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바야흐로 농사철로 접어든다. 나의 고향은 수도권인 화성시 시골 마을이다. 나는 퇴직하여 시간도 있고 하여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 동안 텃밭에 농사를 짓기로 했다. 수년째 밭농사 일을 하고 있다. 밭에서 겨울을 나는 마늘, 양파, 대파, 쪽파, 부추는 물론 고추, 가지, 오이, 호박, 파프리카, 등 열매채소와 상추, 치커리, 쑥갓 등 잎채소, 고구마, 참깨, 들깨 등을 가꾸어 그야말로 여름 동안에는 식탁이 풍성하다. 더불어 아파트 옆집들도 풍성해진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라는 속담이 참 어울린다.

오늘은 그중 참깨와 들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말 중에는 '참'자가 접두어로 붙으면 한자의 '眞'으로 해석되어 가치가 높아지는 것 같다. 반면 '들'자가 붙으면 아무래도 '野'로 해석되어 좀 거친 의미로 해석되는 것 같다. 둘 다 옛날에는 귀한 식재료인 '식용유'를 생산하는 대표적 작물인데 어떻게 이런 대접으로 나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우선 그 열매만 보아도 수긍이 가기는 한다.

참깨는 참깨를 둘러싸고 있는 씨방에서 분리되면 하얀 알맹이가 되어 바로 먹을 수가 있다. 어려서 어머니 몰래 훔쳐 먹던 깨소금의 고소한 맛은 그런 의미라면 '참'자를 몇 개 더 붙여도 괜찮을 것이리라. 반면 들깨는 씨방에서 분리가 되어도 단단하고 두꺼운 껍질이 알맹이를 둘러싸고 있어 바로 먹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기름을 짜는 외에는 식용으로 쓸 수가 없었다. 최근에서야 기계의 발달로 들깨 껍질을 벗기는 기계가 개발되어 들깻가루를 직접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추어탕에 넣어 먹는 들깻가루가 바로 이것이다.

예전에는 참깨나 들깨나 모두 밭에 씨를 직접 뿌렸었다. 지금은 농사를 좀 짓는 사람은 거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판에 모판용 흙을 채우고, 참깨나 들깨의 씨앗을 넣어 싹을 틔워 적당히 컸을 때 밭에 옮겨 심는 방법으로 한다. 나는 심는 양이 많지 않아 직접 씨를 뿌리는 방법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직접 씨를 뿌릴 때는 씨앗이 싹을 틔우지 않거나, 좀 자란 싹을 벌레가 먹어 죽었을 때가 문제가 된다. 예비로 모판의 여유분이 있을 때는 빈자리에 옮겨 심으면 되는데 애초부터 모판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분이 없다. 여기서 씨앗이 많이 뿌려져 여러 개가 싹을 틔운 것을 옮겨 심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서 참깨와 들깨는 갈린다. 참깨는 모종을 주로 하지만, 들깨는 아직 적당히 씨를 뿌리기도 한다. 참깨는 벤 것을 뽑아 심으려 할 때 뽑히는 싹의 뿌리를 살리려고 손삽이나 호미로 떠내려 하면, 남아있는 싹의 뿌리까지 건드려 죽일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 결국 뽑히는 싹만을 적당한 완력으로 잡아당겨 뽑아야 하는데, 대부분 뿌리가 끊기게 된다. 이렇게 옮겨 심어 보면 참깨는 생존율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들깨는 물만 적당히 주고 옮겨 심으면 거의 다 산다. 그뿐만 아니라, 참깨나 들깨나 밭에 떨어져서 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봄에 싹을 틔우기는 한다. 그러나 참깨는 잡초들을 이기고 올라오지 못하지만, 들깨는 잡초들 틈에서도 굳건히 대를 키운다. 참깨는 그만큼 까다롭고, 약하다 할까. 거기에다 어린 싹일 때 참깨에 벌레가 더 많다.

들깨꽃(사진 출처 : 무료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hmlwh/14992270636)
들깨꽃(사진 출처 : 무료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hmlwh/14992270636)

그리고 참깨나 들깨에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거름을 많이 주면 안된다는 점이다. 거름을 많이 주어 짙은 녹색으로 줄기와 잎이 번성하면, 바로 병충해의 목표물이 되고 만다. 병충해를 피했다 해도, 키가 크게 웃자라면 거의 비바람에 쓰러진다. 쓰러진 참깨나 들깨는 거의 쭉정이 농사를 지었다고 보아야 한다.

참깨는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은 편이다. 대개 8월 말쯤이면 수확을 할 수 있다. 수확기를 잘 택하여야 한다. 항상 줄기의 아래에서부터 열매를 맺기 때문에 줄기 윗부분의 꼬투리까지 여물게 하여 수확하려면 먼저 맺힌 열매는 벌어져 씨앗을 흘리게 된다. 최대수익분기점을 찾아야 한다. 맨 아래와 맨 위를 버리고 가운데를 취하면 된다. 그런데 수확기에는 문제가 또 생긴다. 참깨나 들깨는 참새나 쥐에게도 고열량의 맛있는 식품이다. 참새는 깨밭에 기를 쓰고 달려든다. 이 녀석들은 부리로 꼬투리를 털어 우수수 떨어진 깨를 주워먹는 꾀를 부린다. 사실은 그래서 적당히 여물은 참깨나 들깨를 베지 않고는 못 견딘다.

참깨나 들깨는 수확 과정에도 주의해야 한다. 여물은 꼬투리는 건드리면 씨앗이 막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먼저 깨가 튀어 나가지 않을 정도 넓이의 비닐 멍석을 깔고, 참깨나 들깨나 모두 벨 때는 한 그루씩 낫으로 베어 적당량이 될 때까지 모아서 들고 옮길 비닐이나 천 등이 필요하다.

참깻단(사진 출처 :  무료사진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EC%B0%B8%EA%B9%BB%EB%8B%A8.JPG)
참깻단(사진 출처 : 무료사진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EC%B0%B8%EA%B9%BB%EB%8B%A8.JPG)

참깨는 베어서 비닐에 쌓아 비닐 멍석에 쌓아놓고, 일일이 잎을 따내어 10대 정도씩 묶어서 쓰러지지 않게 세워둔다. 들깨는 참깨와 달리 가지런히 정리가 안되기 때문에 적당한 양으로 묶어 세워둔다. 이때 참새에 대비도 하여야 한다. 이렇게 10일 정도 지나면 완전히 마르게 된다. 참깨는 넓게 비닐 멍석을 깔고, 한 묶음씩 한 손에 거꾸로 들고 적당한 크기의 막대를 다른 손에 쥐고 때리면 된다. 떨어지는 깨알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깨가 없을 때까지 묶음을 돌려가면 털면 된다. 하얀 참깨가 비닐 멍석에 쌓이는 것을 보면 그 재미도 쏠쏠하다.

들깨의 경우는 '도리깨'라는 농기구가 쓰인다. 두드릴 때 튀어 나가지 않을 더 큰 비닐 멍석을 깔고 도리깨나 회초리로 씨방에서 들깨 알이 분리될 때까지 내리쳐야 한다. 두들겨 맞아 흐물흐물한 들깨 줄기를 분리하여 버리면, 들깨와 들깨의 마른 잎 등이 한데 쌓이게 된다. 여기서 '어레미'1가 필요하다. 어레미로 부서진 잔 줄기와 마른 깻잎들을 분리한다. 그다음은 바람에 날려 알맹이만을 모은다. 마지막에 물에 넣어 조리질하여 돌과 먼지들을 분리하여 햇빛에 말리면 끝이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깨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깨는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른다. 고마운 마음으로 소비해야겠다는 생각을 농사를 지으며 깨닫는다.  그리고 농사일이 얼마나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세월이 한참 흘러 이런 농사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능장 같은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세세한 작업 과정이 기록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농민들이 왜 쌀농사에 목을 매는지도 들여다보게도 된다. 

주 1: 어레미는 밑바닥의 구멍이 굵고 큰 체를 말한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승남 주주  psn12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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