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87] 대만 사람과 사업하기(堅壘公司-3)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20.03.26l수정2020.03.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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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으로의 등산장비 수출은 순조로웠습니다. 버너, 코펠, 매트 등부터 바람막이, 눈이 내리지 않는 대만에도 3,000m 넘는 산들이 많다 보니 아이젠도 많이 나가고 돗자리와 의류도 나갔습니다.

▲ 수입상 회사명이 堅壘公司(견루공사)에서 堅壘公可(견루공가)로 잘못 인쇄되었는데 제가 체크를 못하고 그냥 수출한 제품. 여러 실수 중 하나.

컨테이너로 대량의 물건을 보내니 수출 운임과 경비도 대폭 줄었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생겨 시장의 수요도 늘고, 다양한 제품이 들어오니 소비자들의 관심도 더 늘어났습니다. 자신의 매장에서 팔다가 업계 지인들에게 공급하게 되고,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도시와 지역을 나눠 중간 딜러들에게 공급하는 체계로 바뀌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에는 딜러들이 伍 先生과 함께 한국에 와서 관광도 했고, 저 역시 대만에 가면 타이베이(臺北), 타이중(臺中), 가오슝(高雄) 등을 방문하여 시장 상황을 체크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들어가는 장비의 85%는 우리 손을 통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떤 사업이나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모르던 사람이 만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고 서로 이윤을 나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지요.

대만사람들은 비교적 허례허식이나 체면을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손님이라 특별히 더 신경을 쓰지 않지요. 점심에는 함께 도시락을 먹거나, 규모가 큰 회사에서는 대부분 사장과 직원 그리고 방문 손님도 사내 식당에서 똑같은 식사를 합니다. 그러니 누가 와도 부담스럽지 않고, 저도 피해를 줄 일이 아니니 만남이 편합니다.

물량이 점점 늘어나 40피트 컨테이너를 사용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40피트 컨테이너를 다 채우려면 화물차 여러 대가 들어옵니다. 등산장비 업계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소문이 많이 퍼졌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거의 매달 컨테이너를 열어놓고 많은 화물트럭이 와서 물건을 내리면 수량 확인하고 그 자리서 현금 결제를 하니 김동호와 거래를 하면 돈을 번다는 소문이 과장되게 퍼졌다더군요. 한 영업사원은 저 같은 사람 세 명만 만나면 먹고산다는 이야기가 돈다며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거래하던 공장들은 서울에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허가 공장이 많은 김포, 의정부, 동두천, 양주, 구리 등에 있었습니다. 그중에 돗자리 만드는 공장이 김포 읍을 지나 얼마 가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처음 소개받아 방문하니 업계에 퍼진 소문 때문인지 사장과 전무 그리고 영업사원이 함께 자리하였습니다. 만나본 사람 중에 사장이 드물게 순수하고 샌님과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업사원이 나중에 해준 이야기입니다. 통상 바이어와 상담할 때 상대방이 협상과정에서 가격인하를 요구하면 들어주기 위해 10~20% 올린 가격을 제시한다고 합니다. 伍 先生 자체가 가격흥정을 안 하고, 상대방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되면 상대방에 맞춥니다. 저 역시 공장에서 좋은 제품으로 잘 만들어줘야 제가 편하고, 공장도 이익이 남아야 서로 즐겁게 오래 갈 수 있기에 생산자 편의를 봐주려는 입장이었지요. 제시한 가격을 깎았던 기억은 안 납니다.

IMF 이전 상황을 기억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 한국 경제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좋은 물건은 일본으로, 싼 물건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로 바이어들이 돌아섰지요.

그 당시 등산장비 업계에 사기꾼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어디 빈 매장을 임대하여 유통업체라 속이고 샘플로 얼마간의 물품은 현금을 주고 구매하여 안심시키고, 대량 물품을 구매하여 어음결제한 후 사라지는 일들이 빈번했습니다. 심지어 대형 매장이 들어와 며칠 영업하다 갑자기 문 닫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김포의 돗자리 공장은 제가 특별히 신임하고 좋아하던 공장이었으며 거의 매월 수출하던 물품이라 어떤 때는 자금이 어렵다고 하면 선 결제를 해주던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공장에 갔더니 전무가 벌겋게 충혈된 눈과 취기가 가시지 않은 탁한 목소리로 '사장이 나쁜 놈'이라며 욕을 하더군요. 사장이 자기 친한 친구였는데 사기를 당하고 자금이 어려워지자 도봉산에 올라가 목을 매 자살했답니다. 연락 받고 자기가 가서 수습했다면서. ‘차라리 마누라와 아직 학생인 어린 자식을 위해서 차를 몰고 어디 가로수라도 들이받고 죽을 것이지’라며 저까지 눈물 줄줄 흘리게 하더군요.

또 등산용 가스버너에 주머니를 만들어 납품하던 봉제공장 사장이 추석인데도 직원들 월급도 못 준다고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제가 사기꾼의 사자만 들어가도 격렬하게 증오심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사기꾼에게 피해를 본 사람은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가정이 파괴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더군요. 역대 대통령 중에 사기꾼 한 명을 유난히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번은 사업 전에 관여했던 부천의 코펠 공장 사장이 연락을 주었습니다. 시즌이 끝나면서 만들어놓은 제고가 있는데 그동안 제게 공급한 가격보다 30% 더 싸게 줄 테니 한 컨테이너 사달라고요. 대만에 연락했더니 아이템별로 비율을 주며 한 컨테이너 채워서 보내라고 하더군요.

공장에서 작업하여 밤에 부산으로 보내고 결제를 하고 집에 왔습니다. 다음날 뉴스에 나오더군요. 그 회사 부도냈다고. 몇 년 후에 전화가 왔었지만 더 만날 일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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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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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짱아치 2020-03-26 13:53:46

    그 당시 일본쪽에서도 간과했던 대만의 등산장비시장이 블루오션이란 걸 님께서 잘 캣치한 거지요~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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