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뒤늦게 오른손을 주로 사용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오른쪽 검지 뼈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더 괴로운 것은 오른쪽 어깨가 아프고 무거워져서 팔을 들어올리기도 힘들었다. 걱정하던 차에 어깨 아픈 것은 요가를 하면 좋아진다고 해서 요가를 시작했다. 중간에 쉰 적도 있지만 햇수로만 따지면 10년 이상은 한 것 같다.

엄마는 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요가보다는 재즈댄스나 사교댄스 같은 것을 배우라고 하셨다. 사람들과 만나서 어울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 어깨도 좋아질 거라고 하셨지만, 잘 모르는 사람하고 얼굴 마주 보고 웃어야 하는 운동은 부담스러웠다. 요가는 처음 시작할 때 서로 인사만 까닥하고 나면 선생님 말씀을 따라 혼자 하는 운동이다. 특별히 서로 친근해질 일이 없다. 인간관계의 확장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를 하면서 두 팔도 별 무리 없이 번쩍 들어 올리는 수준이 되었다. 이상하게 요가와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오른손 검지 뼈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몸도 많이 유연해졌다. 스스로 피로 푸는 방법을 익혀서 혼자 이리저리 내 몸을 갖고 굴릴 수 있었다.

요가의 기초자세를 거의 다 따라 하는데, 절대로 하지 못하는 자세가 하나 있다. 바로 결가부좌를 트는 것이다. 오른쪽 발목이 다른 사람과 달리 잘 꺾이지 않고 오른쪽 엉덩관절이 왼쪽에 비해 유난히 굳었다. 억지로 결가부좌를 틀려고 하면 발목이 눈물 날 정도로 아팠다. 걷다가도 유난히 오른쪽 발목이 잘 겹질렸는데 그 이유를 안 것이다. 오른쪽 발목뼈에 힘이 없고 발목뼈에서 발이 살짝 삐딱하게 연결된 것 같았다. 오른쪽 발목을 돌리면 우두둑 우두둑했다병원엔 가보지 않았지만 스스로 알아 조심하게 되었다.

현재 요가 선생님은 나보다 2~3세 정도 많은 분이다. 분명하면서도 자상하고 나이 든 학생들에 대한 배려심이 많은 분이다. 요가 수업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가야 하므로 일하다 제쳐놓고 가기 번거롭고 귀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갔다 오고 나면 몸이 시원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요가의 나무 자세(이미지 출처 : publicdomainvectors.org/ko/무료%20클립아트/요가-트리/59905.html)
요가의 나무 자세(이미지 출처 : publicdomainvectors.org/ko/무료%20클립아트/요가-트리/59905.html)

그동안 세 선생님에게 요가를 배웠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준 선생님이 한 분 있다. 나보다 4세 많은 첫 요가 선생님이다. 그분에게서 약 4년 정도 요가를 배웠다. 선생님은 나와 같이 비사교적 성격이라 특별히 개인 간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나는 속으로 늘 한결같은 선생님을 좋아했다. 

이렇게 말이 없고 늘 웃으면서 수업을 이끄시는 선생님이 한번은 눈이 빨개져서 5분 늦게 수업에 들어왔다.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를 보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무슨 일인가하고 여쭤보았더니...

우리 수업 바로 전 수업 시간에 처음 보는 수강생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학생이네’ 하고 의아해하면서도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끝나고 한 수강생이 전체가 먹을 커피를 타 왔다. 처음 보는 수강생도 같이 커피를 마시게 돼서 누군지 물어보았다.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한 번 와봤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럼 수업 전에 미리 말해주면 좋지 않았겠냐”고 했다.

그 분은 대뜸 “내가 돈 안내려고 그런 줄 아냐”, “나에게 망신 주었다”고 언성을 높였다. 다른 수강생이 “구경하더라도 미리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선생님을 거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거의 싸움 수준으로 발전했다. 수강생들이 ‘이상한 여자구나’ 생각해서 다 자리를 뜨고 나니, 선생님을 걸고 넘어졌다. 선생님도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까 “수업 끝나고 머리털을 다 뽑아놓겠다”고 했다나?

선생님은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을 떨구시다가 다시 마음을 잡고 수업하자고 했다. 나는 '아... 항상 웃고 있어서 몰랐는데 저렇게 마음이 여리구나'하고 생각하며 편치 못한 마음으로 수업을 마쳤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서 나오는 데  그분이 교실 문 앞에 버티고 있다가 소리를 질렀다. 직원이 말리는데도 선생님을 향해 돌진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분을 막아섰다. 기억나는 그분의 말이다.

“덥지도 않은데 에어컨을 켜대고 물자 절약해야 하는 이 시대에 그게 요가 선생이 할 짓이냐? 구청에 고발하겠다”

개량한복을 입은 선생님에게 “선생 옷차림새가 그게 뭐냐? 나도 에어로빅 선생 했다. 집에서 입는 옷 입고 나와서 요가 가르치나?”,

‘네가 뭔데 건방지게 나보고 인사하라고 그러냐?’

그분을 보면서 나는 바로 ‘아~ 정상이 아니구나’하고 알았다. 그분은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듯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가면서 계속 한소리 또 하고 한소리 또 했다. 저러다 거품 물고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흥분해있어 좀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봉변당하는데 그냥 가버릴 수는 없었다. 나를 더 화가 나게 만들어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한 것은 문화회관 직원 말이었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그냥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주세요.”

너무 시끄러우니까 아무 잘못 없는 누구 한 사람 희생하고 조용히 해결하자는 그런 말 아닌가?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나와 몇몇 수강생은 이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직원에게 가서 따졌다.

“솔직히 저 사람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경찰서에 신고해서 데리고 가라고 하세요. 왜 선생님이 저런 사람에게 잘못했다고 해야 합니까?”

“문화회관에서 선생님을 이런 식으로 보호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여기 정떨어져서 안 나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우린 선생님이 좋습니다.”

우리도 막 큰 소리를 내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왔다. “그냥 가주세요. 합당하든 합당치 않든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시는 것이 제가 대처하기 쉬워요” 했다. 선생님이 그러는데 더는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분을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서 한적한 곳에 서서 이야기했다.

우리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와 등을 대고 서서 그 분과 계속 이야기했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들리지 않았고 그 분 말만 좀 들렸다. 선생님이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분은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잘못했으면 다냐?’ 했다. ‘선생의 자세’까지 운운하면서 훈계하듯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랐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돌아서서 우리를 보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허둥지둥 와버렸다.

몇몇 수강생들하고 내려오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당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다 났다. 속으로 ‘ㅁㅊㄴ, 너는 더한 ㅁㅊㄴ에게 당할 거야’ 라고 욕까지 했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선생님에게 사과하라고 한 직원에게 소리소리 질러볼까도 생각했다.

그렇게 속이 상한 가운데 이틀이 지나고 다시 수업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웃으면서 수업을 하셨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맘이 편치 않았지만 아무도 그날 일을 서로 묻지 않았다.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한참이 흘렀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우연히 선생님과 나란히 나오게 되었다. 나는 그날 일을 조심스럽게 ‘맘 많이 상하지 않으셨냐~’고, ‘어떻게 그 속상한 마음을 푸셨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내가 마음 닦는 요가선생 아니에요?”

“우리는 남하고 싸워서 꼭 이기려고 하지요. 하지만 자신과는 잘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또 한다고 해도 꼭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사실 남과의 싸움에서는 다 져줘도 되는 것이지요. 남보다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늘 그 말씀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세상을 순하게 사는 것이 최대 목표인 나는 먼저 남을 건드리는 일은 절대 없다. 하지만 남이 나를 합당치 못하게 건들면 가만있지 않는다. 선과 후를 하나하나 따지고 따지거나, 칼로 무 자르듯이 아예 싹 잘라버린다. 상대를 이기거나 버리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그런 냉정한 마음이 들 때면 항상 새기려던 요가 선생님의 저 말씀은 얼마 전에도 하얗게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내 마음 속 비어있는 공간은 겨우 고만큼만 있나 보다.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자기 그릇을 조금 더 많이 비어놓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고... 욕심내지 말고 타고난 그릇이 줄어들지 않도록 잘 가꾸며 살아야 하나보다고... 그래도 늦게나마 요가 선생님 말씀이 살아 떠올라 나를 조금이나마 뒤돌아보게 해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미경 편집장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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