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이야기

(이 글은  지구촌에서 생명모성 교육철학을 살아내고 있는 실제 이야기입니다.)

"아가야! 제단"
"아가야! 제단"

 

미국 LA에서 한국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두 젊은이가 있다. 4년 전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나 2년 전에 라스베가스에 가서 둘이 결혼을 했다. 양쪽 가족들을 초대하는 결혼 파티는 훗날로 미루기로 했다. 그들은 자녀를 최소한 셋을 낳아서 다복하게 키우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조촐하게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임신이 되지 않았다. 삼십 후반이라는 신체적 이유 때문인지 임신이 한 번 되었다가 유산이 되었고 인공수정을 시도했는데 그것도 잘되지 않았다. 그 후 인공수정을 여러 번 하였는데 이번에 드디어 임신이 되었다. 카톡으로 아기가 생겼다고 기도해 달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즉시 집안에 제단을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았다. 영암에서 선물 받은 자연염색 스카프로 장롱 위에 제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글 손수건도 깔고, 생일 선물로 받은 난초 화분을 놓고, 작은 수첩도 놓았다.  초를 꼽을 수 있는 벽에 거는 장식물을 장롱 위에 기대 세워놓고 2년 전에 받은 카드의 중앙 부분을 떼어서 장식으로 사용했다. 외손자손녀가 아기 때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을 하단 중앙에 놓으니 사촌을 부르는 “아가방”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다.  당분간 아가를 “아가야!”라고 부르기로 하고 종이쪽지에 써서 붙여 넣었다.

희주(Jen)는 30여 년 전에 한국서 태어나서 아기 때 미국에 입양되어 백인 가정에서 자랐다. 갓난애를 입양한 미국인 양부모는 친자녀가 둘이나 있었는데 흑인 아이와 동양 아이를 입양했다. 그래서 네 아이가 다문화 다인종 가정에서 자랐다. Jen은 백인 언니, 흑인 오빠와 다정한 사이이고 그 식구들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단란한 가정이다. 네 아이는 모두 어릴 때부터 홈스쿨링을 해서 Jen은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않고 동네 도서관과 각종 박물관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Jen은 다재다능해서 일찍부터 동네 신문을 만들어 직접 기사도 쓰고 편집하고 배부하는 등 여러 역을 도맡아 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도 하고 기타와 피아노도 치고, 후에 영국 런던의 모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지금은 할리우드에 있는 넷플릭스 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Jen은 십여 년 전에 생모를 찾아 나섰고, 제주도에서 찾았다. 생모는 육지 사람인데 제주시 성산포에서 30년 가까이 요양사로 일하며 지금까지 그곳에 살고 있다. 생모는 학교 교육은 고졸 정도이고 외국어 실력은 전무. 그래서 그 둘은 카톡방을 열어서 소통하는데, 엄마는 영어를 못하고 희주는 한국어가 서툴러서 번역기를 사용한다. 그 둘 사이에는 문화적 간격이 있다. 그러나 모녀의 사랑이 진해서 소통이 진행되고 있다.

인수와 희주는 나의 아들과 며느리이다. 아들의 인생의 굴곡은 나의 인생사와 직결되어 있다. 나의 인생의 첫 번째 굴곡은 한국전쟁과 조국의 분단이었다. 나는 분단의 당사자이다. 대동사상가였던 외조부는 조국이 분단되고 남한이 미 군정의 치하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여 1948년 가을에 월북하셨다. 월북한 외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부모는 사 남매를 데리고 한국을 떠나 해외 이민 길에 올랐다. 그러한 결정은 우리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서 벗어나게 된 큰 변곡점을 찍었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코리안들에게는 한국 사회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일세와 이세가 어울려 사는 우리 식구들은 전형적인 그런 케이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방향으로 창의력을 발휘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조화와 결실을 이루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잠재의식과 무의식 속에 깔린 각종 의식의 틀을 깨며 살아간다. 내가 한국에서 자랄 때 주입 받으며 자랐던 우월의식은 오랜 세월을 걸치며 산산이 깨졌고 휘발되어 날아가 버렸다. 그러한 모든 굴레를 던져 버리고 비상할 때는 경쾌함과 상쾌함이 느껴진다. 나는 내일 뉴욕에 Walmart World Cup 광고 촬영을 하러 간다. 내셔널 광고이기 때문에 수입이 좋다.

나는 중립화 운동가 동지 한 분과 함께 수개월 전에 철원 국경선평화학교를 건축하고 있는 현장을 방문하고, 교실 한 개를 짓는데 2천만 원이 든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돈을 내면 교실 하나를 “영세중립 평화통일”방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반반씩 내기로 하고 기부를 약속했다. 나는 이제 그 돈을 벌어야 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중립화 운동의 일환이다. 돈이 없으면서도 이런 일들을 과감하게 하려고 덤벼들기 위해서 나는 내 앞길을 막고 있는 모든 심리적 장애들을 극복해 왔다. 그 과정에서 크게 습득한 것은 ‘나는 이런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아상을 던져버리고 ‘자아초월’의 비법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뛰어들어 주어진 순간에 온전히 100% 몰입하면 기적 같은 동시성들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자아초월’은 생명 모성 교육철학을 실천하여 비약적으로 창조적인 삶을 살아내는 비결이자 핵심이다.

 

- 김반아 (교육철학 박사, 생명모성연구소 소장) /  Vana Kim (배우, 모델)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반아 주주  vanak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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