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준비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엇갈려 무조건 싸운다고 하던데, 우린 오히려 너무 재미있게 준비해 나갔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해서 모든 걸 미국에서 준비해야 했지만, 어려울 건 하나도 없었다. 웨딩플래너 없이 이메일과 영상통화로 결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착착 준비했다. 디자인 전공인 남자친구는 본인이 직접 영상과 결혼사진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과학자인 나로선 엄두도 못 낼 것들을 맡아서 해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결혼 1주일 전, 우린 한국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웨딩드레스를 결정하고 치수를 맞췄다. 결혼 전날까지 친척, 친구들과 매일 점심·저녁을 함께하며 다가올 결혼식에 대해 신이나 이야기했다.

제일 놀라웠던 건 아버지의 반응이다. 예전에 남자친구를 사귈 때는 근엄한 표정으로 “결혼은 여자가 너무 손해다. 결혼은 안 해도 된다. 그냥 다양한 남자랑 연애만 해라”라고 하셨던 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현재 남자친구를 몇 번 만나고는 매우 맘에 들어 하셨다. 아버지는 “이제 와서 솔직하게 말하지만 장거리 연애 중 헤어질까 봐 걱정까지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거봐~ 내가 보는 눈이 있었지? 괜찮은 남자라 했잖아~” 라고 하시며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셨다.

나는 괜히 서운해 “보통 딸이 시집가면 울적해한다는데~~ 내가 결혼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라고 툭 뱉자, 아버지는 “왜 울적해? 시집가는 게 아니고 아들 하나 더 생기는 건데?”라고 하시며 “다들 결혼하면 그때 처음으로 집을 떠나 부모님과 떨어져 살잖아? 그런데 지산인 다르잖아~ 어렸을 때부터 유학 생활을 했고. 아빤 매번 공항에서 너를 보내며 떨어지는 연습을 차근차근했거든. 그리고 외국에서 혼자 지내면 너무 외롭잖아. 든든한 남편이 있는 건 좋은 거지.”라고 하시며 입이 삐쭉 나온 나에게 차분히 설명해 주셨다. 매번 공항에서 떨어지는 연습을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무덤덤하게 공항에서 바바이 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스치며 울컥했다. 그런 말씀을 하신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냥 행복해하시는 아버지와 다르게 어머니는 “좋다~~“ 하시면서도 종종 슬픈 듯, 서운한 듯한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다 키웠더니 우리 딸 뺏기는 기분이네”하며 시무룩해하셨다. 어머니를 달래주려고 “에이~ 무슨 소리야. 뺏기긴 왜 뺏겨. 한 가족이 되는 거지~!”라고 이야기해도 엄마는 내 손을 더 꼭 잡고 새침하면서도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남동생은 “이제 내가 뭐라 불러야 하지?? 매형인가? 형에서 매형이 너무 빨리 왔네~~”라며 단순히 진짜 형이 생겨 좋은 듯했다. “형 좋은 사람이지. 남자는 남자를 알아봐”라고 하며 남동생은 마치 남자끼리 서로 통하는 게 있다는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결혼식 당일! 잠 설침이라고는 거의 없는 단순한 나도... 전날 잠을 조금 설쳤다. 몽롱한 정신을 다듬으려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화장과 머리를 하러 미용실로 향했다. 우리 부모님, 시부모님, 남자친구, 남동생 나란히 화장했고 머리를 다듬었다. 남자친구는 신이 났는지 미용사 분과 껄껄껄 웃으며 떠들었다. 시어머님 말씀으로는 결혼식 한다고 너무 좋아 아침에 집에서 춤까지 췄다고 한다. 긴장한 모습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엄청나게 들떠있는 듯했다. 나는 오히려 차분했다. 아름다운 드레스, 정성스러운 화장과 머리치장, 모든 게 새로웠다. 마치 공주가 된 것 같았다. 이 모든 걸 망치지 않으려고 나는 조신하게.... 평상시와 완전 다르게.... 행동했다. 어릴 적 내 별명이 야생 망아지였는데.... 그거 다 어디로 갔을까?ㅎㅎㅎ

결혼식장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꾸며져 있었다. 꽃 색을 선정할 때 ‘모네의 연꽃’ 느낌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었다. 이를 반영한 듯 푸른 수국, 연한 핑크빛과 흰색 꽃은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과 버진로드는 하얀 안개꽃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고, 중간중간 촛대가 놓여있어 버진로드를 따듯하게 밝혀주었다. 시어머님께서 적극 추천해주신 버진로드 초입에 활짝 펼쳐진 자작나무는 마치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았다. 이게 정말 내가 결혼하는 곳인가? 싶어 차분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들뜨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사진은 결혼식장 입구에 꽃과 함께 하나하나 놓였다. 우리가 주인공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었다.

나는 신부대기실에서 사람들을 기다렸고, 남자친구는 식장 입구에서 하객들을 맞았다. 삼삼오오 친구, 친척, 지인 분들이 대기실에 와서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장시간의 사진 촬영을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한 것과 반대로 사람들과 인사하고 사진 찍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 즐거웠고 반가우면서 고마웠다.

신부대기실에서 가족, 친척, 친구들과 함께 
신부대기실에서 가족, 친척, 친구들과 함께 

드디어 웅장한 중창단의 “지금, 이 순간” 노래가 울려 퍼지며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사회자는 이태원에서 만난 귀여운 네이버 친구가 맡았다. 아버지와 시아버님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갈색 구두를 신고 멋지게, 당당하게 입장하셨다. 그다음으론 곱게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시어머님이 손을 잡고 차분히 등장하셨다. 화촉점화는 양가 부모님 4분이 함께 하셨다.

곧 남자친구가 마치 ‘무대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포스로 씩씩하게 입장했다. 나는 아버지와 같이 천천히 “A Thousand year”라는 노래에 맞춰 입장했다. 아버지는 빨리 걷는 나에게 작게 속삭이셨다. “천천히...” 하시며 속도도 조절해 주셨다. 입장하는 순간, 조용한 분위기에 환상적으로 펼쳐진 버진로드, 나를 향한 조명. 이 모든 것이 더욱더 강하게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는 설렘, 떨림, 벅참, 행복함 모든 감정이 휘몰아쳤다. 남자친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잡았고, 우린 하객 600명 앞에서 평생 함께한다는 결혼 서약을 했다.

결혼 서약에서 2부 행사까지... 
결혼 서약에서 2부 행사까지... 

결혼식은 예정대로 척척 착착 진행되었다. 시아버님의 핵심이 들어간 정갈한 축사, 모두를 긴장케한 남동생의 이복동생~~으로 시작된 덕담, 이젠 아주버님이 된 형이 불러준 축가, 이어진 사촌 동생의 오보에 연주, 캐나다 대학, 대학원 친구들의 영상 편지 그리고 우리를 만나게 해준 에리카의 덕담. 에리카는 고맙게도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날아왔다. 엄마가 한 글자 한 글자 나를 위해 붓으로 쓰고 그린 편지, 아빠가 조금은 코믹하게 만든 남자친구와의 만남을 중계한 동영상 그리고 남자친구가 준비한 결혼식 동영상까지. 결혼식은 2부까지 거의 3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긴 시간임에도 자리를 뜨는 하객은 거의 없었다. 너무 고마웠다. 모두 함께 만들어 낸 풍성한 결혼식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많은 하객들의 축복 속에 우리는 부부로서 새롭게 시작했다.

자작나무에 둘러싸인 버진로드에서 하나가 된 우리.  
자작나무에 둘러싸인 버진로드에서 하나가 된 우리.  

아직은 조금 어색한 남편, 아내라는 호칭.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내면 깊숙이 우린 서로를 연결하는 끈이 더욱 단단해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남편은 결혼한 게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같다고 매일 노래를 부른다. 나 또한 쿡쿡 웃으며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 6년 동안의 행복과 시련은 우리를 더 단단하고 끈끈한 사이가 되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우린 지혜롭게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어떤 모습이라도 다 받아주기 위해 노력해 줄 남편에게 감사한다. 나 또한 어떤 상황이라도 남편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아내가 되고 싶다.

앞으로 캘리포니아에서의 신혼 생활. 어떻게 펼쳐질까... 나도 궁금하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  jeesanlee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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