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구와 열등감 내려놓기

유치원생 둘째는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흥얼거린다. 흥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분이 절로 상쾌하고 가벼워진다. 그런 둘째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시어머니다. 친정 부모도, 시댁 다른 어른들도 노래를 흥얼거리시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시어머니는 자주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우리 시어머니는 유튜브로 노래 배우는 걸 즐기시고, 시골 아주머니 중에서 트로트 신곡을 잘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본인이라며 뿌듯해하신다. 그런 시어머니와 트로트 한 곡절을 같이 배우며 흥을 나눌 수 있는 요즘이 감사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2015년 8월, 시댁 앞마당에서, 갓 돌이 지난 첫째 딸
2015년 8월, 시댁 앞마당에서, 갓 돌이 지난 첫째 딸

아들 넷 중 셋을 장가보낸 우리 시어머니는 나에게 다른 며느리 칭찬을 종종 하시면서 다른 며느리가 본인에게 얼마나 잘하는지를 자랑하셨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신혼 초에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내게 전화를 자주 하라시면서 다른 며느리는 전화를 자주 한다는 시어머니 말 한마디에 나는 바로 불쾌함을 표현했다. 수화기 너머로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화를 내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이 중재하여 어찌어찌 넘어갔는데 그 이후로는 웬만하면 시어머니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시댁에 가는 걸 두 딸도 좋아하고, 시부모님께서 쌀, 옥수수, 감자, 포도, 들기름 등 손수 지으신 귀한 농산물을 아낌없이 주시는데도 마음 한편은 불편했다.

2017년 8월, 시댁 포도밭, 무럭무럭 자라는 삼색 포도
2017년 8월, 시댁 포도밭, 무럭무럭 자라는 삼색 포도

그런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마음수련 명상 덕분이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인간관계도 실제 거리가 생겼다. 그 시기에 나는 명상을 시작하면서 시어머니를 향한 불편한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 마음에는 시어머니에게 가장 좋은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내가 못 하는 부분을 다른 며느리가 잘해서 칭찬받으면 올라오는 열등감도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정욕구와 열등감을 인지하고 명상을 통해서 그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기 시작했다. 상대가 누구를 가장 좋아하든지, 누굴 칭찬하든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오직 나는 내 마음만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2020년 1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기 전 설날 차례상
2020년 1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기 전 설날 차례상

그러는 와중에 우리 첫째 아이가 동생인 둘째가 칭찬받는 걸 들을 때 속상해하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외동딸로 자란 나는 다른 자매가 있는 환경에서 크는 두 딸을 이해하는 폭이 좁았었다. 여러 며느리가 있는 시댁이라는 확장된 인간관계 덕분에 이번 기회에 나 자신과 아이들의 마음도 돌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그 마음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지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8월, 시댁 인근 해변에서, 남편과 두 딸
2017년 8월, 시댁 인근 해변에서, 남편과 두 딸

내 중심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가득한 마음을 비워내니 오히려 솔직하게 시어머니와 소통할 수 있었다. 하루는 동서 자랑에 여념이 없는 시어머니께, “어머니, 사실 저는 어머니가 다른 며느리 칭찬하실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요. 제가 못 하는 걸 다른 자식들이 부모님께 해드리건 저로서는 고마운 일이더라고요. 대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니까 이제는 좋아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속 터놓는 대화를 한 이후로 시어머니와 나는 부쩍 서로를 대하기가 편했다.

2019년 8월, 시어머니 칠순 잔치에서 선보인 뽀로로 댄스
2019년 8월, 시어머니 칠순 잔치에서 선보인 뽀로로 댄스

시어머니도 나도 서로에게 바라는 마음 없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 없이 지내니 만날 때 편하고 대화도 도란도란 나누었다. 하루는 새벽이 되어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가, 문득 시어머니가 본인이 시집가기 전 식모살이했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그 어려운 시절에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친정에 쉬러 가면 친정어머니와 밤새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한다. 이렇게 며느리와 새벽까지 대화하다가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났다고 하시며, 내가 딸 같다고 하셨다. 그만큼 서로가 편하다는 걸 인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2016년 6월, 시댁 앞길에서 첫째 딸과
2016년 6월, 시댁 앞길에서 첫째 딸과

사실 시어머니가 크게 달라지시지는 않았다. 여전히 다른 아들과 며느리 자랑을 하신다. 그런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많이 달라졌다. 시어머니가 하는 어떤 말도 더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며느리나 아들 중 본인에게 잘하는 이에 대해 자랑하시면, 좋으시겠다고 가볍게 맞장구도 쳐 드리고, 시어머니와 같이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속상한 일을 내게 털어놓으시면 공감해드리며, 내 솔직한 생각을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시어머니도 새삼 다르게 보이고 서로에게 솔직하고 편안한 관계가 되어가니 그런 변화에 감사할 따름이다.

2021년 8월, 시댁 앞길에서 남편과 두 딸
2021년 8월, 시댁 앞길에서 남편과 두 딸

그제 추석 연휴라 시어머니를 뵈었는데, 뭔가를 알려주시려고 나에게 “이리 와봐. 이리 와서 봐.”라고 하시며 본인 휴대전화를 보여주셨다. 집에서도 두 딸이 나에게 관심을 받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게 생길 때면, “엄마, 이리 와 봐.”하고 나를 부르는데 왠지 그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시어머니가 무얼 보여주시려나 궁금해 하며 보니, 본인은 소갈비, 돼지갈비보다 닭갈비가 좋으시다며 문자로 받은 춘천 닭갈비 음식점 정보를 공유해주셨다. 나에게도 시켜 먹어보라시며 다음 날에는 그 닭갈비를 조리해서 아침상 위에 올려주셨다. 춘천에서 먹었던 닭갈비를 생각나게 하는 맛이라 나도 나중에 주문해 볼 생각이다. 시어머니께 한 상자를 보내드려도 좋겠다. 닭갈비에 깻잎, 양파, 버섯, 떡도 함께 넣어서 그 맛이 어떠했는지 다음에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2022년 1월, 새로운 한옥을 짓기 전,  시부모님 집
2022년 1월, 새로운 한옥을 짓기 전, 시부모님 집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박형옥 주주  hyungoa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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