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북서유럽 국가 내 극우 정치 세력이 급부상하였다. 2022-2023년에는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이탈리아 각국에서 극우 정당들이 원내 제2당으로 의석수를 확보하며 빠른 속도로 정치세력화하는 현상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는 현실이다.

2023년 4월 핀란드 총선 결과, 극우정당 <핀란드인당>이 일약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출처 : 핀란드 법무부, 한겨레신문 노지원 기자)
2023년 4월 핀란드 총선 결과, 극우정당 <핀란드인당>이 일약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출처 : 핀란드 법무부, 한겨레신문 노지원 기자)

이 점은 스웨덴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형 복지국가인 북유럽도 마찬가지다. 2023년 4월 2일, 200석을 두고 치러진 핀란드 총선에선 집권당 산나 마린의 사민당이 우파 정권 국민연합당(48석, 20.8%)에 권력을 내어주게 됐다. 사민당은 득표율이 2019년(17.7%)에 비해 2023년(43석, 19.9%) 2.2% 증가했다. 그렇지만 극우 정치 세력인 핀란드인당(46석, 20.1%)에 밀려 제3당이 되었다. 극우 정당 핀란드인당*(Finns Party)이 2019년 총선에 이어 일약 제2당을 유지하며 급부상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 배경을 바탕으로 독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를 비롯해 북서유럽 교육 선진 국가들**에선 '민주시민교육'을 한결같이 더욱 강화해 오는 추세다. 북서 유럽 국가에서 보여준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중도좌파의 정치 세력과 관련이 깊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 속 독일 사회민주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이 오늘날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추진했던 주체였다. 이러한 사실은 북서유럽 국가들을 오늘날 지구상 최상의 복지국가로 발돋움시킨 핵심 정당이란 사실과도 맥을 같이 한다.

먼저 북서 유럽 국가들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학교 교육개혁을 추진했던 정당들이 한결같이 중도좌파의 진보 정당이 집권했을 때 시작되었다는 공통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1969년 독일 사회민주당(약칭 사민당)이 집권하면서 70년대 초반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을 강화한 현상이 그러하다. 프랑스는 1985년 사회당 미테랑 정부 당시 학교 교육과정에 ‘민주시민교육’을 한층 강화하며 교육개혁을 추진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영국 역시 1997년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집권과 동시에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추진했다. 다만 영국은 다른 북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민주시민교육’이 많이 늦은 편이다.

먼저 북유럽 복지국가의 앞선 모델이자 ‘민주시민교육’이 앞서갔던 스웨덴을 살펴보자.

1930년대 초반 스웨덴 사민당의 선거 포스터. “우리에게 표를 주면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는 사회경제 체제를 제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셰리 버먼이 주장하는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한국 진보 진영에서도 대안으로 자주 논의돼왔다.(출처 : 글과 사진 모두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1930년대 초반 스웨덴 사민당의 선거 포스터. “우리에게 표를 주면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는 사회경제 체제를 제공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셰리 버먼이 주장하는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한국 진보 진영에서도 대안으로 자주 논의돼왔다.(출처 : 글과 사진 모두 한겨레21 신소윤 기자)

1930년대 대공황을 전후해서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약칭 사민당)은 재정지출을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적극 행정을 펼쳤다. 출산과 양육 수당 지급을 내세우며 복지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증세 정책으로 몸풀기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누진세율을 높이고 소득세를 크게 부과하자 중산층이 즉각 반발했다. 그러자 스웨덴 사민당은 초등학교 4학년 학력을 지닌 최하층 노동계급 출신이자 사민주의 대중정치인 페르 알빈 한손을 전면에 내세웠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기보다 빈부격차와 불평등 현상을 일반 민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민중의 언어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민주의 대중정치인 페르 한손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국가를 가정에 빗대어 포근하고 안락한 ‘국민의 집’에 비유하며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그러자 급진적이고 모험적인 정당으로 강한 눈총을 받았던 사민당이 어느새 스웨덴 시민들에게 든든한 집안의 대들보로 인식되며 장남의 위상을 획득했다. 1932년 대공황의 고통 속에서도 사민당의 복지정책은 국민 일상생활로 파고들며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복지정책을 추진하는 와중에 사민주의에 맞서는 보수정당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자유당, 보수당, 농민당의 반발이 그러했다. 그러자 사민당 총리 페르 한손(Per Hansson)과 재무장관이자 사민당 복지정책 이론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 Wigforss)는 보수정당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이자 타협의 여지가 있는 농민당을 끌어안아 연정을 구성했다. 그렇게 사민당과 농민당 연정이 결성되며 1936년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결국 사민당은 재집권에 성공하며 스웨덴식 복지정책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이후 스웨덴 사민당은 44년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오늘날 전 세계적인 복지국가 모델을 창출했다.

특히 스웨덴 건설노조가 1933년 파업을 전개하자 페르 한손 총리는 어떻게 중재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결국 스웨덴 노동자 총연맹(LO)과 경영자협회(SAF) 간 대타협을 추진하도록 중재했다. 그 결과 스웨덴은 공공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정치적 불안이 해소되었다. 이후 노동자와 사용자 대표는 정부 중재 없이 사회적 대타협을 성사시킨다. 이른바 1938년 ‘살트세바덴’ ***협약(Saltsjöbaden Agreement)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 개입을 가능한 한 배제한 채, 노동조합 대표와 사용자 대표 간에 자율적인 협상으로 노사분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계급 간 사회 대타협을 통한 살트세바덴 협약은 이후 노사 공동 책임하에 상호 협력 형태로 발전했다. 이는 사민주의 계급 대타협으로 스웨덴 경제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발전했다. 스웨덴이 오늘날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평등주의’ 마인드로 복지국가를 구축한 데엔 계급 간 ‘사회 대타협’의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계급 간 대타협을 이끌어 내도록 정치 사회적 배경을 창출한 것은 중도좌파 사민당의 존재와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오늘날 스웨덴 정당들, 자유당, 보수당, 사민당은 체계적으로 청년들을 정치적으로 단련시켜 품격 있는 정치인으로 길러낸다. 22살의 나이에 초선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는 게 스웨덴 정치 현실이다. 사민당은 사민당 「청년 정치조직」(SSU)을 운영하는 데 13세부터 「청년 정치조직」에서 활동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나이다.

사민당 「청년 정치조직」 활동은 대체로 사회 봉사활동과 쟁점이 되는 현안에 대한 정치토론이 주를 이룬다. 「청년 정치조직」에서 활동하는 13세-35세 청년들은 정치인이 되고 싶어서 사민당 청년조직에 가입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사회를 좀 더 이상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꿈과 열정으로 「청년 정치조직」에 가입해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직업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청년 정치조직」과 함께 스웨덴 사민당은 「정치학교」를 운영한다. 「정치학교」 가입 연령은 25세-35세로 노동조합원, 사민당 청년 당원, 다른 정당 당원, 지방공무원, 지자체 정치인, NGO 활동가를 비롯해 다양하다. 사민당 「정치학교」는 8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지녀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다. 평균 경쟁률이 3:1 정도로 전문적으로 정치인을 단련시키고 양성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청년조직과 차원이 다르다.

「정치학교」를 통해 학습하는 내용은 세계 정세와 국내 정세, 그리고 정치 현안에 대한 다른 정당 정치인의 시각을 포함해 다양한 견해를 접한다. 나아가 정치지도자로서 리더십을 공부하고 품격 있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정치적 덕성도 함양한다.

공동체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실현하는 정책으로 사회변화를 꿈꾸기에 「정치학교」 예비 정치인들은 항상 깨어있으려고 노력하고 분투한다. 그야말로 공익적 가치를 위해 정치활동을 준비하면서 존경받는 전문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를 악용하는 정상배 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대한민국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스웨덴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선거 전 학교에서 모의 투표를 체험한다. 미래 유권자로서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 나름의 정치적 판단을 경험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벌어진다. 각 정당의 청년조직들이 학교를 방문해 청소년 복지와 교육 관련 자기 정당 정책을 열심히 홍보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각 정당의 청년조직들은 모의 투표를 신청한 학교를 찾아가서 자신이 속한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학생들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학교 교육 정책과 투표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스웨덴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정치 친화적인 경험을 공유한다. 정당이 학교를 찾아가는 정치교육이자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민주시민교육’인 셈이다.

13세~17세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미리 모의 투표를 체험해 봄으로써 실제 선거에서 투표율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 의회는 청년 계층 정치 참여율이 높다. 2018년 기준 국제의원연맹(IPU)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30세 미만 국회의원 비율에서 1위 국가는 노르웨이(13.61%)이고 2위 국가가 스웨덴(12.32%)이다.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5위, 10%)와 덴마크(14위, 6.15%)보다 높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106위로 0명이다. 한국은 2020년 21대 총선에 가서야 겨우 2명을 배출했을 뿐이다. 청년 계층 정치 참여를 높이고 의회 진출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현행 지역구 중심 소선거구 다수대표제가 아니라 직업별, 계층별, 세대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청년 할당제를 제도화하면 된다. 병행해서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면 가능한 일이다.

‘민주시민교육’에 앞서갔던 그런 스웨덴조차 2018년부터 ‘사회’과 교과 명칭을 변경했다. ‘시민성’(Civics) 교과로 교과 명칭을 변경해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해 오고 있다. 『연합뉴스』(2018. 5. 11)에 따르면 스웨덴은 북서유럽 국가에서 총기 사고가 가장 빈발한 국가다. 1996년 – 2015년 20년 동안 스웨덴 총기 사망사고는 독일의 10배, 영국의 6배에 달했다. 스웨덴 역시 이민자와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 <스웨덴 민주당>이 존재한다. 2022년 9월 총선에서 극우 정당 <스웨덴 민주당>은 총 349석 중 73석을 획득해 일약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놀라운 사실은 20대 청년층에서 극우 정당 스웨덴 민주당이 사민당을 제치고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스러운 점도 발견된다. 좌파 정치 세력이 과반의석을 점하지 못해 <사민당> 중심의 연정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1당은 107석을 획득한 중도좌파 <사민당>이라는 사실이다. 글쓴이가 보기에 2018년 기존 ‘사회’과 명칭을 ‘시민성’(Civics) 교과로 명칭 변경을 시도하면서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한 학교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북유럽 국가들이 더욱더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 시민성 함양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인류 보편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인권, 평화, 인류애, 자유, 평등, 정의에 대한 높은 수준의 가치를 추구한다. 따라서 스웨덴 시민들은 차별에 반대하고 인간을, 나아가 자연을 존중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해 협력과 연대하는 삶을 자연스러운 생활 자세로 받아들인다.

북유럽 국가는 루터파 개신교 신앙의 전통으로 시민들 옷차림새와 일상이 소박하다 못해 무척 검소하다. 그리고 제3세계에 대한 공적 원조와 기부는 미국이나 일본의 두세 배에 이른다. 우리가 북유럽 국가들을 모델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다.

*핀란드인당 : 핀란드인당(Finns Party)은 내셔널리즘에 기초해 페미니즘, 동성결혼, 다문화주의, EU에 반대한다. 그리고 유럽 내 다른 극우 정당들처럼 친러시아 정책을 취한다. 2019년 총선에서 사민당에 이어 제2당으로 급부상하였다. 그리고 2023년 총선에서도 제2당을 유지했다.

**북서유럽 교육선진국 : 독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를 비롯해 북서유럽 국가들을 통상 교육선진국으로 생각한다. 특히 김누리 교수(중앙대 독문학)는 독일 교육을 가장 모범적인 교육 모델로 극찬할 정도이다. 반면에, 독일 유학 경험을 안고 있는 장은주 교수(영산대 정치철학)는 북서유럽 국가에 대해 교육선진국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국제학업평가(PISA)에서 핀란드, 대한민국은 높은 성취도를 보이지만 독일은 낮은 수준이기에 독일 교육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살트세바덴 : 살트세바덴은 스웨덴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의 휴양지이자 스톡홀름 근교에 위치한 도시다. 살트세바덴 계급 간 대타협의 정신으로 스웨덴은 1980년대까지 최저 학력 노동자와 최고 학력 노동자 간 임금 격차가 1:4를 유지했다. 2000년대 이후 세계화의 흐름과 EU 통합에 따라 국가 간 노동시장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1:6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은 중소기업 노동자와 대기업 노동자 간 1:2이고 중소기업 노동자와 대기업 경영진 간 임금 격차는 1:16이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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