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학력을 평가하는 수능시험은 평가의 객관도는 높지만 평가 타당도는 낮다. 다시 말해 고등학생들이 간직한 진정한 능력을 측정하는 평가도구로선 하급인 셈이다. 교육선진국인 독일(아비투어 시험)이나 프랑스(바칼로레아 시험), 하다못해 영국(A레벨 시험)조차도 논술형 문제로 평가한다.

한국 사회는 평가 타당도엔 관심이 없다. 평가의 객관도만 높으면 그 시험을 ‘공정하다’고 믿는 신화가 우세하다. 5지 선다형 찍는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능력’보유자로 대학 사회가 공인까지 해주니까! 그런 탓인지 높은 수능점수로 대학을 정시로 입학한 학생들이 수시로 입학한 동급생들을 향해 ‘수시충’이라 비하한다. 한 마디로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운좋게 수시로 입학했다는 ‘비아냥’이다. 비틀린 엘리트 의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선 학력주의와 능력주의가 국민들 의식을 강고하게 지배한다. 학력주의와 능력주의! 바로 ‘시험 능력주의’는 대한민국 사회 상층으로 이동하는 확실한 지름길이다. 수능에서 높은 등급은 세칭 서울 명문대로 직행하는 지름길이고 취업이나 자격시험에서 높은 점수는 한순간 수직상승을 경험하게 해 준다. 전문직이나 고위 관료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능력’을 검증받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 능력주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래된 ‘사회 질병’으로 기능해 왔다. 단순히 사회 지배계급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넘어서서 ‘시험 능력주의’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트려 왔기 때문이다. 전문직이나 고위 관료가 되어야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욕망과 더불어, 사회 상층으로 밀어 올리는 주위의 기대와 압력 속에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극심한 경쟁과 압박감에 내몰린다.

대한민국 사회 고질병인  학력주의, 능력주의를 비판사회학자의 눈으로 분석한 명저 <시험 능력주의> 책 표지(출처 : 하성환)
대한민국 사회 고질병인 학력주의, 능력주의를 비판사회학자의 눈으로 분석한 명저 <시험 능력주의> 책 표지(출처 : 하성환)

그런데 ‘시험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99% 절대다수 패배자든, 1% 승자든 모두 행복하지 않다. 그러함에도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처럼 학원을 비롯해 사교육시장으로 끝없이 내몰리는 현실이 우리 청소년들이 마주한 삶이다. 『시험 능력주의』 저자 김동춘 교수는 ‘시험 능력주의’가 한국 사회에선 「준종교적 교리」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시험을 통과하면 그 자체로 ‘능력’을 인정받는 것으로 청소년들에겐 미래 펼쳐질 구체적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졸과 대졸 간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심각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청소년 행복 지수가 거의 꼴찌인 나라 또한 대한민국이다. 국민 가운데 자살 충동을 가장 심하게 겪는 연령층이 청소년 계층이고 실제로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어린 초등학생들조차 우울감 지수가 높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가장 행복해야 하고 한창 놀아야 할 어린이들에게 우울감이 일상인 사회는 단언컨대 미래가 없는 암울한 사회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사활을 건 전쟁터>로 회상한 비율이 무려 80%를 넘는다는 통계자료는 우리교육이 중증을 앓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출처 : 김동춘 <시험 능력주의>  49쪽을 글쓴이가 찍었음)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사활을 건 전쟁터>로 회상한 비율이 무려 80%를 넘는다는 통계자료는 우리교육이 중증을 앓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출처 : 김동춘 <시험 능력주의> 49쪽을 글쓴이가 찍었음)

극심한 경쟁에서 승리해 상위 1%에 들어간 서울대 학생들 가운데 절반이 우울감을 느끼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고등학교 시절을 ‘사활을 건 전쟁터’로 기억하는 비율이 80%를 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은 이유다.

거꾸로 시험능력 경쟁에서 탈락해 노동계급으로 전락한 노동자들 현실은 참담하다. 매년 10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인해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하고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한 마디로 OECD 국가 중 중대 재해 사망률 1위라는 현실이 우리 대한민국이 처한 실상이다. ‘시험 능력주의’, 바로 과잉 교육열의 이면에는 노동 배제, 노동 천시가 짙게 깔린 탓이다.

그러나 더욱 슬픈 현실은 ‘시험 능력주의’ 경쟁에서 승리해 전문직과 관료집단으로 진출한 ‘시험형 인간’들이 보여준 사악한 모습이다. 『시험 능력주의』 저자 김동춘 교수는 그들 절대다수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사회정의를 용기 있게 실천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일갈한다. 오히려 불의한 권력을 추종하며 정의를 세우려는 의인들을 짓밟는 데 힘을 보탰다고 준열히 비판한다. 그 대표적 사례로 민주주의자 김근태에게 중형을 선고한 이들이 경기고-서울대 선배이자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던 판사 서성, 서울법대 출신이자 공안검사로 악명 높은 김원치였다고 탄식했다.

한국 사회 지배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시험 능력주의’를 당장 멈춰 세워야 한다. 김동춘 교수는 『시험 능력주의』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미 2019년 「유엔 어린이 권리 위원회」(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에선 한국 청소년이 처한 현실을 ‘어린이 학대’에 가까운 인권 침해”로 규정했다. 나아가 “한국 정부에 대해 살인적인 경쟁 교육 시스템을 완화하고 청소년 여가시간과 놀이를 보장”하도록 촉구했다.

이제 우리 교육자는,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육부를 “첨단 산업에 필요한 인재 공급”부서라며 “교육부 스스로 경제 부서”로서 “반도체 인재 양성에 목숨을 걸라”고 큰 소리 친 현 정부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결국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 교육자들 몫이다. 교육계 안팎으로 스며든 낡은 신화와 거짓 우상들을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날카롭게 분석 비판한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험 능력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 대안으로 ‘교육개혁과 사회개혁’을 역설한다. 교육개혁으로 “대학 수직 서열 체제를 해체하여 대학의 수평적 다양화를 추구”하고 능력보다 ‘지성’을 중시하는 교육을 제언한다. ‘시험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리한 ‘우월한 열등자’들이나 사회적으로 ‘열등자’로 낙인된 공동체 구성원들 전체를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과 ‘민주시민교육’ 또한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김동춘 교수는 노동권이 존중되는 ‘노동의 인간화’와 ‘사회적 연대’를 제시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 ‘신분’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비하, 저임금, 고용불안, 위험한 일터”를 해소함으로써 명실공히 노동권이 신장되고 ‘노동의 인간화’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굳이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적절한 임금과 자기 발전의 기회를 제공”받고 “인간다운 삶과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동의 인간화’를 역설한다.

사민주의 성향이 강한 교육선진국! 북서유럽 국가들처럼 청년 복지, 교육문화 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회정의를 드높이고 좀 더 형평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개혁하는 길이 ‘시험 능력주의’를 극복하는 방안이라 강조한다. 김동춘 교수의 『시험 능력주의』는 한국 사회를 그동안 강하게 짓눌러 왔던 ‘시험 능력주의’라는 사회 질병을 비판사회학자의 눈으로 예리하게 분석한 책이다. 무덥고 습한 올여름을 나는 데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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