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법률”(헌법 103조)에만 따라야 하는 독립의 법관은 검증, 감독받는 대상 아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잣대로 궤도를 벗어난 법관을 가려내려는 것은 위헌
사법농단 연루 판사를 처벌하지도 않고 재기용하는 것이 불균형 해소라고?
판사가 공정한 재판이 아니라 승진하려는 목적으로 재판하나?
신속한 재판만 강조하는 새 대법원장 지명자 이균용에게 공정성은 간데없어

사법농단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 박병대 전 대법관(가운데), 고영한 전 대법관(오른쪽). ‘사법농단’에 연루돼 검찰이 재판에 넘긴 전·현직 판사는 총 14명, ‘비위 법관’으로 통보한 판사는 66명이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7년이 지났지만 누구 하나 처벌과 징계는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은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상당수가 무죄를 받아 법원을 떠났다. 그중 일부는 사법농단의 또 다른 한 축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자리 잡았다.(한겨레, 2023.4.1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87508.html)
사법농단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 박병대 전 대법관(가운데), 고영한 전 대법관(오른쪽). ‘사법농단’에 연루돼 검찰이 재판에 넘긴 전·현직 판사는 총 14명, ‘비위 법관’으로 통보한 판사는 66명이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7년이 지났지만 누구 하나 처벌과 징계는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은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상당수가 무죄를 받아 법원을 떠났다. 그중 일부는 사법농단의 또 다른 한 축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자리 잡았다.(한겨레, 2023.4.12.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87508.html)

김명수 대법원장 6년 임기가 8.24일 끝나고, 후임으로 이균용이 지명되어 국회의 인준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이균용이 지명되기 전, 이미 동아일보 사설(2023.8.23.)에서는 새 대법원장의 최우선 임무가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하의 ‘불균형’을 바로 잡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밑밥을 깔았다.

동아일보 사설은, “김명수 체제에서는 사법농단 사태에 연루된 엘리트 고위 판사들이 옷을 벗거나 징계를 당하거나 보직에서 불이익을 받았고, 대신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 대거 대법관, 법원장 등 고위 법관직과 주요 보직에 약진하는 물갈이가 이뤄졌다”, “새 대법원장 하에서는 사법농단 사태로 과도한 피해를 본 법관들에게 기회를 줘 과거와는 반대로 기울어진 인사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이 법원의 신뢰 회복을 위한 새 대법원장의 최우선 임무”라는 취지를 개진했다.

또 같은 동아일보 사설에서, “김명수는 사법농단이 법원 관료화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법원 관료화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고등부장판사 승진제를 없앴다”, “고등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에는 개혁적 측면이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는 실패했다. 법관들이 고등부장판사가 되기 위해 남보다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지면서 재판 지연이 만연해졌다”, “김명수 체제에서 법원의 사무분담권 등 많은 권한이 평판사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평판사에게 더 많은 자율권을 주는 것이 인사 관리의 방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미국 등과 달리 아직 법조일원화가 일천해 20, 30대의 젊은 나이에 임용돼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법관이 많은 만큼 엄정한 인사평가와 재임용 심사를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등 궤도를 벗어난 법관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미국 등지에서 시행하는 ‘법조일원화’라는 것은 ‘사법부 및 검찰(在曹)’과 변호사(在野)를 일원화하여,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이들을 법관으로 선발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전부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혹은 군법무관을 마친 후) 곧바로 판사로 임용되는 즉시임용제가 사라지고, 대신 법조경력자 중에서만 법관을 임용하는 법조일원화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특히 2018년부터는 5년 이상의 법조경력자들만 판사로 임명되고 있다.(법조신문, 2023.7.24. http://news.koreanbar.or.kr)

이 같은 동아 사설의 새 대법원장에 대한 기대는 경향성을 지닌다. 첫째, 사법농단 연루 판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인사의 불균형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본 것, 둘째, 판사들이 고등부장판사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열심히 일한다고 보거나, 그런 동기가 없어지니 태만하여 재판을 지연시킨다고 본 점, 셋째, 미국의 법조일원화의 취지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으로서, 인사평가를 통해 판사를 중앙 권력의 획일적 통제하에 두려 하는 것이다.

위 첫 번째 경향성은 사법농단 연루 판사의 처벌에 반대하는 것이다. 권력을 농단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는데, 반대로 동아 사설은 그것을 불이익, 불균형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대법원장에게 그들을 다시 기용하여 균형을 회복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사실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 중 이미 다수가 무죄로 풀려났다. 그중 임성근은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탄핵되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실익이 없다’란 이유로 풀려났다. 실익이 없다란 것은 이미 사표를 냈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아무라도 판사가 사법권력 농단하고도 사표만 내면 처벌받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가 이 모양이니, 판사는 거침없이 사법권력을 농단할 전망에 있다.

또 전 대법원장 양승태(2019.2.11. 기소)는 1심 재판만 현재로서 근 1,700일(4년 7개월)에 근접하고 있다. 구속 피고인의 1심 평균처리 기간이 약 122일(2022년 경우)인 점에 비하면 터무니가 없다. 양승태에 유리한 법조계 환경이 조성되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고, 사법농단 사실 여부를 불문하고, 다시 무죄거나 혹은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풀려나게 될지도 모른다.

동아 사설 두 번째 경향성은 판사들이 재판 자체의 업(業)이 아니라 승진의 목적으로 재판한다고 본 것이다. 고등부장판사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고등부장판사 승진제도를 없애버려서, 출세 동기가 없어지니 태만하여 재판을 지연시킨다고 한 것이 그러하다.

판사의 재판이 그 자체가 아니라, 승진하기 위한 거냐? 아니다. 동아일보 사설은 재판제도의 존립 근거와 목적 자체를 왜곡했다. 주객을 전도하여, 판사가 재판받는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받는 이가 판사의 승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판사들 다수가 고등부장판사로 승진하는 것도 아닌 마당에, 승진의 전망이 없는 판사는 죄다 태만하고 재판도 지연하고 그러나? 사법권력 농단에 연루된 전 대법원장 양승태의 재판, 그것도 1심 재판만 현재로서 4년 6개월 넘기고 있는 것이, 동아 사설에 따르면, 그 담당 재판관이 고등부장판사로 승진할 희망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양승태 1심 재판의 비상식적 지연과 고등부장판사 승진은 서로 맞물리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세 번째 동아 사설의 경향성은, 새 대법원장 하에서는 엄정한 인사평가와 재임용 심사를 통해 법관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리 감독의 강화는 김명수 체제에서 늘어난 평판사의 자율권을 줄이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것은 법관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를 통해 법관의 궤도 일탈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궤도’라는 것 자체가 획일성을 뜻한다.

동아 사설은 사법농단 연루 판사를 기용하는 것이 “기울어진 인사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되고, 획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법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므로,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등 궤도를 벗어난 법관을 가려내기 위한 엄정한 인사평가와 재임용 심사”를 통해 “공정성과 청렴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한다.

‘불균형’. ‘신뢰’, ‘중립성’, ‘공정성과 청렴성’ 등의 개념은 관점과 기준에 따라서 담기는 내용이 가변적이다. 그러나 인사권자가 “궤도를 벗어난 법관을 가려내기 위해 엄정한 인사평가와 재임용 심사”를 하겠다는 것은 분명하고 구체적인 절차로서, 인사권자의 관료적 통제권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미국 등과 달리 아직 법조일원화가 일천하므로, 20, 30대의 젊은 나이에 임용된 법관이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법관을 검증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위헌이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법관을 검증하나? 아무도 그런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헌법(103조)에 따라, 법관은 독립된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 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법관을 검증하겠다는 동아일보의 위헌적 사설은, 관료적 임명권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는 현 정부의 독재적 경향성을 반증하는 것일 뿐이다.

참고로, 독일의 기본법(헌법)에는 “양심”에 따른다는 조항이 없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의할 뿐이다. 양심은 주관성이 개입되나, ‘헌법과 법률’은 철저하게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법관은 오직 ‘헌법과 법률’의 객관성에 입각하여 재판하고, 주관적 양심을 개입시킬 수 없다. 주관성은 자의적 재판을 초래하고, 자의성은 흔히 불공정을 유발하는 동기가 된다.

새 대법원장으로 지명되었으나, 아직 국회의 인준을 거치지 않은 이균용은 위 동아 사설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균용은 ‘능력’ 중심의 일하는 법원을 지향하고, 무너진 사법신뢰와 재판 권위 회복을 위해, 판사들을 경쟁시켜 재판에 속도를 낸다고 한 것이 그러하다.

여기서 “판사를 경쟁시키겠다”는 것과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 다 문제가 된다. 한편으로, 이균용이 거론한 “판사들 간 경쟁은, 동아 사설에서 개진한 것 같이, 김명수에 의한 고등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가 판사들의 승진 의욕을 꺾어버려서 재판의 지연을 가져왔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다른 한편, 속도 운운하는 것은 공정성을 백안시하겠다는 말과 같다. 현재 한국 사법 현실이 이미 신속성에 밀려서, 그 공정성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손상대TV2>에서, 김명수 체제하의 재판 지연을 힐난하면서, 조국 재판이 3년 2개월, 윤미향 재판이 2년 5개월 걸린 사실만 언급했을 뿐, 사법권력 농단에 연루된 전 대법원장 양승태 재판이 4년 6개월을 상회한다는 사실은 거론하지 않았다.

이 두 상황을 죄다 고려한다면, 재판이 지연된 것이 딱히 김명수 사법체제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하겠다. 두 경우 다, 보기에 따라 정치적 꼼수가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으나, 동아 사설이나 이균용이 말하는바, 판사 간 경쟁체제가 작동하지 않아서, 판사들이 태만해져 재판이 늦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균용이 “판사를 경쟁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재판의 속도 여부와 무관하게, 중앙 인사권자의 권력 하에 판사들을 줄 세우고 획일적으로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동아일보 사설의 취지와 같은 것이다. 후자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판사”라는 것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구실로 하여, “엄정한 인사평가와 재임용 심사를 통해 궤도를 벗어난 법관을 가려내는 권력을 행사하겠다”고 한 것이 그러하다.

“정치적 중립성”을 명분으로 판사를 검증하겠다는 동아일보 사설은 “헌법과 법률” 이외의 다른 것에 구속받지 않도록 법관의 독립성을 규정한 헌법 103조를 위반한 것이다. 또 “신속한 재판을 위해 판사를 경쟁체제로 몰아넣겠다”는 이균용의 지향성은 첫째, 승진의 탐욕으로 가득차서 경쟁하는 속물로 판사들을 비하하는 것이며, 둘째, 그의 ‘신속한 재판’은 공정성을 개무시하겠다는 결심의 천명으로서, 그 무엇보다 공정한 판결을 담보해야 할 재판 제도의 근거 자체를 훼손하는 것이다.

인사권을 내세워 법관을 검증, 감독하겠다는 관료주의 발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서, 중앙권력에 의한 인사권 자체를 제거하고, 사법권력을 지역적으로 독립 분리시키고, 각 지역의 법원장은 민선(民選)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다. 법원장뿐 아니라, 지검장, 경찰청장에 대한 민선제 도입은 획일적 검찰조직, 경찰조직 등이 갖는 부작용을 척결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겠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최자영 주주  paparuna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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