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유럽 교육선진국들이 지닌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고등학생들에게 정치활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한다는 사실이다. 스웨덴은 14살에 정당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18살에 시의원으로 당선돼 의정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2019년 34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세계 최연소 총리로 등장한 현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학교운영위원회 의사결정과정에 학생대표는 교사 대표나 지역대표와 똑같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학교 또한 학생들 스스로 현실 밖 정치의 장으로 나갈 수 있게 권장한다. 게다가 북유럽의 경우 학교 스스로 정당들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자기 정당이 내세운 청소년 공약을 홍보할 수 있게 해 준다. 고등학생들은 각 정당이 내건 청소년 교육 정책, 복지 공약들을 보면서 정치 판단을 한다. 일상에서 겪는 북유럽 학교 풍경이다.

스웨덴은 1994년 전면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에 따라 학교의 존재 이유를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학교 자체가 민주주의 산실이자 민주주의를 체득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그 성격을 강력하게 규정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생명과 자유,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고 양성평등을 학습한다.

2022년 6월 2일, 프로데 슬베르그 주한 노르웨이 대사(왼쪽부터),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 다니엘 볼벤 주한 스웨덴 대사, 미카 루오살라이넨 주한 핀란드 대사관 공관 차석이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주한 덴마크 대사관저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대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 한겨레 신문 백소아 기자, “서울광장에 휘날릴 무지개 깃발, 지킬 만한 가치가 있죠” - 북유럽 4개국 대사가 말한 ‘차별금지법’ 인터뷰 인용)
2022년 6월 2일, 프로데 슬베르그 주한 노르웨이 대사(왼쪽부터),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 다니엘 볼벤 주한 스웨덴 대사, 미카 루오살라이넨 주한 핀란드 대사관 공관 차석이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주한 덴마크 대사관저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대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 한겨레 신문 백소아 기자, “서울광장에 휘날릴 무지개 깃발, 지킬 만한 가치가 있죠” - 북유럽 4개국 대사가 말한 ‘차별금지법’ 인터뷰 인용)

나아가 정치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삶을 지향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을 기름으로써 존중하는 삶을 생활화한다. 바로 ‘연대하는 삶’, ‘존중하는 삶’을 ‘학교 교육의 임무’로 규정한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학습지도요령」에 명시하기를 ‘차별과 불관용에 맞서 당당히 싸울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 「학습지도요령」은 입법기관인 국회를 통과해야 할 법률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실제로 「학습지도요령」 내 「사회과」 9년제 기초학교 – 우리나라 초중학교에 해당 - 학습 목표 총론에서 “민주주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시민 육성”을 기술하고 있다. 학습 평가는 MVG(우수) - VG(양호) - G(가능) - IG(불가) 네 단계 절대평가 방식이다.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 국가들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각 계층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복지 실현을 지향한다. 따라서 교육이 추구하는 이념 역시 ‘평등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자 성인이 되어서도 교육받을 수 있는 ‘생애 학습’을 강조한다.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NGO에 가입하도록 권장한다. 학생들 스스로 새로운 NGO를 만들고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도 학습한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NGO 가입을 독려하는 활동을 고등학생들이 나서서 한다. 시민단체 홍보와 선전을 고등학생들이 조직한다.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도록 교육한 결과이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선 감히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기초학교 8학년 교과서를 잠깐 살펴보자. 실제 중학교 2학년 정도 연령 단계에 해당하는 아이의 범죄행위로부터 학습을 시작한다. 그 나이 정도에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 경찰, 검찰, 법원, 교정시설을 전전하며 어떤 사법절차를 거치는지 매우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다. 당연히 학생들은 현실감 있는 학습을 통해 각 기관의 기능을 익힌다.

뿐만 아니라 집단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 문제,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해하는 학습을 수행한다. 중독성 짙은 약물 오남용 문제를 다루고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공부도 한다. 나아가 부모의 이혼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지 단체 연락처를 학습하고 여러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생활까지 매우 현실감 있게 학습을 수행한다.

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기초학교 9학년 교과서도 살펴보자. 의무교육과정에서 노동자 정체성을 학습하는 1장부터 시작하여 양성평등, 완전고용을 학습한다. 사민주의 국가다운 면모가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역력하다. 나아가 ‘미국이 세계 최고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국제사회 현실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한 학습을 편성하고 있다. 민주시민이 건강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교육과정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점은 모든 교과서 내용이 청소년 자신들이 알고 싶어 하는 현실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김원태 외(2006). 『주요 외국학교 시민교육 내용 연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80쪽에서 인용.(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발간 『주요 외국학교 시민교육 내용 연구』 80쪽을 글쓴이가 찍었음)
* 김원태 외(2006). 『주요 외국학교 시민교육 내용 연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80쪽에서 인용.(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발간 『주요 외국학교 시민교육 내용 연구』 80쪽을 글쓴이가 찍었음)

우리나라 교과서처럼 관련 학문의 개론서 형식을 띤 채, 개념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보다 청소년 자신들이 처한 현실 문제로 학습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학습 흥미를 고려한 교과서 구성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사회 교과라면 응당 현실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고의 결과이다.

근로계약서 작성과 산업재해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인 임금 문제까지 의무교육과정에서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게다가 중고생 스스로 자신이 살고있는 지역 사회 문제를 탐색, 제기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학교 교육에서 학습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교육활동을 통해 의도하는 목적, 그리고 교과서 내용과 구성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독일, 프랑스조차 교과서 구성이 수많은 <생각하기 자료>, <읽기 자료>로 구성돼 있다.

<읽기 자료> 제시와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가는 <질문하기>로 구성된 프랑스 중등학교 교과서 . 이러한 교과서 구성은 독일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프랑스가 영국이나 독일, 이탈리아보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은 이유를 교과서에 싣고 있고 그 원인을 묻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출처 : 하성환)
<읽기 자료> 제시와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가는 <질문하기>로 구성된 프랑스 중등학교 교과서 . 이러한 교과서 구성은 독일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프랑스가 영국이나 독일, 이탈리아보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은 이유를 교과서에 싣고 있고 그 원인을 묻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출처 : 하성환)

마지막엔 <서술하기>와 <질문하기>로 편성해 학생들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수행함으로써 ‘주체적 학생상’을 지향한다. 우리 교육에선 학생들이 독립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지향하도록 교육 목표를 설정하는 수준(24점)이 매우 낮다. 칠레(52점), 멕시코(44점)보다 낮고 심지어 독재국가인 러시아(36점)보다도 현저히 낮다. 교육선진국 스웨덴(80점), 핀란드(82점), 덴마크(91점) 북유럽과 비교하면 까무러칠 정도이다.

영국 사회 싱크탱크 「레가툼 연구소」가 2019년 발표한 ‘레가툼 번영지수’가 조사대상 국가 167개국 가운데 상위(29위)에 위치할 정도로 높다. 교육(2위), 보건(4위), 경제(10위), 시장접근도 기간시설(20위), 투자환경(21위), 생활환경(25위) 지수가 특히 높다. 그러나 사회구성원 간 신뢰도를 나타내는 ‘사회자본’ 분야 지수는 다른 지수와 달리 142위로 매우 낮다. 다시 말해 사회자본 지수를 구성하는 시민 개인 간 신뢰 지수가 매우 낮고 사회 규범이나 제도에 대한 신뢰,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참여도가 매우 낮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을  2022 개정 교육과정에  공통 필수교육과정으로 적극 반영함으로써  학교교육에서 <민주시민>교과를  국영수 과목처럼 가르치도록 25년 넘게  입법투쟁, 교육선진국 교과서 분석 연구, 학술세미나 발표, 민주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 탄생에  헌신해온  김원태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위원이  탐독한 서적(출처 : 하성환)
학교민주시민교육을 2022 개정 교육과정에 공통 필수교육과정으로 적극 반영함으로써 학교교육에서 <민주시민>교과를 국영수 과목처럼 가르치도록 25년 넘게 입법투쟁, 교육선진국 교과서 분석 연구, 학술세미나 발표, 민주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 탄생에 헌신해온 김원태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위원이 탐독한 서적(출처 : 하성환)

제도와 규범에 대한 신뢰, 공동체 참여 정도, 개인 간 신뢰를 가늠하는 척도인 사회자본 지수는 학교 시민교육과 평생교육을 통해 높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육은 중대한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국민에서 민중으로’ 변혁의 시기를 넘어서서 건강한 시민, 나아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능동형 시민 만들기’로 교육과정 대전환, 바로 교육 대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중대한 전환기를 맞아 교육개혁을 맨 앞장서 힘차게 이끌어가야 할 교육부 장관이 존재하질 않는다. 게다가 며칠 전 윤석열 정부는 학급당 학생수, 교원정책을 비롯해 중장기 교육정책을 주도하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 위원장으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을 지명했다. 문제는 ‘2022 교육과정 전면 개정’을 결정할 국가교육위가 과거 박근혜 정권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를 지지했던 인물을 지명했다는 사실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시민교육’이 중핵교육과정으로 위상을 정립하기는커녕 주변부로 밀려난 걸 넘어서서 ‘시민교육’ 부재를 우려할 처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교육부 직제에서 「민주시민교육과」가 사라졌다. 경기도 역시 민주시민교육과 직제를 없애고 미래인성교육과로 바꿨다. 참으로 암담하다.

요컨대 루터파 기독교의 검소함과 절제된 생활이 전통문화로 뿌리내리고 휴머니즘 가득한 인류애가 팽배한 북유럽 사회이지만 무엇보다 스웨덴이 오늘날 최상의 복지국가로 거듭난 데에는 ‘학교 시민교육의 힘’ 또한 컸으리라 생각한다. 스웨덴을 비롯해 북서유럽 학교들은 우리나라 학교 교육처럼 지배 질서에 순응하는 ‘시험형 인간’보다 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변혁형 인간’을 지향한다. 몇 년 전 16살 기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제도권 학교 교육을 통해 탄생하는 이유이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자로 구성되고 공화국 시민으로 유지된다. 자율적 주체로서 비판적 사고를 하는 민주주의자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공화주의자를 길러내지 않고선 민주공화국은 건설되지 않는다.

편집 : 하성환객원편집위원, 김미경편집장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