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ke trail, Tokopah Falls, Big Tree Trail

Lake trail 세번 째 호수에서 
Lake trail 세번 째 호수에서 

둘째 날 : Lake trail

일찍부터 기상했다. Sequoia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등산로, 'Lake trail'을 오르기 위해서다. 이 등산로는 왕복 18.6km에, 986m를 올라가야 한다. 총 7시간이 걸린다. 만만치 않은 코스지만, 등산하는 동안 아름다운 호수 세 개와 멋진 경관이 펼쳐진다고 한다. 지인의 추천으로 용기를 내어 도전하기로 했다. 신랑과 함께 7시간 등산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긴 등산 경험은 약 4시간이었기 때문에, 조금 떨리고 걱정도 됐다. 어린 시절 멋도 모르고 부모님을 따라 6~7시간 등산 경험은 있지만, 그땐 부모님이 모든 것을 챙겨주셨다. 이번은 둘이 도전하는 것이다. 잔뜩 긴장한 우리는 각자 가방에 물과 다양한 간식을 준비했다.

Totem Market Gift
Totem Market Gift

아침 8시쯤 'Sequoia Coffee Co'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Totem Market Gift'에서 점심으로 부리또를 샀다. 커피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부리또는 달걀, 아보카도, 베이컨, 감자, 매콤한 소스가 또띠아에 싸여 있었다.

하이킹 시작 부분은 전날 산길처럼 큰 나무들이 길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길 초입부터 살짝 눈이 쌓여 있었다. 가을에 맞춰 입은 옷차림과 아이젠이 없어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올라가는 길이어서 손만 조금 시렸다. 다행히 눈은 아이젠이 필요할 만큼 쌓이진 않았다. 나는 올라가는 것에 자신이 있어 과감하게 앞장섰다. 반면 하산 길에 더 강한 신랑은 “지산아.. 지산아.. 아구 죽겠네”라며 힘들어했다. 그래서 중간중간 멈추어 가방에 싸 온 간식을 먹으면서 힘을 보충했다.

올라가는 길에서
올라가는 길에서

점점 지칠 무렵 눈에 둘러싸인 파노라마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뭉굴뭉굴한 흰 구름이 빠르게 산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신비로웠다. 주위엔 오직 산과 우리와 정적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30분 더 올라가니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는 반쯤 얼어있었다. 나무 신들이 호수를 보호해 주듯 나무가 빙 둘러싸고 있었다. 산의 웅장함, 나무의 따듯함, 호수의 잔잔함, 바람과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함 때문에 잠시 내가 알던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도착한 거 같았다. 우리 둘이 그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첫번 째 호수에서
첫번 째 호수에서

우리는 큰 바위 한가운데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아직은 따듯한 온기가 남아있는 부리또를 먹었다. 오랜 등산 끝에 먹는 부리또는 정말 맛있었다. 아름다운 장관을 앞에 둔 바위 식탁에서 큰 부리또를 눈 깜짝할 새에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첫 번째 호수에서 부리또와 함께
첫 번째 호수에서 부리또와 함께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나머지 등산은 2번째, 3번째 호수를 보기 위해 200m만 올라가면 됐다. 하지만 초반 3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서 그런지... 고도가 높아 온도가 더 떨어져서 그런지... 2번째 3번째 호수를 보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산길만큼은 끝내주게 멋있었다. 산길은 눈 덮인 돌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돌로 이루어진 협곡을 걷는 것 같았다.

3번째 호수
3번째 호수

드디어 등산로 마지막에 있는 3번째 호수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안개에 가려 호수가 보이지 않았다. 호수가 얼마나 큰지... 저 멀리 어떤 광경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안개는 마치 서서히 커튼을 열어주듯 유유히 사라졌다. 신들이 노닐 것 같은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졌다. 그렇게 아주 잠깐 여기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신랑이 재촉했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고.... 어두워지기 전에 주차장에 도착해야 한다고....

3번째 호수에서
3번째 호수에서
3번째 호수에서
3번째 호수에서

쉬울 거라 생각했던 하산 길은 쉽지 않았다. 발걸음은 초반보다 무거웠다. 올라갈 때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아 몸이 빠르게 식고 있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내려왔다. 신랑은 지친 나를 이끌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는지 나를 응원하며 재촉했다. 그런데 서서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속이 거북하며 소화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엔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거북함을 누르고 정신없이 내려갔다. 마치 다리가 내 정신으로... 내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계 같이 자동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오후 5시쯤이 되었을까, 우리는 아직도 하산 중이었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20분이 지나자, 플래시를 켜야만 길이 보일 정도로 어두워졌다. 다행히 10분 후에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그 10분은 마치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아름답게 보였던 산은 더 이상 그런 느낌을 주지 않았다.

차에 앉자마자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두통과 속쓰림이 밀려왔다. 신랑에게 운전을 맡겼다. 눈을 감고 몸을 녹였다. 원래는 식당을 예약해 두었지만, 속이 불편하여 갈 수가 없었다. 부리또를 너무 빨리 먹은 탓인지... 추운 날씨 때문에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호텔에 도착해 소화제를 먹고 김치 컵라면을 먹었다. 따뜻한 국물 덕분인지 약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조금 지나자 속도 괜찮아지고 두통도 사라졌다.

셋째 날 : Farmers' Market과 Tokopah Falls과 Big Tree Trail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자, 어제의 등산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다리는 뻐근하고 몸 전체가 여전히 피곤함으로 지쳐 있었다. 차분히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일요일마다 숙소 근처에서 열리는 Farmer's Market에 가서 천천히 구경하고 아점을 먹기로 했다.

Farmer's Market은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지역 상인들이 한곳에 모여 지역 상품들을 판매한다. 주로 농부들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팔고, 직접 만든 올리브유, 잼, 꿀, 빵 등 다양한 음식과 양초 등을 판매한다. 지역 상인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다양한 과일 및 채소를 구경하고 사는 것이 재미있어서 신랑과 종종 지역에 있는 Farmer’s Market을 방문하곤 했다.

역시나 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빵에 진심인 나의 레이더가 가동하자마자, 바로 크루아상과 마카롱을 파는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카롱은 통통하며 겉은 바싹하게 구워져 있었고 완벽한 모양을 자랑했다. 크루아상 역시 각 층이 살아 있는 진정한 크루아상이었다. 내가 이 빵들을 유심히 쳐다보자, 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처음엔 그가 빵을 구운 줄 알았는데 그의 여자 친구가 직접 빵을 구웠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아름다운 금발 미녀 언니였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바쁘게 마카롱을 유리장에 진열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카롱과 크루아상을 사고, 근처에서 커피를 사서 길가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크루아상과 마카롱은 정말 맛있었다. 대량 생산하는 빵집이나 마트에서 파는 빵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시장을 나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빵 가게에 들러 크루아상과 마카롱을 한 박스 더 샀다. 그리고 아름다운 언니를 응원해 주었다.

Tokopah Falls
Tokopah Falls

따뜻한 아침을 먹고 힘이 난 우리는 마지막 날 하이킹을 시작했다.  첫 목적지는 Tokopah Falls다. 이 길은 6km 길이에 200m만 올라가는 비교적 가벼운 등산 코스였다. 등산 끝에는 폭포가 있어 더욱 인상적일 것 같았다. 어제의 산길에 비해 훨씬 가볍고 쉬워서, 마치 몸을 푸는 운동 같았다. 산길 끝에서 본 폭포도 멋있었지만, 어제 너무 많은 장관을 본 탓에 감동은 그만큼 크지 않았다.

Big Tree Trail에서 만난 그야말로 Big Tree, 돌이 눌러도 꿋꿋.
Big Tree Trail에서 만난 그야말로 Big Tree, 돌이 눌러도 꿋꿋.

하이킹을 마무리한 곳은 Big Tree Trail였다. 이 산길은 잔잔하게 세콰이어 나무들을 감상하기에 완벽했다. 자연 속을 유유히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수호신 같은 나무들을 향해 자연을 잘 보호해 달라는 인사를 하며 여행을 마쳤다.

Big Tree Trail에서
Big Tree Trail에서
Big Tree Trail에서
Big Tree Trail에서

캘리포니아에 살기 전에는 아름다운 해안과 좋은 날씨만 상상했다. 캘리포니아 몇 곳을 여행하고 나니, 이곳은 그 이상의 다양한 날씨와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산 정상에서는 눈도 볼 수 있었다. 실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들도 자라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여행은 매번 협소했던 우리 시야를 넓혀주었다. 광범위한 자연 속에서 한 점처럼 작은 인간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었다. 온 세상을 다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은 인간도 자연 앞에서는 하나의 나무와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며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캘리포니아 모습을 기대하며… 다음 휴가를 기대해 본다.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석양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석양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  jeesanlee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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