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보라색 별 모형 전등이 달려 있다. 김정효 기자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보라색 별 모양 전등 159개가 걸렸다. 오는 29일이면 이 골목길에서 별보다 찬란했던 159명의 젊음이 스러진 지 1년이 된다. 왜 이런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지난 1년간 수많은 이들이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대통령실도, 행정안전부도, 경찰도, 검찰도, 구청도, 소방도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원인 규명은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라는 틀에 갇혀 파편적인 사실들만 건져냈을 뿐이다. 정부 차원에서 참사의 전말을 확인하고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을 찾는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제야 기초적인 자료 수집에 나섰다. 독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정부·여당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그나마 진행된 형사처벌도 ‘꼬리 자르기’에 그쳤다. 기소된 것은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등 실무급 책임자들뿐이고,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최종 책임자는 윗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무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은 왜 공범으로 기소되지 않았느냐”는 항변도 나온다고 한다. 이들의 말이 그르지 않다.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검찰에 송치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조차 기소되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팀도 기소 의견을 올렸으나 대검찰청이 제동을 걸었고, 주임검사는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는 정부의 원초적 존재 이유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그런 정부는 없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은 기각됐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장관의 대처나 관련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장관을 비롯해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고위직이 단 한명도 없다. 사회적 참사를 겪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뻔뻔하고 비인간적인 태도다. 윤석열 대통령의 1주기 추모행사 불참은 그 상징적 단면이다.

그러니 참사에서 교훈을 얻고 재발을 막기 위한 발걸음도 더딜 수밖에 없다. 정부의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 대책’은 97개 세부 과제 가운데 13건(13%)만 완료됐다. 최우선 과제라고 할 ‘인파관리 매뉴얼’ 정비는 착수조차 못했다.

유가족과 생존자 등의 인터뷰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없어요. (중략) 다만, 저는 보통 사람들을 믿는 거예요.” ‘국가의 부재’ 속에 빚어진 참사 이후 1년은 여전한 ‘국가의 부재’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힘은 오직 보통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상식과 의지, 연대의 힘이다. 기억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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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 이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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