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야시장의 주류는 아무래도 식사 대용 먹거리입니다.
대만 야시장의 주류는 아무래도 식사 대용 먹거리입니다.

함께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같은 반 학우 중에 최연소자는 아직 만 16세가 안 되는 리리(莉莉, Lilly)입니다. 폴란드계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 사이에 독일에서 태어난 막내딸입니다.

위로 두 살 터울의 쌍둥이 언니가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 언니들과는 영어로 대화하고, 어머니와는 중국어로 대화를 한다고 해요.

리리 말로는 어머니도 독일어와 영어에 아주 능통하다고 합니다. 대만 은행 쪽 업무와 용어에 능숙하기에 결혼 전 은행에서 일했냐고 물었더니 컴퓨터 관련된 회사에 근무했었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리리 아버지는 스키를 매우 좋아해서 겨울을 기다리는데, 리리 어머니는 추위를 몹시 싫어한다고 합니다. 겨울이면 이 딸 저 딸 데리고 대만에 와서 지내는데, 이번에는 9월부터 3월까지 약 6개월 방을 얻어 막내 리리와 함께 지낸다고 합니다. 리리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초등학교 때까지는 스키 대회에 나가면 항상 우승하는 스키 선수였다고 합니다.

리리 어머니가 첫 한 주일 정도는 매일 등하교를 함께 하기에 극성이 도를 넘는 학부모라고 여겼습니다. 거기다 매일 리리와 새벽 수영을 다녀온다고 합니다. 잘 따르는 리리가 대견하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리리가 착하다고 하네요. 아마도 착한 리리가 집에 가서 저를 좀 과장해서 소개했나봅니다. 사업을 했던 사람이라 사회 경험이 많다고.

함께 식사하는 중에 리리가 빵을 만들어 팔고 싶어 하는데 학교 앞은 어떠냐고 묻더군요. 학교 앞은 도로 여건이나 주변이 지나가는 자리이지 사람이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투자하는 노력에 비해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거라고 말했습니다. 또 얼마나 지나서 ‘야시장에서 팔아보면 어떨까?’하고 주변에 물어봤는데 모두 반대만 한다고 합니다. 야시장은 자릿세나 폭력배들이 뒤에 있을 수 있어서 어리고 특히 이국적인 리리가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아무도 찬성을 안 한다고 저의 의견을 묻더군요.

이곳 야시장의 유명 고구마 구슬(고구마 가루를 구슬처럼 만들어 기름에 튀겨냄)! 항상 이렇게 줄을 섭니다.
이곳 야시장의 유명 고구마 구슬(고구마 가루를 구슬처럼 만들어 기름에 튀겨냄)! 항상 이렇게 줄을 섭니다.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적어도 야시장에 오는 사람은 구경만 할지라도 자기 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손님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으니 야시장 상인들에게 상황을 물어보고 괜찮으면 훌륭한 선택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리리 말로는 대만에서 빵을 먹어봤는데 독일 빵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제빵 기술은 관련 기관에서 배운 적이 없고, 워낙 빵을 좋아해 유튜브 등을 통해 스스로 익혔고, 자신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생각 없이 살았던 나의 젊은 시절과는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리리는 자신이 만든 빵에 대한 확신이 있더군요.

제가 사는 곳과 야시장은 약 100여 미터 거리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장이 섭니다. 15일 화요일 처음으로 접이식 탁자를 펴고 리리가 미리 집에서 만든 치즈 케이크와 브라우니 케이크를 가지고 와서 작은 조각으로 잘라 팔았습니다.

어떤 크기로 자를지, 가격은 얼마를 받을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탁자 위에 판부터 벌였습니다. 참으로 어설펐습니다. 이미 장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서, 뒤늦게 나타나 어설픈 동작으로 앞뒤 없이 부산을 떨었습니다.

옆 매대 조명 무상으로 이용.  상호도 없이 검은색 보드에 쓴 “독일식 치즈 케이크”가 전부.
옆 매대 조명 무상으로 이용.  상호도 없이 검은색 보드에 쓴 “독일식 치즈 케이크”가 전부.

작은 조각으로 만든 다음 개 당 얼마를 받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야시장에 오는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있다며 30위안(약 1,200원) 넘으면 어려울 거라고 말하고, 리리는 싸게 팔고 싶지 않다면서, 60위안 혹은 70위안을 받고, 두 개를 사면 100위안에 주자고 합니다.

저는 가격이 싸면 품질도 싸구려로 보니깐 조금 높아도 받고 싶은 가격을 받고, 그 대신 심리적 저항선이 있고 거래도 편하게 50위안(약 2,000원)에 받자고 했더니 두 모녀가 동의합니다.

역사적인 순간에 리리의 첫 고객이 되겠다고 돈을 주었더니 너무 강경하게 거부하며, 다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첫 시식의 영광만 얻었습니다.

처음 치즈 케이크를 베어 문 순간 입안의 식감이 달랐습니다. 빵을 자주 먹는 편이 아니라 이 분야는 문외한이지만 한국에서 먹었던 빵 맛이 있는지라, 대만 제빵이 한국에서 먹던 맛에 뒤진다는 느낌은 평소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리가 만든 치즈 케이크는 촉촉함과 씹는 느낌 그리고 여운이 지금까지 맛본 치즈 케이크 중 최고였습니다.

리리 어머니가 시식을 권하자 먹어보고 표정이 바뀌더니 바로 삽니다. 첫 고객!
리리 어머니가 시식을 권하자 먹어보고 표정이 바뀌더니 바로 삽니다. 첫 고객!

탁자 위의 전시는 초라해도 맛은 최고라며, 잘게 잘라서 시식을 해보자. 맛을 보면 무조건 산다고 격려했습니다. 준비를 다 한 다음 옆에서 음료수를 사는 여자에게 리리 어머니가 시식을 권하자 표정이 바뀌더니 바로 삽니다. 그 뒤로 시식만 하면 사는 모습을 보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안 있어 다 팔고 철수한다고 왔습니다. 판을 벌이고 두 시간도 안 되어 다 팔았답니다.

함께 온 일행이 시식 후 모두 삽니다.
함께 온 일행이 시식 후 모두 삽니다.

지금은 미성년자라 사업을 할 수 없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성인이 되면 다시 대만에 와서 본격적인 사업을 하겠다고 합니다. 만약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계속 먹고 싶어 하는데, 그냥 독일로 돌아가면 몇 달 고생하며 쌓은 브랜드 가치가 너무 아깝지 않으냐? 친척에게 기술 전수하고 방학을 이용해 틈틈이 관리하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레시피를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언젠가 리리는 자신의 꿈을 반드시 이룰 것입니다. 리리의 행복을 기원하며 행운도 함께 빕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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