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마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 공동체를 이루었던 사람들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높은 아파트가 자리합니다.

문현동 안동네의 역사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갈 곳이 없었던 피난민들과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묘지 위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밀려온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낮에는 뜯기고 밤에는 집을 짓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밤새 지붕을 얹혀야 뜯기지 않기 때문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히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그렇게 지은 집들이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정겹게 살았던 한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왔던 사람들도 제 각각의 삶을 위해 흩어졌습니다. 공허한 공약들이 차고 넘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밀려나고 쫓겨나는 일이 없는 새해가 되길 빌어 봅니다. ©장영식
가난한 사람들이 정겹게 살았던 한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왔던 사람들도 제 각각의 삶을 위해 흩어졌습니다. 공허한 공약들이 차고 넘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밀려나고 쫓겨나는 일이 없는 새해가 되길 빌어 봅니다. ©장영식


문현동 안동네 사람들은 집을 지으면서도 묘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에는 묘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름 모를 묘를 모시고 함께 살아왔습니다. 제를 올리지 않아도 매일같이 마음의 제를 올리며 살았습니다. 추석과 설날에는 조상님들과 함께 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 세월이 50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사의 애환 깊었던 한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가난하지만, 정을 나누며 살았던 사람들도 흩어졌습니다. 그 위로 아파트가 건설될 예정입니다. 윗집도 아랫집도 누가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로 단지를 이룰 것입니다. 역사와 애환이 깊은 마을들은 대규모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마을 공동체로 바꿀 수 있도록 지원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쫓겨나는 사람이 없는 마을로는 변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묘지와 함께 살았던 문현동 안동네 사람들의 평화를 비는 아침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사진작가 

 

 

이글은  가톨릭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관련기사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18

편집 : 김미경 편집장 

장영식 사진작가  hanion@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