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 여순사건 때 진압군이 민간인을 검문하고 있는 장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1948년 10월 여순사건 때 진압군이 민간인을 검문하고 있는 장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세상읽기] 손아람 | 작가

“제주도 4·3 사건의 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한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여수·순천 일대를 점령한 사건.” 국사 교과서에서 단 한 토막으로 다룬 여순 사건의 내용이다. 손을 들어보라. 여순 사건에 대해 이보다 더 자세히 아는 한국인은 몇명이나 될까?

여기에 거짓이 담기진 않았다. 모든 역사적 기술이 그렇듯이 불완전하게 정제된 정치적 관점이 담겨 있을 뿐이다. 이 관점은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가늠하는 잣대이며, 연쇄적인 질문들의 시발점이 된다. 여순 사건의 피해자는 누구를 말하는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몰살당한 ‘일부 군인들’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학살당한 민간인을 뜻하는가? 그렇다면 몇년 전 국회를 통과한 여순 사건 특별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몰살당한 군인들인가? 반란군과 싸우다 순직한 국군인가? 혹은 전투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인가?

다 잘못된 질문들이다. 최초의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여순 사건을 이야기할 때, 혹은 여순 사건 희생자를 언급할 때, 문제시되는 것은 반란의 성격이 아니며 반란 그 자체도 아니다. 과거 이 사건 조사보고서를 발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순 사건은 “여수와 순천 일대의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집단적, 개인적으로 희생된 사건”이고, “반란동조 세력으로 규정된 주민들에게 깊은 피해의식과 상호불신감을 심어준 사건”이며, “국가권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제2전선 지역에서의 민간인 집단희생”이기 때문이다. 제주 민간인 진압을 거부하고 반란에 가담한 14연대 군인은 최대 2천여명, 그중 남로당 소속이었다고 알려진 장교는 단 두명이었던 데 반해, 1949년 당시 전라남도 당국이 확인해 집계한 민간인 희생자 수만도 1만명이 넘는다.

2006년 발간된 ‘여순사건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여수와 순천 지역의 확인된 민간인 희생자 2402명 가운데 반란군이나 좌익에 의한 희생자는 458명이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반란군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반란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아 경찰과 군인에 의해 살해당했다.

국가권력의 근간이어야 할 법은 광기에 잠식당해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사례로 광주지방검찰청 차석검사 박찬길 살해 사건을 들 수 있다. 경찰이 검거한 좌익 인사를 사법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가벼운 형벌을 내리려 했던 이 검사는 반군에 협조한 죄목으로 학생 등 20여명과 함께 경찰에 의해 즉결처형당하고 말았다.

14연대 반란은 김일성의 지시나 남로당의 조직적 개입이 아닌 일부 하사관 그룹의 돌발행동에 의해 일어났다는 게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사실’이 아닌 ‘통설’인 이유는 사료와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반란이 김일성의 지시를 따라 일어났다는 일부 주장처럼, 반란이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는 학설도 확정이 가능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여순 사건의 중요한 쟁점은 “반란이 왜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왜 반란군의 머릿수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이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당해야 했는가?”다. 반란에 초점을 맞추면 더 중요한 문제가 초점 바깥으로 소실되어버린다. 그런 게 바로 정치적 관점이 역사를 분쇄하는 방식이다. 이 관점은 수천수만의 민간인 희생자 대신 김일성의 지령을 받았을지 모를 단 한명의 적색분자를 쫓는다. 역사를 편리하게 재단하는 태도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제주 4·3 학살과 여순 학살이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남로당의 개입 때문에 일어났다고 한마디로 정리했던 것처럼.

공산당에 협조한 혐의로 국가가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먼 과거의 사건과, 공산당 때문에 학살이 일어났다는 국회의원의 주장은 뭐가 다른가. 반세기를 건너뛴 정치적 연속체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이달 중순 제주도를 방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민의힘 지도부 선거에 임하는 모든 사람이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으니, 이 기회에 질문지를 작성해보고 싶다. 김일성 지령설이나 남로당 개입설에 대한 입장은 내 관심사가 아니니 나는 이렇게 묻겠다.

“당신은 1948년 여수와 순천, 그리고 제주에서 국가가 국민을 닥치는 대로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한겨레 손아람 작가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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