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장이가 시위를 하는 이유

47년 동안 구두 만들던 손으로 피켓을 들었다. 좀 어색하지만, 다른 시도를 해봄으로써 나와 주변에 새로운 파장을 만들고자 용기를 냈다. 시위가 끝나면 성수동에서 구두공방으로 출근하기 바쁘지만 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한 가지, 뿌리깊은 불공정 갑질 경제 체제로는 수제화 장인도 그 누구도 점점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제화 산업의 존폐 위기에 앞서 구두장이가 외치고 싶은 것을 정리해본다.

구조적인 상황을 알리기 위해 수제화 유통 구조를 아래의 표로 단순화했다.

[갑, 중의 갑 – 백화점, 홈쇼핑, 아울렛]

프랜차이즈보다 더 무서운 유통 재벌들의 수수료는 결국 한 사람의 수제화 장인에게까지 그 위력을 끼친다. 백화점, 홈쇼핑, 아울렛 등의 슈퍼 유통 공룡 앞에 한 사람의 수제화 장인은 기울어진 시장경제의 판 위에 바로 서 있기도 쉽지 않다. 갑 중의 갑인 그들 앞에서는 노동자는 을도, 병도 아니다. 제품의 40%에 육박하는 수수료는 국내브랜드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해외유명 브랜드에게는 오히려 수수료를 낮춰주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 백화점 등은 갑 중의 갑이다.

[을, 유통브랜드의 하청업체 전락시키기]

백화점, 홈쇼핑, 아울렛의 높은 유통수수료를 감당하며 수제화 유통브랜드 등은 국내제조공장에게 OEM방식으로 하청을 한다. 예전에는 유통브랜드들이 자체에 본청 제조공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통브랜드들이 본청을 분리하여 하청 업체로 독립시켰고, 단가와 관리비를 낮추어 유통마진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하청 업체들의 제조 납품가를 최대한 깎고, 그나마도 60~70%씩 결제를 해주는 방식으로 거래하니, 하청업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실제로, 유명 유통브랜드와 거래하던 하청업체 사장 중에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었다. 하청업체 사장도 그러할 진데, 그곳에 소속된 수제화 장인들의 사정은 어떠할까.

[병, 억지로 사장님이 되는 수제화 장인들]

하청업체들도 유통브랜드가 하는 갑질을 그대로 수제화 장인들에게 한다. 각각의 수제화 장인들을 사업자등록을 내도록 하여, 하청업체 사장들은 수제화 장인들에게 장소를 빌려주는 식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수제화 장인들은 각각 개인사업자가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수제화 장인들은 4대보험은커녕 직원으로서의 최소한의 대우나 퇴직금없이 일하는 가운데, 그나마 일한만큼 받는 임금 마저도 줄어들어 일하는 환경은 자꾸 열악해져만 간다.

[정, 우리에게 사치인 최저임금]

얼마전 최저임금 협상 타결을 뉴스를 보면서도 그러한 최저임금협상이 수제화장인들에게는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된다. 수제화 장인은 한 켤레 제작할 때마다 공전이라고 하는 임금을 받는다. 숙련된 기술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으로 최저임금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수제화 장인들이 많을 정도로, 한 켤레를 수제작할 때마다 공전은 박하게 책정이 되니, 짧은 시간에 많이 만들어야 그나마 입에 풀칠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성스럽게 시간을 들여 만들기 보다는 대충 날림으로 빨리 만들어야 수입을 맞출 수 있게 되고 결국 그것이 제품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가고 있다.

[최종, 피해는 소비자들에게도]

백화점, 홈쇼핑, 아울렛은 높은 수수료를 유지하고, 유통브랜드역시 유통마진을 최대한으로 남기려고 하고, 하청제조업자들도 수제화장인들을 쥐어짜는 식이 계속 되면, 저품질의 구두를 생산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게 되어 소비자들은 백화점 등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도 저품질의 상품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국내제품이나 중국산신발이나 뭐가 다른가 해서, 저렴한 해외OEM상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이 반복되니 국내제조는 더욱 힘을 잃게 되고 만다. 이렇듯, 상생을 잃어버린 유통시장의 변화 없이는 제조업체들의 자구책이나 최저임금 인상만으로는 실질적인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해결책, 유통수수료의 변화]

제조공장에 수제화 장인들의 인건비인 공전을 적정 수준으로 상향해달라는 요구도 사실은 유통수수료의 조정 없이는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모두가 적정수준에서 거래하지 않고, 상위에 있는 유통이 폭리를 취하고 갑질을 할 경우, 제조업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제조시장에서도 수제화 장인들의 인건비는 최대한 줄이고 있어 악순환이 반복된다. 갑, 을, 병, 정의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거래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제화 기술도 점점 낙후되고, 젊은 청년들의 미래 일자리도 줄게 된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거래만이 직업도 살리고, 경제도 살리게 되는 것이 비단 우리 제화산업뿐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사라지는 일자리 - 수제화장인]

현재 10만명의 숙련된 수제화 장인들의 평균 나이는 62세로, 젊은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가 아니기에 이 기술을 더 배우지 않는다. 국내 수제화산업이 점점 어려워지고 좋은 일자리와 기술직이 점점 줄어들고 해외에서 제조해오는 것이 다반사가 되고 있다. 신발은 우리 삶의 필수품이기에 국내 제조가 아니라면, 해외에 나가서 제조를 해오는 상황이지만, 국내에서 제조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경우, 해외의 제조경비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국에서의 제조단가가 더 높아져서 최근에는 베트남에서 제조해오는 추세다. 이 제조과정에서 품질이 보장되기 어렵다.

[결론,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거래]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도 좋으나, 백화점, 홈쇼핑, 아울렛 등의 유통 수수료를 조정하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거래의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국내의 제조산업, 비단 제화산업뿐 만 아니라, 많은 제조산업을 살릴 수 있다. 현재 최저임금이 상승되었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갑 중의 갑인 유통 공룡들의 높은 수수료와 임대료 등을 조정하지 않고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국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국가기관 전반이 이 문제를 잘 살핀다면 대한민국 산업의 전반을 살리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 탐욕스럽고 상생을 잃어버린 시장경제에서 더 늦기 전에 시장을 바로잡을 기회를 대한민국이 갖길 희망하며, 구두 만들던 손으로 피켓을 들며 내가 지나온 부러진 다리를 고치는 노력을 하고 싶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박광한 주주통신원  kosita.or.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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