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취한 늙은이들

비탈에서 수평을 잡는 배부장이들

뒤처진 분들이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마침맞게 세갈래길이다. 사람들이 주로 나다니는 길은 비워두고 샛길로 비켜섰다. 무리 지어 바투 서니 그럭저럭 괜찮은 공간이다. 수북이 쌓인 낙엽 위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발길에 차인다. 낙엽 인간을 꾸밀까 하다가 ‘젖은낙엽’이 떠올라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인다. ‘제대로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쓸모없는 존재’라니, 아니다! 아직은…. 수평 잡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먼저,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오른손 손바닥 위에 가로로 눕혔다. 어렵지 않게 중심을 잡았다. 다시 손등 위에 눕히고 균형을 잡는다. 다음에는 손목 안쪽과 바깥쪽 위에 번갈아 놓는다. 이어서 검지 안쪽과 바깥쪽 위에 눕힌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포도시 나뭇가지가 수평을 이루는 순간, 평형은 깨지고 나뭇가지는 곤두박질한다.

이번에는 새로운 도전이다.
나뭇가지를 검지 끝에 수직으로 세우는 일이다. 적어도 10초 이상 세우고 있어야 한다. 평지에서라면 팀을 나누어 이어달리기나 왕복달리기도 가능하다. 쉽지 않다. 벌써 예서제서 투덜투덜 퉁파는 소리가 들려온다. 균형을 잡으려니 몸이 절로 갈지자를 그린다. 숨을 멈추고 온몸을 가누지만 아무리 용써도 제멋대로 건들거린다. 몇 번을 비틀거리다가 저마다 진땀승에 쾌재를 부를 때쯤, 나뭇가지끼리 포개서 수평을 잡도록 했다. 급기야 그만하자고 보채더니 창던지기가 어떠냐며 집어 던지는 이가 나왔다. 안경을 반쯤 들어올리고 씩 웃었다. 지그시 겨누어 보면서 근엄한 표정으로 조곤조곤 타일렀다.
“에헴, 학생이 공부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어기면 아니 되옵니다.”

마디에 옹이 신세 탓하는 이보다는, 대부분 손주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상사일념(相思一念)이 앞서는 분들이다. 그렇다고 비쭉비쭉한 가지껍데기를 다듬고 훑었지만, 곧게 뻗은 생가지가 아니다. 굽고 삭고, 매캐하고 퀴퀴한 냄새까지 풍긴다. 게다가 서 있는 자리가 대개 비탈이다. 나뭇가지 없이 발을 떼기만 해도 균형을 잃고 기우뚱하기 십상이다. 선무당이 장구 탓한다고 걸핏하면 나뭇가지를 내팽개치는 이들이 눈에 띈다. 몇몇은 돌아다니면서 졸가리나 삭정이를 꺾는 분도 보인다.

묵삭은 나뭇가지 하나로 온 산이 떠들썩하다.
왕년을 들먹이다가 서로 놀리고 깔보고 으스대고 핀잔하느라고 야단법석이다. 때로는 구박질도 마다하지 않지만, 구박데기는 없다. 모두가 도찐개찐이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뉘를 낼 무렵, 자칫하면 손주가 몰아칠지도 모르니, 짬날 때마다 심신을 갈고 닦아 나뭇가지의 달인으로 등극하시라고 너스레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내가 문제였다.
말로는 뭘 못하랴. 오만 잡설 늘어놓으며 ‘하라, 하라’ 하지만, 막상 스스로 나뭇가지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니 말이다. 배낭까지 멘 배부장이 주제에 글쎄, 나는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하라? 구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 좀 작작할 나이련만, 애송이 때의 꼰대질을 여전히 좇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뭇가지를 들고 지부별로 모이자고 했다. 순간 땡감 씹은 표정들이 번지고 스친다. 사방에서 구시렁거린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휙 버린’ 나뭇가지를 다시 주섬주섬 주워 들고 모였다.

모둠별로 집을 짓되, 나뭇가지를 이용하고 지형지물을 활용하자고 했다.
'10분 뒤에 심사하겠다, 집을 잘 짓는 게 관건이 아니다, 심사위원장 속내를 꿰뚫고 재주껏 잘 보이도록 하라, 말인즉슨 간살스럽게 구는데 인색하지 마시라.’고 걸쭉하게 넉살을 피웠다. 그리고 한껏 뻐기면서 집을 탐나게 짓는 지부는 보상이 따른다고 다그쳤다.

방향을 조금 바꾸어 보자.
집짓기 놀이는 훨씬 더 재밌다.
다만, 몇 가지 소품이 필요하고 연출하기 위한 준비가 충분해야 한다.

조류 사회에서는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를 쓴다. 우선 건강미와 아름다운 자태는 기본이다. 노래 실력, 육아 능력, 다른 새나 짐승 소리를 모방하고 심지어 전기톱 소리까지 내기도 한다.

그 가운데 크고 화려한 집을 짓는 바우어새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 사는 새로, 정원사새, 정자새, 신방짓기새라고도 부른다. 다른 새에 비해 깃털은 수수하다. 한 마디로 몸치장은 관심 없고, 집사치가 대단하다. 청소는 기본이다. 잔가지를 엮어서 필요 이상으로 커다란 은신처를 짓는다. 높이가 1m 정도나 되는 구중심처다. 이끼로 뒤덮인 신방 앞 뜰은 여러 가지 꽃잎 열매 나뭇가지 돌 조개껍데기 등으로 화려하게 꾸민다. 모두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소품이다.

취향에 따라 소품의 색깔이 다양하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암컷이 집을 찾아온다. 그런데 잠시 둘러보고 날아가 버린다. 수컷은 이내 암컷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소품을 재구성하거나 파헤친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일상이다. 이렇게 신방을 완성하면 청승궂게 지저귀며 암컷을 유인한다. 그렇다고 염두에 둔 특정 암컷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됐든, 씨암컷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는 듯하다. 아무튼 지극정성이다. 수컷은 흉내를 잘 내고 색다른 노래 목록까지 있다. 비둘기를 비롯하여 비늘테앵무나 큰유황앵무 울음소리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BBC, C-‘생명 05부 – Birds’에서 발췌•편집).

 

사진 출처 : BBC, C-‘생명 05부 – Birds’

 

바우어새 신혼집(출처 : 김석민, 동고비 조류생태강좌, 2018)

 

나뭇가지 하나가 마약이었어

우리네 집짓기도 이를 원용한다.
어디까지나 서로 맘을 열어야 한다. 그러니까, 남자는 집을 짓고 여자가 남자를 선택하도록 해 보면? 주방 장갑이나 냄비 집게를 이용하여 집게발을 높이 치든 흰발농게로 분장하거나, 머리깃을 높이 세우고 접부채로 꽁지깃꼬리를 활짝 펼치는 공작새 흉내를 내도 좋을 것이다.

여기는 정글이다!
면치레는 접어두라. 갖가지 생존 기량은 기본이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노회함을 드러내도 좋다, 그러니 건뜻하면 남의 집 삽작 훔쳐, 내 집 울타리를 만드는 것쯤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나뭇가지 하나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씨름판이 벌어지고, 홧김에 남의 집을 허물어뜨리거나 빼앗아도 그만이다….

자, 이쯤 해 두고 지켜보라.
당당한 7080이 아주 밑구멍에 불이 난 듯 내남없이 부산을 떨고 있다. 이리 저리 뛰다가 넘어지고,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내지른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를 관조하는 이도 있다. 그는 잇따라 사진을 찍다가 허리를 젖히고 웃느라 정신이 없다. 망팔은 기본이다. 망구를 넘은 분도 계신다. 학생들 앞에서 그렇게 점잔빼던 ‘선생들’이요, 손주 앞에서 한없이 관대한 분들이 아닌가. 뒤뚱거리고 허둥대는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나다.

그렇게 해서 지은 집 좀 보자.
어느 지부 가릴 게 없다. 5개 지부 모두 매한가지다. 선사시대 움집도 저렇지는 않았을 거다. 지붕도 없고 삽작도 없다. 비가림은커녕 드나드는 곳이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래, 공력을 가장 많이 들였다는 강남 지부는 어떤가? 은신처 찾던 들고양이가 내지르는 웃음소리에도 주저앉을 것 같다. 보기가 민망하다. 늙은이 아이 된다는 속담은 누가 만들었을까? 손주들이 지은 집과 비교해 보라. 애만도 못한 늙은이란 말의 연원을 알 것 같다.

그러나저러나 저런 집이나마 자랑질에 여념 없는 여덟 늙은이 좀 보소.
그래, 맞다! 모양새만 보고 낫값 좀 하고 살자고 푸념하지 마라. 헤픈 웃음 떠올리며 속없다고 속치부하지 마라. 겉보기 좋아 웃는 게 아니라, 웃는 모습이 보기 좋은 게지….

초등학생들의 집짓기놀이, 그리고 집짓기보다는 봄놀이가 좋은 늙은이들(사진 제공 : 숲생태문화협동조합)
초등학생들의 집짓기놀이, 그리고 집짓기보다는 봄놀이가 좋은 늙은이들(사진 제공 : 숲생태문화협동조합)

 

드디어 ‘심사’를 시작했다.
동작지부는 마실을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성북지부는 둘이 단출하게 꾸몄다. 그런데 공정한 심사는 이미 글렀다. 심사를 하기도 전에 사방에서 위력을 과시한다. 임명장 없는 심사위원들(?)이 몰려다니면서 갖은 트집을 잡는다. 한마디 하면 옆에서 댓 마디씩 거든다. 돌무더기를 보더니 돼지우리가 아니냐고 어깃장을 부리는데, 옆에서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무릇 집터란... 앞에는 못이 있고 좌우로 길이 있고 뒤에는 언덕이 있어야 하는 법, 보이는 건 광대와 건달들 집성촌이니 후손이 화를 면키 어렵다.’면서 당장 허물어뜨릴 기세다. 그때 누군가 휴대전화로 남향을 확인하더니, 뜬금없이 ‘이 집은 북망산천을 향했으니 불원 초상을 치를 거다’라고 악담패설을 퍼붓는다. 애써 집을 자랑하던 이들이 ‘잡귀야, 물럿거라.’ 하고 삿대질하자, ‘악담이 덕담 아니냐?’고 되레 홉뜨고 바라본다. 한쪽에서 뒷간이 안 보인다고 딴지를 걸자, 쥔장은 명색이 양반집이라고 희떱게 웃더니 한 소리 내지른다.
‘뒷간을 안에 들이는 거렁뱅이 심사위원은 한 발짝도 들이지 마시라.’

씨타령은 이제 그만

그렇다!
마약이 따로 없다. 불과 30분 남짓했지만, 웃음엣말이 끊이질 않았다. 모두 한마음이다. 모처럼 한껏 웃었다. 너나없이 입천장 훤히 드러내고 마냥 웃어 젖혔다. 그만큼 오늘의 나뭇가지 놀이는 옹글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노소를 구별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소속이나 출신이나 직위는 관심 밖이었다.
그딴 건 모두가 성가시고 거추장스러운 속세의 멍에끈 아니더냐?
맥없이 하는 말 아니요, 괜한 우격다짐도 아니다.
남은 건 자존감뿐, 떠날 준비 고루 갖춘 몸이다.
낫살깨나 먹은 몸, 뉘라서 입발림에 눈이 갈까.
그 누구도 함부로덤부로 넘보지 마라.
내가 날 구속해도 진저리치는 판에
감히 날 구속하려 하지 마라.
다름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
싫든 좋든 니가 상관할 바 아니다.

하물며 성씨 눈씨 말씨 맘씨 발씨 글씨 솜씨가 어떻길래
아직도 씨타령이냐?
씨알머리없는 소리 작작하라.
볍씨 한 톨만도 못한 것들!
정령 이 땅과 후손을 지키다가 산화한 무명씨들은 말이 없음을 기억하라.

쪽박 들고 나선 이
빈손으로 내쫓을까?
불낸 놈이 불이야 한들
꼬장 부릴 사람 누구인가?
무슨 말을 해도 넘어가고
무슨 짓을 해도 타박하는 이 없다.
웃으며 뺨치듯 해도 웃고 말지
뉘라서 쓴웃음 찬웃음 헛웃음 따지랴?

우면산 정상에 있는 소망탑, 오가던 이들이 따로따로 소망을 담아 하나둘 쌓아 올린 탑이다. 이곳을 찾은 그린에듀 단원들은 무엇을 빌면서 탑돌이를 했을까? 돌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무명씨들의 갖은 소망 그러쥐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 구제철)

 

편집 :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박춘근 객원편집위원  keun7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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