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문명이라 불러다오

1화의 ‘한서지리지’이야기를 환기하시라. 역사학자들은 BC108년 한나라가 설치한 사군四郡이 고조선을 지배(식민통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낙랑군 등은 그보다 천년 이전에 기자의 이름으로 설치되었으며, 식민통치기구가 아니라 유교―예禮와 의義―를 전파하는 선교단이었다. 기자箕子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조선백성들에게 예禮와 의義를 가르쳐서 자유의 풍조를 제거해야만 중화의 지배계급이 중원의 백성들을 부려먹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년 후 한나라는 왜 사군을 설치(개조?)하였을까? 마찬가지다. 조선백성들에게 예禮와 의義를 가르쳐서 자유의 풍조를 제거해야만 중원의 백성들을 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보시라. 주나라가 낙랑을 설치하고 1000년 후 한나라가 다시 낙랑을 설치하였다는 사실은, 중국이 천년 동안이나 낙랑질을 하였지만 고조선백성들을 결코 중화화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 아득한 단군의 후예들이 천년 동안이나 거대중국에 맞서싸우며 지켜내고자 하는 '자유'는 어떤 것이었을까?

주몽신화를 보라.

유화柳花는 물의 神 하백河伯의 딸이다. 어느 날 그녀는 천제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해모수의 유혹에 넘어가 하룻밤의 사랑을 나누었는데, 하백은 그녀의 죄를 문책하여 태백산 남쪽 우발수로 귀양 보낸다. 유화는 거기서 해모수의 손자인 금와왕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자, 금와는 유화를 부여의 궁궐로 데려간다. 그 후 유화의 몸에 태기가 생겨 알 하나를 낳고, 그 알을 깨뜨리고 한 아이가 출생한다. 그 아이는 활을 잘 쏘았는데 부여의 풍속에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므로 ‘주몽朱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신화의 배경과 신화에 담긴 인문학적 기술, 의의들을 낱낱이 설명하려면 한 권의 책으로도 모자라리라. 가장 기본적인 소재는 ‘여인의 운명’이다. 유화柳花라는 이름의 여인은 해모수를 사랑하였으나 배신당한 후 그 손자인 금와에게 시집간다. 유교가 가장 금기하는 ‘두 남자를 섬긴 화냥년’이다. 고구려인들은 두 남자, 그것도 할아버지와 그 손자를 상대로 잠자리를 같이 한 천하제일의 화냥년을 민족의 어머니로 설정한 것이다. 왜 그런 참람한 드라마를 써서 우리 후손들에게 선물하였을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생각하라.

아버지 햄릿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거트루드왕비)가 찬탈자인 클로디어스왕과 재혼한다. 햄릿은 그런 순결하지 못한 어머니를 향하여 ‘더러운 화냥년’이라고 비난하며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관객들은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정신적으로)잃어버린 햄릿을 연민하리라. 그러나 햄릿과 관객들의 오류를 암시하는 오필리아의 노래를 보라. “윤간자, 윤간자, 그 남자는 끝없이 이어지는 윤간자(a-down-a). 빙글빙글 돌아가는 수레바퀴에 잘도 장단을 맞추누나. 주인집 딸을 겁탈한 그 청지기는 나쁜 사람이야.” 주인집은 교회이며, 딸은 하느님말씀이며, 주인집 딸을 겁탈한 남자는 중세교회의 사제(청지기)들이다. 그러고보면 햄릿은 청지기들의 겁탈로 탄생한 말씀(대전제)을 잣대로 삼아 어머니의 사랑(소전제)을 비난하고 저주한 꼴이 아닌가.

재혼한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다가 여자의 결혼할 권리를 가로막는 말씀(대전제)을 각성하는 것이 햄릿의 르네상스였다면, 이제 주몽신화를 재고하시라. 주몽은 분명 두 번째 남자와의 사랑으로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원망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런 운명이었기에 일찍이 여자의 권리와 그 권리를 억압하는 법도(삼강오륜)를 각성하였을 것이니, '공자왈맹자왈'하면서 삼강오륜 따위를 유행시키는 낙랑樂浪은 물론 그 배후인 중화中華를 상대로 죽는 날까지 투쟁하였으리라. 필자의 상상이 아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물론 중국의 모든 역사책들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우리의 이름은 ‘중화中華'가 아니라 ‘유화柳花’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문명의 충돌이 동북아역사다. 저 만리장성 너머에서 불어오는 자유의 바람을 차단하지 않고서는 주나라는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니, 기자는 조선으로 가서 예禮와 의義를 교육하고, 천년 후 한나라도 기자의 사군四郡을 개조하고, 그 다음 천년도 그리해야 할 것이라고 중화의 후예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반고班固는 저 위대한 ‘한서지리지’를 쓰지 않았던가. 어디 '한서지리지'뿐이랴.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구당서 신당서 등이 모두 중원으로 불어오는 유화문명을 차단하고자 중국의 역대제왕들과 성현들이 얼마나 절치부심하였는지를 증언하는 역사책들이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수천년 동안 충졸해온 두 문명은 이제 서로의 진면목을 비추어주는 역사의 거울이라고 해야 하리라. 그러니 중국의 동북공정에 감사하시라. 그들이 중화의 얼굴을 숨기고 찬란하게 색칠하는 '공정'에 절치부심할 때, 우리가 그들의 중화中華프레임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유화柳花문명은 서서히 부활할 것이니 말이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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