지요.

제자가 서울의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끝내자마자 가져왔는데, NLL 관련 남북군사회담에 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자 논문을 통해 제가 잘못 가르쳐온 게 적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요. 통일운동에 전생을 바쳐 오신 90대 어르신 평전에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받은 세 권짜리 원고를 통해서는 해방, 분단, 전쟁, 통일운동에 관한 한국 현대사를 다시 공부할 수 있었고요. 다음 두 가지 책은 여러분께서도 꼭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1. 박상은,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 진실의 힘, 2022.

저자 아빠가 건네준 책입니다. 박상은 선생은 제 친구 ‘동학쟁이’ 역사학자 박맹수 원광대 총장 딸이거든요. 연세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시민운동하면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서 활동하다,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고, ‘선체조사위원회’ 종합보고서 집필진에 동참했던 저자가 작년 충북대 대학원에서 쓴 사회학석사 논문을 크게 보완해 펴낸 책입니다. 끔찍한 참사 원인과 책임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배경과 그 과정에서의 ‘무능과 실수’ 등에 대한 ‘내부 고발’ 또는 ‘자기 평가’ 같은 기록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참사 조사에 대한 정부의 방해에 분노했지만, 저자는 박근혜 정부의 방해가 가장 결정적 이유였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어려움이 반복된 구조적 이유가 뭐겠느냐고 냉정하게 묻습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경찰,검찰 조사에 지나치게 집중하기 마련인데, 그는 책임자 처벌이 목적인 ‘수사’와 사건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조사’를 분리하는 국제기준을 적용하자고 제안합니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구조 개혁, 재발 방지 대책 등이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박사 과정에서도 ‘위험과 재난’을 주제로 연구하는 전문가의 글에 어설픈 서평을 쓰기보다 아래 신문 기사를 소개하는 게 낫겠군요. 세월호 참사에 30대 청춘 8년을 바치고 8월 결혼식을 올린다는 저자에게 격려와 축하의 맘으로 읽어보시겠어요?

<연합뉴스> "세 번의 세월호 참사 조사 모두 실패…이제 질문을 바꿀 때“
https://www.yna.co.kr/view/AKR20220706107900004

<한겨레> “세월호, 복잡한 책임 문제를 단순하게 풀려 하지 않았나”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0928.html

이미지 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0928.html
이미지 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0928.html

 

2. 강명구, ≪유라시아 비단길 아시럽 평화의 길≫, 1-3권, 문사철, 2022.

이젠 세계적 유명인사가 된 저자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선생에 대해 더 이상 소개할 필요 없겠지요. “달리기로 세계 최고의 대서사시를 쓰겠다고 나선 사람이고 인류 최대의 무대에서 전위예술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 회갑을 맞은 2017년 9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고 호소하는 깃발을 단 70kg 넘는 손수레를 밀며, 유라시아/아시럽 대륙 16개국을 뛰어 횡단한 여행기입니다.

“구한말 이준 열사가 이루지 못한 110년 묵은 ‘자주독립’의 꿈을 가슴에 안고 유럽의 땅끝마을 네덜란드 헤이그로 날아가 세상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아시럽 대륙 1만 6천km를 달려서 평양을 거쳐 서울까지 오는 대장정을 시작”했지만, 중국 단둥에서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고 달리기를 멈춰야 했던 아쉬움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총과 칼로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을 앞세운 ‘유러시아’는 익숙하지만, 문화와 평화를 내세우는 아시아를 앞세운 ‘아시럽’이란 말은 좀 생소하죠? 우리는 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유라시아’로 쓰지만 중국인들은 ‘아구 (亞歐)’라 쓰는 사실을 참고하시면 좋겠군요. 미국과 유럽의 세계지도엔 유럽이 가운데 있고 아시아가 오른쪽 끝에 있지만, 한국과 중국은 아시아를 가운데 놓고 유럽을 왼쪽 끝에 두는 세계지도를 사용하는 점도 비교해보시고요.

아무튼 저는 15년 전 50대 초반 마라톤 풀코스 42km를 딱 한 번 완주해보고 평생 자랑거리로 삼아오는데, 친구 강명구는 홀로 14개월 동안 거의 매일 40-50km를 달리면서 지나는 곳의 지리와 풍광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페이스북으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깔끔하게 다듬어 세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겁니다. 문학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데다 평양 출신 시인 아버지의 문재를 닮은 듯 한 유려한 글 솜씨까지 지녀 1,300쪽의 글을 쉽고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군요.

그가 2년 전 뇌경색에 걸려 아직 완치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아시럽 횡단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9월 베트남에서 뛰기 시작해 주로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며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평화를 얘기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요. 반신마비에서 완전히 풀리지 않은 몸으로 어찌 달릴 거냐는 만류 섞인 제 우려에 달려야 치유된다는 그의 대꾸가 재밌고도 대단합니다. 하기야 그는 에필로그에서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숨결이 거칠어져 새 숨결이 열리도록 통일이 오고 평화가 올 때까지” 계속 달리겠다고 다짐했지요.

세계 유일의 2대륙 횡단 마라토너이자 ‘뛰어다니는 백과사전’ 강명구를 응원 삼아 그의 책 많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재봉 주주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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