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오는 29일 1주기를 맞는다. 국가의 부재로 벌어진 일이지만, 정부 고위직 중 책임진 이는 없고 희생자 유족들은 지금도 길거리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1주기 추모식 참석 여부가 민생과 통합을 향한 국정기조 전환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정부·여당에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참석을 공개 제안했다. 앞서 유족들은 29일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열리는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 윤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한 상태다. 야당 지도부는 참석 방침을 밝혔지만, 그간 참사 책임론에 선을 그어온 여당은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현재까지 유의동 정책위의장만 참석 의사를 밝혔을 뿐, 김기현 대표 등 지도부는 아직 입장을 못 정했다. 김 대표는 지난 3월 대표 선출 이래 유가족들과 한차례도 만난 적이 없다.

여당의 미온적 태도는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닿아 있다. 지난해 참사 직후 윤 대통령이 “책임이라는 건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한다”고 하면서 참사 책임은 현장 책임자들에게 집중됐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검찰에 불송치됐고, 윤희근 경찰청장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참사 당일 현장 경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기소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보석 신청으로 지난 6월 석방돼 업무에 복귀했다. 독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뼈대로 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됐으나 ‘진상 규명은 끝났다’는 정부·여당 반대로 난항이 예상된다.

또 감사원은 참사 1년 만인 최근에야 ‘재난 및 안전관리체계 점검’ 예비 조사에 착수했다.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다. 지난 1년간의 이런 부실·늑장 대응의 정점에 윤 대통령이 있다. 윤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연일 민생·소통을 강조한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행사 참석이 자신의 진정성을 국민 앞에 내보일 첫 기회다. 추모행사 참석이 전시행위에 그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유족들이 윤 대통령에게 추모행사 참석을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서 지금까지 보여준 정부·여당의 태도와 방향을 돌려달라는 간곡한 당부인 것이다. 윤 대통령이 유족에게 이젠 화답하기 바란다.

옮긴이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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