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 곳곳에도 분단의 아픔이

일본목련은 후박나무가 아니다

산마루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희끄무레한 일본목련 이파리 한 장을 높이 들었다. 눈치 빠른 어떤 분이 이럴 때는 엿을 드셔야 한다고 하자, 저마다 남겨둔 엿을 꺼내 문다. 이에 들러붙지 않고 은근한 단맛을 풍기는 전통엿이라고 한마디 보탰다.

울릉도 호박엿!
본디는 울릉도에 자생하는 후박나무 껍질을 우려낸 물로 만들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나무껍질을 약재로 사용하거나 잎과 함께 선향(線香)의 원료로 활용했다. 후박엿이 육지에 전래하면서 호박엿으로 와전됐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은 실제로 호박을 고아서 만들고 있다. 그렇지 않고 아직도 후박을 고집했다면 이 땅의 후박나무는 남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후박나무는 남부 수종이다.
호남이나 영남의 섬이나 해안지방, 그리고 제주도와 울릉도에 산다.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키가 크고 이파리가 넓적한 상록수이다. 격포리의 후박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육지에서 후박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지역이 전북 부안지방이다. 다시 말하면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다.

봄에 나는 새순은 붉은색을 띠다가 녹색으로 바뀐다. 자글자글한 황록색 꽃이 원뿔모양을 이룬다. 콩알만 한 열매가 녹색으로 달리는데, 이듬해 7~9월에 검은빛을 띤 자주색으로 익는다. 잎은 모여나기처럼 보이지만 어긋나기 잎차례이다. 둥글고 길쭉한 타원형 잎이 도톰하다. 늘푸른 활엽수답게 잎이 반질반질하고 윤이 난다.

그런데 서울의 학교나 정원에서 후박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나무가 가끔 보인다. 일본목련이다. 우리네 후박나무와 달리 잎이 지는 갈잎나무이다. 이는 꽃향기가 강해서 향목련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연노랑 꽃을 보고 황목련이라고도 한다. 일본목련의 생약명이 바로 후박(厚朴)이다. 이를 수입해서 판매하던 조경업자들이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유통하는 바람에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일본목련은 이제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쉬이 볼 수 있다.
목련을 비롯하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목련 자목련 자주목련 별목련과 달리 가지 끝에서 나오는 잎이 6~8개로 갈라졌다. 얼핏 보면 칠엽수와 혼동하기 쉽다. 잎은 돌려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어긋나기 잎이다. 잎몸과 측맥 주변은 물론 잎 가장자리까지 잎 뒷면에 털이 많다. 그래서 잎 뒷면이 희끗희끗하게 보인다. 한편, 제주 원산인 목련을 비롯하여 중국 원산의 백목련 자목련 자주목련 별목련 모두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그러나 일본목련은 우리 토종인 함박꽃나무(산목련), 미국 원산인 태산목과 함께 잎이 나온 뒤에 꽃이 핀다.

일본목련(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일본목련(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후박나무(사진 출처 : 국립수목원)
후박나무(사진 출처 : 국립수목원)

 

우리네 것들은 왜 이다지도 까탈스러운가? 반면에 일본목련은 어느 숲, 어느 자리에서도 싹이 잘 트고 잘 자란다. 게다가 잎의 길이는 30cm 안팎으로 크고 넓은 길둥근꼴(장타원형)이다. 거의 모든 햇빛을 독차지하니 다른 아이들은 치여 지내기 일쑤다. 자연스럽게 숲 생태를 교란한다. 침엽수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활엽수까지 성장을 충분히 방해한다. 더구나 먹이가 귀할 때 직박구리 같은 새들이 그 씨앗을 즐겨 먹고 산속에 떨어뜨리다 보니, 이젠 우리네 야산 어딜 가도 일본목련이 많이 보인다. 머잖아 우리나라 숲의 우점종(優占種)으로 군림할지도 모른다.

사방에 널브러진 일본목련 낙엽.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일본목련은 이제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쉬이 볼 수 있다.
사방에 널브러진 일본목련 낙엽.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일본목련은 이제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쉬이 볼 수 있다.

 

우면산 곳곳에 분단의 아픔이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북한의 특수전 부대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우면산 일대에 M14 대인지뢰가 매설되었다. 이후 1999년부터 7년간 지뢰 제거 작업이 있었지만, 우면산 정상 방공포 기지 근처에 매설되었던 10여 발은 현재까지도 확인이 안 되고 있다.” (나무위키)

그래서 그런지, 군에서 설치한 벙커랑 낡은 창고, 그리고 군사보호구역임을 알리는 돌기둥, 지뢰매설지역이라고 써 붙인 가시철조망, 사진을 찍으면 무슨 법 어쩌구 하는 경고문이 곳곳에 눈에 띈다. 서울의 중심 강남이다. 조용하고 으슥한 산길 아닌가? 도드라진 경고문은 오히려 더 섬찟하다.

벙커(아래의 맨 위 사진) 입구에는 LP 가스통이 나뒹굴고 있다. 위치로 보아 산사태와는 무관하다. 서울교육연수원 뒷산 정자 바로 옆이다. 3년 내내 연수생들과 함께 오르던 곳이 아닌가? 아이고, 이것 참 무던한 철부지가 따로 없구나. 그것도 경쟁하듯이 정자를 차지하고 앉아 생태 놀이에 여념이 없었으니, 참으로 말하기도 뭣하다.

그런데 살아생전 징한 꼴들 하도 많이 본 탓일까? 이골이 난 사람들답게 누구 한 사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지, 저런 위험물을 보고도 지나칠 리가 없다. 서두르다가 보지 못하고 내려간 게 분명하다. 하기야, 산 아래 보이는 연수원 너머 남부순환로와 맞닿은 방배로 서초로 반포로만 바라보아도 호강에 겨운데(?), 구태여 정자 밑 무덤 같은 땅구덩이까지 들여다볼 이유는 없으렷다. 너라고 별수 있을까? 두 번 다시 거들떠보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부리나케 서둘러서 내려갔다.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가 곳곳에 방치돼 있다. 녹슨 가시철조망이 끊어진 채, 사유지이므로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흉물스레 걸려 있다. 또, 허물어져 가는 창고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고 새긴 글자가 닳아 판독이 어려운 표지석이 보인다. 우면산 곳곳에 분단의 아픔이 서려 있다.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가 곳곳에 방치돼 있다. 녹슨 가시철조망이 끊어진 채, 사유지이므로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흉물스레 걸려 있다. 또, 허물어져 가는 창고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고 새긴 글자가 닳아 판독이 어려운 표지석이 보인다. 우면산 곳곳에 분단의 아픔이 서려 있다.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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