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화 장인이야기 1. 다리 놓는 사람

사라져가는 직업, 수제화 장인 박광한 주주통신원l승인2017.08.18l수정2017.08.2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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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겨레 주주이자 문화공간온 조합원인 박광한(63)씨는 46년째 구두를 만드는 장인이다. 현재 서울 성수동 구두거리에서 구두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사양화되어 가는 수제화 산업의 절멸을 막기 위해  5월 (사)한국제화산업기술협회(www.kosita.or.kr)를 주도적으로 설립했으며 지난 7월에는 수제화 장인이 당하는 갑질을 고발하는 일인시위를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2주간 매일 진행한 바 있다.

여덟 명의 친구들, 그때 그 시절..

나는 17살 때부터 구두기술을 배웠다. 구두기술자를 전문용어로 수제화기능인, 옛말로는 “갖바치”라고 한다. 의적 임꺽정의 갖바치선생은 임꺽정에게 무술과 병법을 가르쳐 줄 정도로 손재주 외에도 재능과 철학이 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는 갖바치 중에 그런 훌륭한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고, 그저 생업을 위해 그렇게 구두장이의 삶을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는 구두장이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동네 친구 여덟 명 중의 네 명은 나처럼 수제화기능인이 되었을 정도였으니까... 다른 친구들은 직물도매상가 점원, 숙녀복 재단사, 야간상고학생이었고 마지막 한명의 친구는 뚜렷한 직장이 없이 이리저리 일을 했었다. 대부분은 중학교를 졸업했고, 여덟 명 중 세 명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가정형편이었으나 우리 여덟 명 중 어느 누구도 대학진학을 하지 않은 건,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지금만큼 대학진학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판도가 달라진 46년 후

46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시절 친구들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정한 직업 없이 이런저런 일을 했던 친구는 운동을 잘하는 특성을 살려 경찰공무원이 되어 강력계 형사로 승진하고 퇴직을 했다. 그리고 야간상고를 다니던 친구는 은행원이 되어 이사로 일하다 퇴직을 했다. 또 나를 비롯해 구두장이가 된 친구들은 아직 현업에 있지만, 그때보다 직업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그리고 두 친구는 사업에 실패를 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80년대 초에는 은행원과 경찰공무원, 그리고 수제화기능인의 직업적인 환경과 복지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은행원이나 공무원들의 환경과 복지가 조금씩 더 나아지고, 수제화산업을 정부에서 3D 업종으로 분류했고, 수제화기능인의 환경과 복지도 점점 더 외면되어 갔다. 세월이 흘러 46년이 지난 지금의 직업적인 환경과 복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수입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인기 없는 직업, 구두장이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37년 전 전국에 10만이 넘던 수제화기능인들은 지금은 2~3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평균연령이 62세가 넘고, 향후 7~8년이 지나면 수제화기능인들이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제화기술을 배우는 데 보통 3년 이상이 걸리지만, 명품구두를 만들려면 5~6년 정도의 숙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나의 완전한 구두를 만들기까지는 아주 고도의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그냥 기계로 찍어낼 수 없는 구두는 바로 그런 수제화기능인들의 땀과 기술로서만 완성된다. 그런 수제화기능인의 손기술이 듬뿍 들어간 구두, 그것이 바로 수제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문적인 일에 이 사회는 관심이 없다. 46년 전 함께 기술을 배우던 동료들이 거의 마지막 세대이고 수제화산업은 늙어가는 구두장이들처럼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발굴은 까마득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수제화기술을 배우고 싶어할까... 일주일에 6일 근무하면서 하루 16시간(주96시간) 이상 일을 하고 여성 근로자들 역시 출근시간은 있으나 퇴근시간이 불규칙하고, 보통으로 밤 9시 넘게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전문직으로 근무하고 있으면서도 근로기준법으로 정하는 연차나 월차휴가를 쓰지 못 한다. 그러니, 누가 수제화기술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겠는가. 한국사회는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수제화업계는 인력난으로 고초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 환경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는 수제화를 배우려는 청년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구두에 대한 애정, 천직에 대한 예의

나는 구두를 사랑한다. 평생 한 우물인, 구두를 만들며 살아온 내 삶에 후회하지 않는다. 수제화에 대한 애정은 정말 남다르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간 한국사람 손으로는 더 이상 한국인을 위한 구두를 만들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심각성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실질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에 나는 (사)한국제화산업기술협회를 발족했지만, 아직 수제화업계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힘이 부족한 상태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나 스스로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고... 그래서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시위와 공식 민원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물론, 시위와 민원만으로는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내가 가진 구두에 대한 사랑, 그리고 지키고 싶은 이 수제화산업에 대한 내 마지막 예의를 이렇게라도 지키고 싶었다.

내가 그리는 세상

수제화기능인을 포함한 다른 산업의 기능인들도 교수나 공무원과 같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 구두장이라고 하는 이 훌륭하고 멋진 직업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 구두장이도 교수도, 공무원도 평등하게 어울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우리의 수제화산업도 환경과 복지에 관심을 가져주면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나의 이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꼭 일류대학을 나와야 직업이 보장되고 행복해지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모든 사람이 변호사, 의사, 공무원, 대기업직원이 되면 세상은 더 좋아질까? 정부가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을 하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전에 우리주위에 환경이 안 좋아 사라지는 직업을 찾아 그 환경을 개선하면 그 직업을 지켜내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리 놓는 사람

나를 보면 생각난다며 딸이 알려준 시를 읽으며,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런 마음이라면 청년실업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제화산업의 문제점도 이 시가 말해주는 정신으로 노력하면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내게 희망을 준 이 시를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다. 나 역시 이 시의 남자처럼 뒤에 오는 청년들을 위해 “다리 놓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다리 놓는 사람

도로를 혼자 걸어가는 중년의 남자
어두운 조수가 넘실거리는
크고 깊고 넓은 골짜기에
춥고 건조한 저녁에 왔네.

그 중년의 남자는 그 골짜기를 황혼의 빛 아래 건너는데,
어두운 물결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네.
안전한 장소로 넘어왔는데, 그는 몸을 돌리네
그리고 물살 위로 다리를 놓기 시작하네

“이보게나” 근처의 동료 나그네가 그를 부르네.
“자네는 이곳에 다리는 놓느라 기력을 소진하고 있네.
자네의 여정은 곧 죽음과 함께 끝날 걸세.
결코 이 길을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텐데...
깊고 넓은 골짜기를 이미 지나 온 자네가,
왜 이 늦은 저녁에 이곳에 다리를 놓는가?“

그 다리 놓는 사람은 그의 회색머리를 들고 말하길,
“이보게 친구여, 내가 이미 지나온 이 길을
오늘의 나처럼 지나올 이가 있네.
그 젊은이는 이 길을 지나올 수밖에 없지.

이 골짜기는 내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네만,
그 금발의 젊은이에게는 함정이 될 수도 있네.
그도 역시 황혼의 빛 아래 이 길을 건너와야 하네.
이보게, 좋은 친구여. 나는 그를 위해 이 다리를 놓는다네.

 

The Bridge Builder
- Will Allen Dromgoole-

An old man, going a lone highway,
Came, at the evening, cold and gray,
To a chasm, vast, and deep, and wide,
Through which was flowing a sullen tide.

The old man crossed in the twilight dim;
The sullen stream had no fear for him;
But he turned, when safe on the other side,
And built a bridge to span the tide.
 
"Old man," said a fellow pilgrim, near,
"You are wasting strength with building here;
Your journey will end with the ending day;
You never again will pass this way;
You've crossed the chasm, deep and wide-
Why build you this bridge at the evening tide?"

The builder lifted his old gray head:
"Good friend, in the path I have come," he said,
"There followeth after me today,
A youth, whose feet must pass this way.
 
This chasm, that has been naught to me,
To that fair-haired youth may a pitfall be.
He, too, must cross in the twilight dim;
Good friend, I am building this bridge for him."
 

▲ www.kosita.or.kr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박광한 주주통신원  hyungoa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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