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DNA의 명과 암

얼마 전에 아파트 거실 벽에 붙어있는 전등 스위치가 고장났습니다. 그래서 수리점 아저씨를 불러 새것으로 바꾸었는데요. 아저씨가 가고 난 뒤에 살펴봤더니 직사각형의 스위치가 조금 비뚤어져 있었어요. 미세하지만 상단이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있었습니다. 볼 때마다 신경에 거슬리고 불편합니다.

전같으면 끙끙대면서 뜯어내고 기어이 바로 잡았을 겁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스위치를 면벽하는 수도자처럼 바라봅니다. 익숙해질 때까지. 그리고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저는 오랫동안 출판과 언론에서 잉크밥 먹고 살았습니다. 지난 10년동안은 좌우이념 문제를 연구해 왔고요. 다들 손사래치는 문제죠? 오늘은 비뚤어진 스위치를 고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제목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주제를 미리 말씀드리면요. 조선시대 지배이념이었던 성리학이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이런 것입니다. 재미없는 주제인데다 논리적인 이론을 듣고 싶은 분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의 라이프스토리로 풀어가려고 합니다.

지나온 세월 돌이켜봤는데요. 반듯하지 않은 일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은 물건을 볼 때마다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바로 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런 성향은 잘못된 사회 옳지 않은 정치에 맞서게 했고 사람들과의 충돌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격동의 80년대, 북한바로알기운동에 함께 하기 위해 제가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북한의 역사책을 펴냈습니다. 책이 잘 팔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4위까지 올랐어요. 그뒤에 국가가 수여한 별을 하나 달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소위 운동권으로 불리게 됐죠.

빠리 유학 갔다가 동포신문을 발행하면서 정치망명객의 귀국을 돕는데 앞장섰습니다. 이 분은 한국정부가 요구하는 소명절차를 거부해서 20년동안 입국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무사귀국을 위해 많은 기사를 썼습니다. 대사관의 공사를 인신공격하기도 했어요. 대사관 간부들 중에는 비교적 좋은 평을 들었던 그분이 저에 대한 분노때문에 집에 있는 접시를 다 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국 디제이가 집권하면서 귀국이 성사됐죠.

이외에,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장과 혈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돌봄교실 운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교장실을 여러번 찾아갔는데요. 교장의 거짓말을 학교 게시판에 올리고 해명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초등학교 교장직을 정년 한해 남겨놓고 퇴직했어요. 저도 더이상 아이를 그 학교에 보낼 수 없어서 이사했습니다. 이 혈전 중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비뚤어진 것을 보면 잘 참지 못합니다. 그런데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에까지 반응하다보니까 이제는 제 몸이 견뎌내질 못하네요. 전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나이가 되어서일까요. 분노를 견디는 힘이 약해졌습니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어요. 과거에 저를 키워주었던 그 힘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거실벽에 비뚤어진 스위치를 고치지 않고 놔두는 이유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해 동네 글쓰기교실에서 발표한 글의 내용입니다. 당시 지도 선생님의 격려를 받고 힘을 얻어서 좀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저만 겪는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우리생활 주변에서 비슷한 사례 찾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저도 인기 높았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한 대목을 빌려와야 겠네요. 지난해 방영된 12화의 한장면입니다.

우변호사는 재판에서 상대방 쪽을 변호했던 인권변호사 사무실에 초대받았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우변호사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흰색 보드판이었습니다. 격려와 성원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스티커... 어지럽게 덕지덕지 붙어있었는데요. 우변호사는 갑자기 그 자리에 앉아서 스티커를 떼어냅니다. 그리고 똑바로, 나란히 다시 붙입니다.

이때 같이 온 동료가 질색하며 만류하죠. "또 버릇 나온다. 그냥 냅둬."
우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냅두기가 쉽지 않아."
비뚤어진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저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네요.

<비뚤어진 것을 싫어하는 마음의 근원은 성리학의 리>

도대체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엉뚱하게도 일본인이 쓴 책에서 대답을 찾았습니다. 교토대 오구라 기조교수의 저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입니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8년간 작성한 박사논문을 책으로 펴낸 것이죠.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고 "한국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자학"인 곳입니다. 주자학은 바로 성리학인데요. 성리학은 이기이원론중에 기는 비천한 것이고 리는 고귀한 것으로 봅니다. 리(理)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계, 올바르고 이치에 맞는 질서있는 세계죠.

오구라교수의 연구를 통해 비뚤어진 것을 혐오하는 마음의 근원이 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찾아낸 거죠.ㅎㅎ 오구라교수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리학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비뚤어진 것, 비뚤어진 마음인데, 이것은 강렬한 반항 정신을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한국인은 비뚤어진 것에는 올곧은 것으로 맞서고 올곧은 것을 상대할 때에는 올곧음을 겨룬다."

오구라교수의 말을 제가 이해한 수준에서 풀어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성리학의 리는 한국인들을 보다 높은 곳을 향하게 하는 이상주의자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사회를 짧은 시간에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선진국에 이르게 했죠. 아이엠에프사태 초기의 금모으기 운동이나 충남 태안 해변 기름오염사건 당시 생각해보세요.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들이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는 모습 감동적이지 않았나요. 이런 것은 성리학 전통이 지금까지 면면히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세계에 한류의 기세가 무섭죠. 한국영화나 드라마, BTS같은 대중가수들, 그리고 손흥민 선수의 활약은 눈이 부십니다.

<리의 인간들이 만든 세상 1. 진실은 하나인가>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죠.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얼마전에 만났던 50대 여성 한분은 이런 말씀을 했어요. 우리나라 진보 보수는 야당 여당은 왜 이처럼 심하게 싸우는 걸까요. 서양의 잣대로 보면 다같은 우파인데요. 생각해보니 이것도 성리학의 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서 제가 공부했던 프랑스 이야기 좀 해볼까요. 프랑스 대학입학시험 바깔로레아에 대해서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이 없고 모든 과목이 주관식입니다. 특히 철학 시험문제가 유명한데요. 예를 들어 예술의 효용에 대한 문제를 내면요. 학생들의 답이 두가지로 나눠집니다. 예술은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또는 예술은 사회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 고등학생들 의견이 반반씩 갈라집니다. 늘 답이 두개이니 애당초 객관식 문제를 출제할 수가 없어요.이처럼 진실은 늘 두가지입니다.

두가지는 결국 좌와 우인데요. 좌우는 프랑스 공화국정신 세가지중에 자유와 평등에서 나온 것이죠. 여기서 팁을 하나 드리면요. 이 두가지가 늘 다투기 때문에 그 뒤에 형제애를 붙인 겁니다.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요. 그런데 일본 사람이 처음 번역할 때 박애라는 평범한 말로 번역해서 이같은 심오한 뜻이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요. 프랑스 공화국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라 자유 평등 형제애입니다. 프랑스 정치는 극우부터 극좌까지 이념 스펙트럼의 격차가 큽니다. 그런데도 한국보다 이념갈등이 크지 않은 이유는 바로 형제애때문이죠.

그러면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까요. 우리는 왜 프랑스보다 갈등이 심한가. 이기이원론에서 기와 리는 프랑스의 좌와 우에 해당하는데요. 성리학은 리만이 진실이라며 기를 배척했죠. 리가 아닌 것을 말하면 사문난적이라고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했어요. 지금의 국가보안법과 비슷하네요. 그 500년 동안의 성리학 디엔에이가 지금까지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겁니다. 여전히 진실은 이치에 맞는 것, 리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진보 보수는 서로가 자기들 주장만이 이치에 맞다. 그리고 진실은 하나다. 이러니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싸움이 격렬해지는 거죠. 그래서 학자들이 이런 말을 하죠. 진보도 보수도 뿌리에는 주자학이 있다. 이것 참 기가 막힌 말입니다. 많은 논란이 있는 주제입니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저의 뇌피셜입니다.

<리의 인간들이 만든 세상 2. 타인은 지옥이다>

이제 분위기를 바꿔서 우리 주위 사람들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요즘 까칠하고 까다롭고 까탈스러운, 그리고 남 까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많이 보입니다. 까가 넷이죠. 그래서 저는 ‘까사맨’이라고 이름붙였는데요. 좀 썰렁한가요? 이분들은 리가 강한 사람들이어서 저는 ‘리의 인간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완전주의 결벽증이 있어서 자기가 맡은 업무에 철저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남들과 불협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죠.그래서 이런 무서운 말이 나오는 겁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유명한 웹툰의 제목이죠. 사람관계가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이뿐만 아닙니다. 1인가구의 급증, 출산파업으로 인한 인구절벽,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남녀전쟁... 이런 것들도 까사맨들이 리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살풍경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지폐 천원 오천원권에는 성리학자 이퇴계 이율곡의 초상이 있죠.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성리학에 두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성리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요. 앞서 말한 대로 성리학의 리가 이 사회를 이만큼 발전시킨 동력이었는데요. 그런데 이제는 리의 날카로움이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우리자신을 찌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통증을 안고서 하소연할 곳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병원 문을 두드립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들의 증상을 "매우 예민함"이라고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죠.

<닥터유의 해법은 리 깨뜨리기>

이제 마무리해야 겠는데요. 지금까지 말씀을 정리하면요. 저의 라이프 스토리, 오구라 기조 교수, 리의 인간들로 요약되네요. 모두 사람들 이야기죠. 결론도 닥터유라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즘 사람들의 특성인 예민함은 역사적 철학적 성격을 가진 어려운 문제인데요.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뜻밖에 유투브에서 활동하는 가정의학과 의사가 제시하고 있습니다.

서울의대 유태우 전교수는 닥터유라고 불리는데요, 이런 환자들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독특한 치료법을 고안했어요. 예민한 성격을 무뎌지게 하는 훈련법입니다. 이런 식이죠.

"약속시간에 늦어 전철에 뛰어왔는데 한대 두대 그냥 보내기. 일부러 약속 시간에 늦게 가기. 남에게 모욕당하고 수치심 겪기. 화가 나면 참지 않고 터뜨리기. 속옷을 갈아입지 않고 냄새나는 여관에서 잠자기.“

한마디로 엉망으로 살라는 것인데 왜 이런 것이 치료법이 되는 걸까요. 닥터유는 리의 세계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리의 질서를 깨뜨리고 나오도록 유도합니다. 리가 주는 긴장을 이완시키고 초조감을 풀어서 강박증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죠.

“엉망으로 살기”는 물론 치료기간중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지 평생을 그렇게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닥터유의 “엉망 권유”는 한국인의 뇌리에 새겨진 성리학 디엔에이를 개조하려는 일종의 사회운동입니다. 제가 너무 과대 평가했나요?ㅎㅎ 사실은 제가 요즘 닥터유에 빠져있거든요.

닥터유와 인문학 연구자들이 만나서 통섭. 협진을 하면 어떨까요. 우리 사회의 갈등원인과 치유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당분간 닥터유의 처방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거실의 비뚤어진 스위치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단련합니다. 괜찮아, 불편하지 않아. 그냥 냅두고 싶어...

우리는 그동안 "리"의 힘으로 아주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성리학이 내친 "기"를 되찾아야 해요. 더 멀리 가려면 리와 기가 형제애로 손잡고 가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강남구청 주민연사 '강톡'에 발표한 유투브 동영상의 내용을 수정한 글입니다. 이 동영상 주소를 붙입니다.https://youtu.be/60ttJ0krXjQ?si=QwyAaBYYpfzxauKd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제완 주주  oniv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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