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6주기에 열어보는 역사의 봉분> 고 주정자님의 사연

<유족 유경숙 님댁 사연>                                                                         필명    김자현

희생자-어머니 고 주정자님과 이름도 얻지 못한 젖먹이까지 두 분!

1949년 음력 9월 24일 변을 당하심. 주소 전남 여수 관문동 330번지.

대각선으로 경찰서가 있고 우체국 등이 있던 읍내 번화가에 사셨다. 경찰서 쪽에서 날아온 유탄에 희생당하셨다는 증언도 있고 어수선하고 사람들 소리가 왁자 왁자하여 열 살짜리 삼촌이 당시 3살짜리 유경숙 님을 안고 장롱에 숨었다는 설에 따르면 토벌대가 출몰한 것이 아닌가 유추하게 됨.

어머니는 1929년생으로 1930년생인 아버지 고 유영식 님과 18살 17살에 결혼하여 유족 유경숙 님을 맏딸로 낳으시고 당시 젖먹이를 안고 젖을 먹이던 중 젖먹이와 함께 변을 당하셨다.

* 고인 주정자 님은 10자매 중 맏딸이었습니다. 당시 신학문을 하셨다는 오늘의 유족 유경숙 님의 외할아버지께서는 억울하게 죽은 맏딸 주정자 님을 기리면서 손수 장판지에 작사 작곡을 하셔서 외가에서는 이를 보관하고 있다는 전언에 위 시가 탄생했으며 이번 유족 유경숙 님의 사연 속에서 3편의 시가 탄생 되어 선보입니다.

  <여순항쟁> 당시 원통하게 희생된 고 주정자 님의 결혼식 사진(출처 : 유족 유경숙 님 제공)
  <여순항쟁> 당시 원통하게 희생된 고 주정자 님의 결혼식 사진(출처 : 유족 유경숙 님 제공)

1) 공작새

호롱불 너울거리던 밤에

사랑으로 빚은 나의 정자야

고개를 돌리는 곳곳마다

돋아나는 나의 나비야

 

황토빛 장판지에 그린 오선지에서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나의 맏딸아

음표와 음표 사이 건너뛰는

내 생애의 높은 음자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의 공작새

 

내 이승에 지은 죄 많아

나 대신 먼저 간 나의 이쁜 딸

하늘을 우러르면 거기 네가 웃고

시냇물에도 네가 울며 떠나가네

다시는 안을 수 없는

다시는 쓰다듬을 수 없는 나의 연인아!

밤하늘  올려다보면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너의 목소리

노래로 탄생한 내 서러운 딸!

내 피 멍울진 가슴에서

물망초로 피어나는 영원한 나의 애인아!

 

2) 검정 공단 한 필

어머니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 왔다던 검정 공단 한 필

어머니 총탄 맞고 떠나신 지 스물한 해째

봉분 속에 어머니도 이렇게 삭았을까

꽃다운 청춘이 봉분 아래 한 해 두 해

늦가을 갈대처럼 삭아버린 엄니가

검정 공단 한 필로 내 앞에 나타났네

 

네 어미 유품이다 가져가거라

시집가는 경숙이 제일가는 혼수로다

할머니 내놓으시는 검정 공단 한 필

기름 자르르 돌았을 삭아버린 공단처럼

공작처럼 예뻤다는 서럽고 서러운 내 엄니

꽃다운 청춘에 총알 박힌 운명이여!

젖먹이 안고 산화한 영원한 성모상!

 

어미 없어 징징거리던 세 살짜리 유경숙

그늘진 담모퉁이 스물네 살 유경숙 시집 간다네

오늘 밤 지나면 시집 간다네

삭아버린 검정 공단 온몸에 휘감고

엄니엄니 부르며

밤새워 울어버린 시집가는 경숙이

제일가는 혼수로다

무덤 속 엄마가 고이고이 마련하신 검정 공단 한 필

 

3) 돌무덤 아기

내 이름 내 이름은 돌무덤 아기

마당을 딛고 서보지도 못했어요

꼬꼬닭과 삽살개와 친구도 못했어오

엄니엄니 젖주세요 엄니엄니 젖주세요

어제도 오늘도 허기가 져요

엄마 뚫고 온 유탄에 맞아 엄마 품에서 저는 갔어요

 

나는 나는 돌무덤 아기

이승의 어느 산모렝이에 그늘 한 점

남기지 못하고 저승 마을로 이사 갔대요

돌무덤 속에서 나는 울어요

바람이 불어도 나는 울어요

날이면 날마다

으아앙 으아앙- 돌베개 혼자 베고 나는 울어요

이름 석 자 없는 나는 돌무덤 아기

달 밝은 밤에도

별빛 흐르는 숲 속에 나와 젖 주세요 젖 주세요

엄마를 찾는

나는야 이름 없는 돌무덤 아기

 

아니란다 아기야 돌무덤 아기야

아귀들 지옥 같은

이승의 이름표 붙이고 나면

어떻게 천사가 될 수 있겠니 아무 죄도 없이 죽은 아기야

돌무덤 컴컴한 동굴에서

어서어서 빠져나오렴 날기로 날기로 맘먹어 보렴

빼죽빼죽 날개가 돋아날 거야

돌무덤 아기 천사 되어 보는 거야

나울나울 날개를 저어 은하수 건넛마을 날아가 보는 거야

너울너울, 너의 엄마 기다리는

꽃 같은 주정자 천사 품에 안겨

작은 날개 큰 날개

새고 지고 새고 지고 천년 만년 새고 지고

    유족 유경숙님의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문집 중에서 일부 내용 1(출처 : 유족 유경숙 님 제공)
    유족 유경숙님의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문집 중에서 일부 내용 1(출처 : 유족 유경숙 님 제공)
    유족 유경숙님의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문집 중에서 일부 내용 2(출처 : 유족 유경숙 님 제공)
    유족 유경숙님의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문집 중에서 일부 내용 2(출처 : 유족 유경숙 님 제공)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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