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242일~245일째

비가 내린 다음날, 오월 햇살은 초원의 초록을 더욱 찬란하게 한다. 텅 빈 듯한 대지에 초록빛 희망이 가득하다. 아시아 알프스라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초록 길 위에 양귀비 빨간 꽃이 군락을 이룬다. 전봇줄 위에는 뻐꾸기 한 마리가 청아한 소리로 노래를 한다. 그 소리가 희망으로 가득한 내 가슴에서 공명하여 천상소리가 된다.

▲ 5월 2일 만난 양귀비

8개월 전 나는 길을 떠났고 지금은 맑고 순결한 키르기스스탄 5월 속에 있다. 소와 말과 양은 초록으로 배를 채우고 지금 한민족은 통일의 희망으로 영혼을 채운다. 초원의 하늘은 아버지 생애처럼 좁지 않고 드넓고 푸르르다. 이곳에 오면 누구든 잃었던 시력을 되찾고 잃었던 희망을 되찾을 것 같다.

그리도 고운 소리로 노래를 하는 뻐꾸기는 사랑을 하고는 작은 새 둥지 알을 몇 개 밀어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몰래 자기 알을 낳는다. 그 작은 새 어미가 자기 새끼를 품어 부화하고 먹이를 먹여 키우게끔 한다. 뻐꾸기 얄미운 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알보다 일찍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다른 알들을 밀어 떨어트리고 의붓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독점한다. 뻐꾸기 어미는 둥지 근처에서 뻐꾹 뻐꾹 울어대기만 해도 새끼는 키워준 어미를 버리고 진짜 어미를 찾아 가버린다.

뻐꾸기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얌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기 전 도시인 메르끼에 숙소를 정했다. 이제 지세는 텐샨 산맥 자락으로 들어서는 길이라 계속 완만하지만 오르막길이다. 바람마저 거세 맞바람을 맞으며 달렸더니 다른 날보다 많이 피곤했다.

▲ 4월 29일 밤 도난당한 날에 묵었던 호텔

평소처럼 6시에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방문은 잠그지 않았다. 지난번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안으로 잠갔다가 열리지 않아 혼이 난 경험도 있고, 설마 사람이 자는 방에 도둑이 들까하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나는 자다가 자주 소변을 보러 일어난다. 10시 반 쯤 깨었을 때 분명 제자리에 있었던 컴퓨터가 2시 반에 깨었을 때는 안 보인다. 갑자기 잠이 확 깨면서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불을 켜고 보니 핸드폰도 없어지고 마라톤용 GPS 시계가 제자리에 없다.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다행이 여권과 돈이 들어있는 허리백은 있다. 가방도 뒤져서 헝클어져서 돈 봉투가 밖으로 나왔는데 가져가지 않았다.

돈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글을 쓰는 내게 컴퓨터에 담긴 자료나 사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니 뭔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나는 이런 일이 있는 경우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이런 일을 경찰이 해결해주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가라 서명하라 귀찮은 일만 벌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신고를 했다. 경찰 두 명이 왔지만 쓸데없는 것만 물어보면서 시간을 끌었다. 수사에도 골든타임이 있을 것인데 말이다. 이럴 경우 CCTV를 확인하고 손님들이나 직원들을 확인하고 동네 요주의 인물을 확인해야 할 텐데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경찰에 신고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시간만 보내더니 내일 아침 10시에 경찰서로 오라고 한다. 난 다음날 경찰서로 가서 하루 종일 잡혀있다시피 했다. 울화통이 터졌다.

개미 법칙이 있고 꿀벌 법칙이 있는데 둘은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둘 다 부지런한 곤충의 대표주자다. 그런데 개미의 탈을 쓰고 벌의 탈을 썼다고 다 부지런하지 않다.

80대 20의 법칙이 작용한다. 20%는 게을러서 빈둥거린다. 그래서 빈둥거리는 20%를 싹 잡아 죽였다. 이제 100%다 부지런한 개미 세상이 올까? 대단히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다!’다. 다시 그 중 20%는 게으름을 피운다. 지금 막말만 일삼는 국회의원들, 남북이 화해무드를 조성하는데 재 뿌리는 반통일 세력들 다 보내버리고 그들을 따르는 20% 솎아내면 정의로운 사회가 올까?

대단히 죄송하지만 ‘아니올시다!’다. 어차피 필요악은 있다. 필요악도 사회구성원으로 수용해야 한다. 개미와 벌처럼 운명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공존해야 한다.

다만 그들에게 국회의원 배지나 동네 통반장도 주어서는 안 된다. 다만 20%가 넘지 않도록 잘 관리하자. 지금 20% 지지율이 가장 정상적인 사회 비율이다. 그들이 없어지면 지금 민주세력이 또 다른 독재세력이 된다.

간혹 화가 나고 불편하지만 필요악이라는 게 있다. 자연이 뻐꾸기를 도태시키지 않고 함께 상생하듯이... 내가 지나온 세상 어느 나라도 도둑놈 없는 나라는 없더라. 반통일 세력, 반평화 세력이 20% 넘지 않도록 이번 지방 선거 잘하자!

▲ 2018년 5월 1일에서 3일까지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
▲ 2018년 5월 1일에서 3일까지 달리면서 만난 이정표
▲ 5월 1일에서 3일에 만난 키르기스스탄의 모습
▲ 2018년 5월 1일에서 3일까지 달리면서 만난 각동 동상들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5월 3일 키르기스스탄 벨로보스코 옆 Sadovoe까지 (누적 최소 거리 8337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 강명구, 김현숙 마가렛 / 동영상 : 김현숙 마가렛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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