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의정부 주교좌 성당에서

집에서 가까운 의정부 성당에서 시국미사를 연다고 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 입구에서 윤석열 퇴진 피켓을 들고 있는 초등학생을 만났다. 

피켓을 든 초등학생
피켓을 든 초등학생

"사진 찍어도 돼요?"라고 물으니 "네~ "한다. 궁금했다. " 스스로 결정해서 나왔어요?"라고 물으니 "아니요." 그리고 이어 당당하게 " 하지만 이 피켓은 제가 스스로 든 거예요." 한다. 요새 초등학생들도 윤석열의 본모습을 안다고 하던데.. 진짜 그런가 보다. 참 슬픈 일이다. 

촛불행동 자원봉사자가 최종대 어르신께 양회동 열사 추모 뱃지를 가방에 붙여주고 있다. 
촛불행동 자원봉사자가 최종대 어르신께 양회동 열사 추모 뱃지를 가방에 붙여주고 있다. 

나이가 무엇이랴. <한겨레> 주주 최종대 어르신과 만나 함께 미사에 참여했다. 어르신은 서울광장 미사는 코로나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후 미사는 매번 참석하셨다. 여기저기 어려운 이웃들이 있는 곳에 항상 연대의 힘을 보태시는 어르신의 연세는 87세다. 무릎 연골 수술도 받은 적이 있는 어르신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발이 막 움직일 정도로 걸음이 무척 빠르다. 어르신을 따라가려면 내가 자주 뛰어가야 한다. 나도 80 넘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미사 시작을 기다리는 신부님들이 여기저기 모여있다. 신부님 약 70명이 미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저렇게 해맑고 선한 신부님들인데... 지난 3월부터 이어지는 '윤석열 퇴진 미사' 성명서를 보면 천주교 특유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내용이 강경하고 선명하다. 이처럼 분명한 명문은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속이 시원하다는 것을 넘어.. 지금 한국 사회를 너무나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기술한 한마디 한마디에 처절한 심정이다.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사제단 홈페이지에서 여덟 성명서 찾아보기 : http://www.sajedan.org/sjd/bbs/board.php?bo_table=sjd02_02&page=2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1층에 자리가 없어 2층으로 올라갔다. 나중에 1층에 내려와 보니 복도에까지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의정부 주교좌 성당은 큰 성당은 아니다. 수녀님 40여명, 신자 6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하니 자리가 없을 수밖에 없었겠다. 

의정부 교구 원동일 신부님이 강론하셨다. "친일·매국, 검찰 독재의 위기에서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검찰 캐비닛에 여러 파일이 보관되어 정치인, 언론인들이 움직이지 않기에 종교계가 움직이고 있다"라며 윤석열의 특징을 세가지로 들었다. "첫째는 자신감 넘치는 무지다. 매번 자신감이 넘쳐 남을 가르치려 든다. 둘째는 성찰 없는 발광이다. 지지율 1%가 되도 할 일은 하겠다고 한다. 이는 내가 말한 것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데서 나온다. 셋째는 공감 능력  부재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이런 특징에서 오는 기괴함, 특히 외교 발언에서의 위험성, 기만과 배신을 달고 사는 기회주의자의 속성 때문에 윤석열은 퇴진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윤석열에게 다음을 물었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는가? 노동자를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보는가? 노동자를 국민으로 보는가? 모든 국민을 품을 수 없다면 자리에서 내려와라. 지난 1년간 정치는 실종되었다. 공정과 상식을 갖고 선의의 경쟁으로 정치해달라. 자신 없으면 내려와라"라며 윤석열의 성찰과 퇴진을 요구했다. 

영성체 시간

영성체 시간을 마치고 고 양회동 열사의 형 양회선(안토니오, 의정부교구 신자) 씨가 나와 발언했다. 그는 목이 메어 말을 잘 잇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같이 목이 메였을 것으로 본다. 하여 그의 발언 대부분을 옮겨본다.

"4월 29일 동생 양회동(미카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께 탄원서 받아줄 수 있냐고요. 5월 1일 영장실질심사에 제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려서 영세 주신 신부님께 부탁해 보겠다고, 너도 네 본당 신부님께도 말씀드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8시 조금 넘어서 전화가 왔어요. '형님, 여기 본당신부님께 말씀 안 드렸어요. 나  때문에 신부님께 피해가 갈 수도 있어서요. 오늘 미사 드리기 너무 잘했어요. 이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것이 동생하고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우리 곁을 떠나려는 동생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아직 동생 생각만 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또 조선일보의 '분신 방관' 의혹과 '유서 대필' 의혹에 대해 이렇게 묻고 싶다고 했다. . "그 기자도 한 집안의 가장이요, 아이의 아빠일 수도 있고, 남편일 수도 있는데 적어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양심마저도 저버리는 비겁한 행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가슴에 박힌 상처가 감당하기 힘든데 또 대못을 박아버리는 그런 비정함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돈 때문입니까? 아니면 무엇 때문입니까?"

그는 "지난주 미사에서 만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모습이 너무나도 슬프고 아프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위로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미카엘의 억울한 죽음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울지 말고 슬퍼하지 마라. 아파하지 말고 가족들 잘 보살펴라.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며 발언을 마쳤다. 

양회선 안토니오의 발언 
양회선 안토니오

정의구현사제단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송년홍 신부는 마지막 발언에서 "대통령을 일본 사람으로 뽑았다. 일본 오염수 방류는 바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게 생업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무서워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라며 독일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고백 <처음 그들이 왔을 때>를 들려주며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나찌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가둘 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에게 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내게 왔을 때 아무도 항의해 줄 이가 남아있지 않았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상지종 신부의 성명서 낭독을 끝으로 미사는 마쳤다. 다음 미사는 6월 5일 인천교구 주안1동성당에서 7:30분에 열릴 예정이다.

* 이글은 성당 이층에서 녹음한 글을 풀어 쓴 글입니다. 내용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혹 오류가 있다면 양해바랍니다.

의정부 시국미사 성명서 전문 보기 : 분단, 겨레의 원한怨恨  

관련 기사 : 동지·민주·투쟁’ 양회동 유서 글씨…필적감정사 “한 사람 것”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 심창식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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