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망각하고 권력에 몰입”하는 것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간 차이 없어
“대통령제의 위험” 담론은 “검찰조직의 위험” 담론으로 바뀌어야
1987년 헌법은 평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통령(전두환)과 대선주자급이 만든 비민주적 산물

사진출처(한겨레 23.6.13.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5779.html?_ga=2.178619044.1628109927.1690184927-224284533.1684366304)
사진출처(한겨레 23.6.13.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95779.html?_ga=2.178619044.1628109927.1690184927-224284533.1684366304)

지난달부터 한겨레 박찬수 대기자가 대통령제의 위험, 왜곡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대통령제의 위험’ 30년 전 경고, 현실화하다”(2023.6.13.), “초대 이승만 때부터 ‘대통령제’는 왜곡되기 시작했다”(2023.6.27.) 등이 그러하다.

박찬수 “대통령제 위험”의 변(辯)에 따르면, “이승만 정부 이후로 대통령이 국회와 정당을 경시하는 풍조는 지금까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요즘 국민의힘이 초선·중진 가릴 거 없이 대통령에게 꼼짝 못 하는 데엔 이런 오랜 역사적 경험이 디앤에이(DNA)에 새겨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한겨레, 2023.6.27.) “강력한 대통령일수록 독재 또는 재집권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강력한 대통령’ 때문에 대통령제가 위태로워지는 건 아니다. 최근 대통령제가 민주주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건,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르면 임기를 망각하고 지금 당장 행사하는 권력의 강렬함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했던 ‘임기 5년이 뭐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라는 말은 권력의 찰나적 속성을 잘 포착하고 있다. 권력은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 모든 걸 압도할 수 있으리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이 같은 박찬수의 “대통령제 위험론”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한국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갖가지 질곡이 대통령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제만 없애면 질곡이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사실 박찬수는 현재 한국사회의 질곡이 검찰도, 국회도 아니고 무엇보다 대통령제에 있다고 보는 것이 확실하다. “국민의힘이 대통령에게 꼼찍 못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그 증거가 된다. 국힘당, 혹은 그 의원이 대통령에게 꼼짝 못 하는 이유를 국회 자제의 직무 유기로 보지 않고, 대통령의 권한이 강해서 국회를 협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윤석열은 날 때부터 대통령이었던 것이 아니고 검찰에서 뼈가 굵었다. 그리고 지금도 검찰을 이용하여, 조국, 이재명 등을 겨냥하고 있다. 요즘 회자하는바, 검찰 특활비 증발(영수증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검찰 특활비 사용)도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의 신분에 관련한다.

중립과 객관성을 상실한 검찰의 편파 수사, 사법 권력 농단, 서로 아귀다툼하는 것 외에 별로 하는 것 없는 식물국회의 문제가 대통령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한 사람이 이 모든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능력을 가진 신 혹은 악마라 해도, 이런 문제를 혼자서 한꺼번에 다 발생하게 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박찬수가 구태여 대통령제의 피해를 담론으로 끌어내는 것은 편파성, 목적성이 개재한다. 그 의도 여부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그러하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장 김진표가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켜, 국회에서 뽑은 총리에게로 옮기자고 하는 논조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김진표가 주장하는 의원내각제 혹은 책임총리제가 그것이댜.

대통령 권한을 총리에게로 옮기자는 것은 권력의 중심(重心)을 국민 민초에게서 국회로 옮기자는 뜻이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국민 민초인데, 총리를 뽑는 것은 국회이다. 김진표에게 개헌은 오로지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개헌”, “의원내각제를 위한 개헌을 국민투표 없이 국회에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박찬수가 대통령제 위험론을 들고나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국회를 옹호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편, 박찬수는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는 모순된 말을 했다. 한편으로, “냉정하게 보면 ‘강력한 대통령’ 때문에 대통령제가 위태로워지는 건 아니다”라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 “최근 대통령제가 민주주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건,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르면 임기를 망각하고 지금 당장 행사하는 권력의 강렬함에 몰입하기 때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대통령”과 “임기를 망각하고 지금 당장 행사하는 권력의 강렬함에 몰입”하는 것 사이에는 무언가 차이점이 있다고 박찬수는 보는 것 같다. “냉정하게 보면” 전자는 문제가 없고, 후자가 문제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게 박찬수 혼자서 말장난하는 것 같다. “강력한 대통령”이 있으니, 그 “권력의 강렬함에 몰입”하는 대통령이 생기는 것 아닌가? 사실 간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제도로서의 “강력한 대통령”이고, 후자는 “권력의 강렬함에 몰입”하는 개인으로서의 대통령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박찬수는 “대통령 권력”은 문제가 없는데, “임기를 망각하고 권력의 강렬함에 몰입”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국회의원도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임기를 망각하고 권력의 강열함에 몰입하는 것이 그러하다. 자꾸만 재선되고 싶어하는 것이 그러하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사이에 차이점이 있긴 하다. 대통령의 재선을 향한 욕심은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는 권력의 오남용을 수반하지만, 국회의원의 경우에 재선이 되려면 당의 공천을 받아야 하므로, 당에 종속적이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소신대로 다 행사하지 못 하고, 수동적으로 노예화하는 경향이 있다.

박찬수는 대통령의 권력이 강하다고 보았으나, 실은 그렇지 않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첫째, 대통령 권한의 강약 여부보다, 그 권한을 넘어 월권, 위법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 위법은 대통령의 권한 자체가 아니라, 검찰 등 또 다른 조직을 수족같이 부리는 데서 파생하기도 한다. 이때 검찰의 권력은 대통령의 권한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대통령만 권력이 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검찰도, 법원도 가끔은, 미친년 널 뛰듯, 기준이나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력 자체가 강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수족으로 부리고 있는 검찰조직의 권력이 상식을 벗어나 있다고 해야 한다. 당장에 오늘의 윤석열을 키운 것은 대통령 권력이 아니라 검찰 권력이었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이었을 때, 그는 당시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도 안하무인이었다.

박찬수도 지적했듯이, 윤석열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 ‘임기 5년이 뭐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박찬수가 주석 달 듯이, “권력의 찰나적 속성을 잘 포착”, “권력은 물러나는 그 순간까지 모든 걸 압도할 수 있으리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검찰총장이 대통령을 우습게 본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총장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윤석열은 검찰조직을 끼고 통치를 한다. 1개 검찰청을 통째로 투입하여 야당 대표(이재명)를 집중수사하는 꼴이라는 말이 회자한다. 검찰개혁의 선두에 섰던 전 법무장관 조국은 윤석열이 대통령 되기 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 가족이 도륙당하고 있다. 감옥에 들어앉은 부인(정경심)뿐 아니라, 아예 졸업장을 반납해버린 그 자식들에게 여전히 기소할 것이라고 압박을 가한다고 한다. 부모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겸찰이 그 자식을 기소할 수 있다고 압박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박찬수가 말하는 “권력의 찰나적 속성”, “임기를 망각하고 지금 당장 행사하는 권력의 강렬함에 몰입”하는 대통령과 무관하다. 이미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검찰 권력을 끼고 작업을 해왔고, 이대로 가다가는 윤석열이 대통령인가의 여부와 무관하게 검찰 권력의 행패가 지속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 “임기를 망각하고 권력의 강열함에 몰입하는 것”에 대한 경고는 대통령에게만 할 것이 아니라, 선출직, 임명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공직자를 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만, 국회의원의 경우는 ‘임기 4년에다 또 재선되는 것이 뭐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많아요’라고 해야 할 판이다.

무지 겁많은 국회는 급기야 식물국회가 되었다. 대통령 처가 땅 있는 곳으로 갑자기 고속도로가 휘어도 국정조사 등은 실시하지 않을 것이다. 겁이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 처가 해외순방에서 명품가게에 들렀는데, 물건을 샀는지, 샀으면 나랏돈인지 개인 돈인지 등에 대해서도 국정조사는 실시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가 겁이 많기 때문이다.

박찬수가 말하는 ‘대통령제의 위험’은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다”거나, “모든 걸 압도할 수 있으리란 착각”에 있다고 보았으나, 그의 주장은 다 틀렸다. 첫째, “대통령제의 위험”이란 명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제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국회가 위험한 곳이다. 대통령을 견제해야 하는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고 정당 공천권에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통령의 권한만 강한 것이 아니라, 국회에도 권력이 있다. 다만 그 권력을 쓰지 않고 유보하고, 대통령이 월권, 위법할 때 방관한다. 셋째, 대통령이 “모든 걸 압도할 수 있으리란 착각”을 하는 것은, 그렇게 착각하도록 가만 내버려 두는 국회 탓이다.

이렇듯 국회가 제구실을 못 하니, 기자들도 국회를 물 보듯 능멸한다. 그 한 사례가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이다. 성한용은 김진표가 지향하는 의원내각제 혹은 책임총리제에 대해 눈물이 나도록 공감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 성한용에 따르면, “대통령은 자연인이 아니라 5년 임기가 보장된 헌법기관이다. 내년 총선에 야당(민주당)이 이겨도 대통령 탄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대통령 4년 중임제개헌을 제의했다. 선거제도나 권력구조는 여야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의 협상에 맡겨서는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고 야당의 대선주자급 지도자가 호응해야 겨우 가능성이 열리는 고난도 정치 기획이다. 1987년 개헌과 1988년 선거법 개정이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한다.(한겨레, 2023.7.20.)

이런 성한용(한겨레 선임기자)의 지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노정한다. 첫째, 박찬수(한겨레 대기자)의 담론과 닮은 데가 있다. 편파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성한용의 편파적 성향은 박찬수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윤석열을 옹호하고 국회를 능멸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대통령은 자연인이 아니라 5년 임기가 보장된 헌법기관”이라고 한 성한용은 “국회가 자연인이 아니라 4년 임기가 보장된 헌법기관”이라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국회와 대통령은 서로 견제해야 하고, 대통령이 월권 위법행위 하면, 국회가 탄핵해야 한다. 그러나 성한용은 그런 국회의 기능을 비현실적인 것이라 비하했다. 성한용은 국회를 물로 보고 능멸했다.

둘째, 성한용은 “선거제도나 권력구조는 여야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의 협상에 맡겨서는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고 야당의 대선주자급 지도자가 호응”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성한용의 눈에는 대통령과 대선주자급 지도자 아닌 평 국회의원은 물같이 보이는 것이 확실하다.

이런 성한용의 지론을 김진표의 개헌론과 연결해보면, 소름 끼칠 정도로 비민주적이다. 성한용 자신이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는바, 그의 지론은 김진표의 개헌론에 편승한 것인데, 김진표는 국민투표 없이 국회에서 의원내각제 개헌하겠다는 위헌적 발상을 발표한 것이 있다.

그런데 그 국회에서도, 성한용의 지론에 따르면, 평 국회의원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한다. 대통령과 대선주자급 지도자 아닌 평 국회의원은 들러리가 되고 말 운명에 처해있다. 문제는 성한용의 현실적 한계에 대한 지적이 전혀 헛소리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셋째, 성한용은 또 하나 끔찍한 사실을 지적해냈다. 그에 따르면, 민주적인 것으로 회자되는 1987년 개헌과 1988년 선거법 개정이 전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토의를 거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고 야당의 대선주자급 지도자가 호응”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때 대통령이 전두환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두환은 가진 것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오리발 내밀었고, 마지막까지 5.18 광주 학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1987년 개헌과 1988년 선거법 개정이 철면피했던 전두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박찬수가 대통령제 위험을 말한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를 불문에 붙이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김진표의 국회 중심 의원내각제 혹은 책임총리제에 편승한 것이다. 성한용이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논한 것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권력구조나 선거제도 개편은 국회의원들의 협상에 맡겨서는 안 되고, 대통령이 먼저 나서고 대선주자급이 호응해야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성한용의 눈에 국민 민초는 권력구조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 국민 민초가 토의하라고 뽑아놓은 국회의원들도 서로 협상하면 안 된다고 한다. 기자가 뭐라고 “겁도 없이”, 국민이 뽑아놓은 의원들 협상에 무얼 맡기면 안 된다고 교통정리 하나? 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대통령이 나서고 대선주자급이 거기 호응해야 한다고 하나? 이게 대통령 나라냐?

더 웃기는 것은, 앞으로도 “개헌과 선거법 개정은 대통령이 나서고 대선주자급이 거기 호응해야 한다”고 성한용이 본 이유가 1987년 헌법과 1988년 선거법 개정이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왜 지난날 하던 대로 따라 해야만 하나? 왜 성한용은 그 비민주적 절차를 고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최자영 주주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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