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고 박해명 님의 사연 (필명 김자현)

 

 1948년 12월 선암리에서 희생되신 고 박해명님의 근경!
 1948년 12월 선암리에서 희생되신 고 박해명님의 근경!

 

내 아들 박해명에게!


너 그렇게 가고 처음으로 불러보는 나의 아들 해명아-!
칠흑 겉은 밤에 그렇게 흉하게 갔다만

착한 우리 새끼 아무런 죄 읎는 것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아시리라
지금 네가 사는 하늘나라에는 늘

흰 쌀밥에 괴기 국도
먹을 만치 먹을 수 있는 그런 나라문 좋겄다 

좌도 읎고 우도 읎는 나라, 보도연맹도 빨갱이도 읎는 나라 

소름끼치던 게다짝 닥닥 끄는 왜 소리 떠나가는 줄 알았더니
내 아들까지 잡아먹는 코쟁이 세상 올 줄이야

세상 천지 돌아댕겨도 내 아들 해명이, 너 만치 잘 난 놈은

내 여태 보질 못했어야! 

하늘을 올려다 보문 별은 총총헌디 네 얼굴을 없어야

아모리 이쁜 꽃도 너만은 못하당께!

 

각설하고 오늘 할 야그는 네 각시니 네 허락 받어야지

네 동상들도 찬성했어야!

네가 불쌍한 건 세상이 다 안다마는 

갸 친정에선 딸이 불쌍혀서 얼매나 가심을 치겄냐

꾀꼬리도 암수가 함께 날고 까치도 암수 동반하여 댕기는디

은제까지 니 댁, 송경남이 시퍼런 청춘을 말려 죽이랴 

너 갈 때보다 애간장 더 끊어진다마는 보낼 사람은 보내야지 

은제까지 끌어안고 산다고 저승이 이승 된다더냐 

 

욕심이 과하문 화를 불러오는 법, 네가 왜놈 나라에 공부하러 가지만 않았던들

그 변은 당하지 않았을까

네가 남긴 그 귀하디 귀한 핏 줄 한 점, 정주가 한없이 가엾다마는

8살이니 갸도 알아 들을 만치 야그 했느니라

 

막상 네게 허락을 받는다마는 

내 어찌 살아질 지 폭폭한 가심 가심 어디다 열어 볼꼬 

지발 잘 헌다고 그 하늘나라에는 코쟁이도 읎고 순사도 읎는 나라문 좋겄구나 

늘 흰 쌀밥에 괴기 국도 먹을 만치 먹을 수 있는 그런 나라문 좋겄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너도 그기서 이쁜 각시 하나 얻으면 어쩌겄냐 

북망산은 대문 밖인디 이승과 저승은 너무 머니 말이다 

폭폭할 때  또 핀지 하마 불쌍허고 불쌍한 내 새끼야 

꼭 한번 만이라도 다시 안아보고 쓰다듬고 싶구나!

 


*.희생자- 이번 사연은 여순 항쟁, 서울유족회 사무국 차장으로 계신 유족 박정주 님의 사연입니다. 박정주 님은 48년생으로 여순 항쟁이 나던 해 태어나셨습니다. 희생되신 분은 부친으로 고 박해명 님이십니다. 3남매의 장남이셨던 고 박해명 님은 당시 30세로 일본 명치 대학을 다니시던 중 잠시 귀국하십니다.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귀국하셨는데 결국 정주 님의 조부께서는 돌아가시고 1년 후 일주기를 맞이합니다

당시 박정주 님이 태어나 아버지 어머니와 거주하던 보성군 율어면 선암리 798번지는 마을로부터 좀 떨어진 외진 마을이었답니다. 여순 사건 이후 시절이 하도 수상하고 잡혀갔다 하면 죽임을 당하던 세상이라서 밤이고 낮이고 거리를 나다니기도 위험했답니다. 그래서 외진 마을 선암리 자신의 본가에서 지내지 못하고 보성 시내 인척 집에서 피신하여 살고 계셨답니다. 그러던 중 유족 박정주 님의 조부 1주기가 다가와 부친 고 박해명 님이 자신의 아버지 제삿날, 48년 12월 29일, 제수를 구매해 장에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집을 둘러싸고 매복해 있는 토벌대에 덜컥 잡히시어 바로 희생되셨습니다. 모친은 여산 송씨로, 율변에서 시집온 고 고경남 여사이십니다.

 고 박해명 님의  아드님,  유족 박정주 님
 고 박해명 님의  아드님,  유족 박정주 님

 

*. 위의 시는 유족 박정주 님의 조모께서 처참하게 돌아간 아들, 고 박해명 님을 추억하고 그리워하여 하늘로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형상화해 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억통이 무너지는 유족들의 한과 아직도 눈 감지 못하신 고인의 넋을 위로할 수 있을지, 저의 글은 못나고 지식은 일천하니 어쩝니까!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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