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가 진실을 덮고 있다

어모장군 전방삭 영정
어모장군 전방삭 영정

어모장군 전방삭의 행적을 <한겨레:온>에 28회까지 연재하고 잠시 멈추는지 벌써 28개월이 되었다. 아쉬운 일이다.

그동안 전방삭 장군의 기념관 건립을 위한 절차를 밟는, 심한 씨름으로 매우 분주했다. 보통 어려운 절차가 아니었다.

결국 전라남도의 승인하에 사업이 확정되었으나 부지 문제로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의 진행으로 보아 올해 추석 전에는 첫 삽을 뜨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너무나도 기쁘다.

2015년에 창설된 <한겨레:온>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는데 신의 계시였는지 우연한 기회에 이 매체와 인연을 맺어 첫 원고를 보낸 날이 2019년 11월이었으니 너무나도 늦은 늦둥이이다. 돌이켜 보니 전방삭 장군을 세상에 알려주는 구세주였다.

전방삭 장군의 공적을 널리 알리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해주고, 응원의 버팀목이 되어 준 <한겨레:온>에 관계한 모든 분께 엎드려 절하며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순절한 이름 없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그들의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순국선열들의 추모는 특정한 날에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인물들만이 참석하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더러는 나름대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추앙하지만, 그 외 분들은 관심조차 없어 보여 안타깝다. 옛날과 다르게 국민 참여가 감소한 현실이 과연 국민의 애국정신과 선열의 추모 정신 함양에 옳은 처사인지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 볼 진데 순국선열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한의 아들이요, 가장이요, 아버지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왜 희생했을까? 오직 조국을 지키고 동족을 보호함이 아닐까? 그러기에 그들의 희생에 잠시라도 명복을 빌며 추모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한 후세의 도리가 아닐까?

필자는 조상인 어모장군 전방삭의 공적이 드러나지 못하고 묻혀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이를 밝혀내어 널리 알리고자 발버둥 치고 동분서주할 때 고생함을 알고 노고에 힘을 실어주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별일 아니라는 듯 삐죽대는 이도 있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를 아무런 관심 없는 양 표현함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본다. 가슴 아픈 일이다.

전방삭 장군은 조선 조정에서 선무원종공신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여 있을 때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져 나라를 구한 근거가 분명하고, 공신 선정기준에 합당했기에 취해진 결과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실증자료가 없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1907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마구 짓밟는 시기였다. 일본 통감부는 우리 민족정신 말살을 위한 조선 폭도 토벌 계획에 따라 과거 애국지사로 위패와 영정을 모시는 사당을 50여 곳이나 불 질러 버렸다. 바로 이때 국토의 남단 오지에 사는 전방삭 장군의 후손 장자의 집을 급습하여 장군의 간찰(簡札)과 문적(文籍) 등 유품을 약탈하고 고택까지 불 질러 버렸다. 그 결과 다른 분에게서 흔히 보는 교지 한 장 없는 형편이다. 단 이웃에서 빌려 간 선무원종공신록권이 존재한다. 불행 중 다행이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어모장군 전방삭 관련 자료를 찾아 헤매다 보니 어언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기에서 느끼는 바 크다. 조선시대에도 마치 현시대의 아빠 찬스 같은 현상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관직으로 조직된 병력은 지휘체계가 분명하여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체계였으나 지방의 의병 진은 소수의 병력으로 조직되어있어 향리에 왜적이 침투할 때는 서로 연계하여 합동으로 싸워 막아내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장수들의 실적이 엇비슷한 점이 있는데 정려를 내린다거나 공로로 승진하는 데는 차이가 있음을 보았다. 조상의 관직과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이 지닌 명예에 따라 차별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인간 사회에서 과거나 현재나 사라지지 않는 병폐인 것 같다.

또 다른 현상으로는 후손 중 영향력 있는 공직자가 있어야 조상이 빛을 본다. 임진왜란 뒤 조선 조정에서 엄밀히 심사해 공신 등급이 정해졌다. 이 등급별 순위에 불만을 품는 자가 있었다는 말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정평(正平)하게 선정되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4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서열의 위상이 망가지고 후손의 직분에 따라 조상의 위상과 품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았다. 이는 분명 정의롭지 못하고 질서가 흐트러지는 사례로 보여진다. 그들보다 상위등급이지만 후손의 여력이 없는 자들은 가슴에 맺힌 피멍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닌 듯 하다.

이와 다르게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공신 등급이 높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그만큼 국가에 공훈을 많이 세웠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 절손(絶孫)이 된 경우 아무도 그를 챙겨주지 않고 있어 묻혀버리고 만다.

또 다른 경우로는 후손이 한미(寒微)하여 조상의 공적조차도 모르고 있는 경우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허위사실이 진실을 덮고 있다.

필자가 어느 지역의 선무원종공신 명단을 작성코자 참고 문헌을 분석해 보았다. 상당히 많은 수의 공신을 찾아내고 흐뭇했다. 2차로 공신록권 원본과 대조를 해보니 2/3가 허위기록이다. 공신록권과 대조 없이 각 문중에서 제출한 기록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실망스럽다. 우리의 삶이 바르게 살기를 원하나 역행하는 자 있기에, ‘바르게 살기 운동’이 펼쳐진 것으로 안다. 이런 허위사실을 걸러내지 않는다면 더 많은 가짜 공신이 생겨날 것이 염려된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만연된 사실로 보기에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허위사실을 찾아내어 바로잡기를 희망하나,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될 공산이 크다. 위정자(爲政者)들은 관심 밖의 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님 말씀같이 ‘부끄러움을 아는 자의 실수는 훈계로 교정이 되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의 실수는 훈계해도 소용없으니, 우리가 피해 가자’라는 교훈대로 우리가 피해 가고 놔두고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반문해본다. 아니다 꼭 시정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실례로 보아 허위의 공신으로 인해 진짜 공신의 품격이 떨어지고 허위 공신 조작으로 가문을 돋보이게 하려는 잘못된 근성을 뿌리 뽑아야 한다. 누가 해야 할까? 정의의 사도들이 해야 한다. 정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사도가 됩시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전종실 주주  jjs62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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