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의 희열'을 보고

경자년 첫날 딸내미랑 ‘씨름의 희열’을 보았다. 금강장사와 태극장사들이 팀을 나누어 겨루고 있었다. 너무 재미나서 그 전 방영분을 찾아서 모두 다시 보았다. 경량급인 태백급 8명, 금강급 8명이 나와서 서로 자웅을 겨루는 프로그램이었다. 씨름선수들이 코미디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진짜 씨름을 하는 예능이었다. 그런데 더 재미있다. 상남자들이 화려한 기술로 상대를 모래판에 누이는 게 정말 볼만했다. 예부터 사람들이 모이면 씨름판을 벌인 이유가 있었다.

나와 이봉걸장사가 중학교 동기다. 씨름 명문 대구 영신중 동기다. 중3 어느 여름날 거인 한명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전학을 왔다. 우리는 그 친구를 보기 위해 그 반 창문을 기웃거리다 돌아보는 눈빛에도 달아나곤 했다. 그 시절 수업을 마치면 운동장 남쪽 매점 앞 씨름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했었다. 김성율 시대를 마감시킨 홍현욱, 이봉걸같은 쟁쟁한 선수들이 맨몸으로 겨루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소라과자 한 봉지라도 손에 들려있으면 더욱 행복했다. 뒤집기 같은 기술이 나올 때는 박수를 치면서 말이다. 그 때도 덩치 작은 선수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기술이 더욱 재미있었다.

아들은 능인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우리 집 바로 옆이 능인이었다. 아들 방에서 교실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대학시절 살던 교내 기숙사에서 강의실까지가 훨씬 멀었다. 능인고가 요즘 씨름명문이다. 씨름계 아이돌 황찬섭, 금강급 전도언이 능인출신이다. 지금 씨름 열기를 만들었다는 2백만 뷰를 넘긴 황찬섭 유튜브 영상에는 ‘이 좋은걸 할배들만 보고 있었네...’라는 댓글이 달려있다. 내가 봐도 잘생기고 몸도 좋다. 저 좋은 몸을 가지고 씨름을 한 선수들이 고맙다. 올림픽 메달도 없고, 그래서 보장된 연금도, 병역혜택도 없는 게다가 인기도 없던 종목을 아직까지 하고 있는 선수들이 정말 고맙다. 이젠 그들이 보답을 받을 때가 되었다.

씨름은 재미나다. 김홍도 민속화 속 씨름도 재미나다. 그림 속 사람들이 모두 씨름에 집중하고 있다. 원래가 재미난 경기였다. 씨름 재미를 알아 봐 준 청춘들에게도 고맙고, 그 씨름을 가지고 재미난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방송국도 고맙다. 이제 나도 토요일 밤이 기다려진다. 우리 씨름도 트로트 열기처럼 화려하게 부활하길 바래본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psalm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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