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의 탄시암(嘆時岩)을 아시나요?

 

탄시암은 완도군 보길면 백도리 산 1-1번지에 위치한 바위로, 소안면의 맹선리와 마주한 돌출 된 곳의 바위를 말한다.

지금은 甫吉島라고 쓰지만, 왕조실록 등에는 寶吉島, 甫叱吉島라고 쓰기도 하였다.

고려 때는 최영장군이 삼별초를 토벌하러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에서 정박을 하면서 전열을 정비하기도 한 곳이고,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도 너무도 유명한 곳이다.

고산은 어부사시사에서 보길도의 비경을 한마디로 표현하였는데, 선계(仙界)인가 불계(佛界)인가 인간이 사는 곳은 아니라고 표현하였다.

 

이런 보길도에 숙종 15년(1689)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 풍랑으로 보길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자신의 처지를 암벽에 새겨놓은 시가 있다. 이 바위를 탄시암이라고 불렀다.

 

시의 내용은,

'팔십 삼세 늙은 몸이/ 푸른 바다 만리 한가운대 있다/ 궂은소리 한마디가 큰 죄가 되어/ 세 번 쫓겨나니 이 또한 궁하구나 /북녘하늘의 임금님을 우러러보며/ 남쪽바다에서 다만 바람만을 믿고 있네/ 단비갑옷의 옛 성은 여기에 있어/ 감격하여 외로이 눈물지우네.'

 

이곳 탄시암을 우리들은 지금까지 글씐바위라고 부르고 있지만 본래는 우암의 탄시암(嘆時岩)이라고 하였으나, 2005년 1월 4일 완도군 향토유적 12호로 지정이 되면서 글씐바위로 이름이 바뀌고 말았다. 본래의 이름으로 바꿀 수는 없는지 모르겠다.

▲ 보길도의 탄시암

이로부터 78년 후인 1767년에는 임관주(任觀周)가 같은 길로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가 송시열의 시를 보고 써놓은 시가 우암의 시 바로 왼쪽에 있다.

'나라에 우암이라고 하는 어른이 있어서/ 백도에 들려 시를 지었네./ 유교문화의 고난과 재액을 따라,/ 대노 현옹도 조난만은 궁하여서/ 춘추 필 유묵으로 심사를 밝히니,/ 거치른 해풍이 눈물로 단비 옷 적시네./ 하늘에 해만이 임 향한 단심 비쳐주네.' 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래되어 식별이 불가능하다.

다행스럽게도 완도문화원에서 탁본을 해두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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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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