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사람과 사업하기(JIE WANG-2)

[대만이야기 92]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20.06.17l수정2020.08.0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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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여 순조롭게 성장하던 사업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갑자기 절벽, 아니 낭떠러지 앞에 마주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업도 생명체처럼 영원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무척 노력하였지만, 그 또한 뜻대로 안 되더군요.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바이어가 주는 돈으로 물건을 구매하여 수출만 했던 사업이라 국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못 했습니다.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나 재력 경험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만 생기더군요.

그래서 섣부른 결정보다 시간을 벌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도 쉽지 않지만 멈추는 일은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수입이 없으니 지출은 최대한 줄이고 운동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기회가 올 거라는 생각으로 버텼지요.

▲ 대만 까오슝(高雄) 月世界風景區

수출이 멎은 지 한 해가 넘어가던 상황에서 IMF 상황도 찾아왔습니다. 기업들은 해외로 팔려나가고, 회사마다 감원으로 실직자 가정은 울음이 터져 나오고, 홈리스라는 단어가 등장하더니 서울역 지하도를 점령하였습니다.

달러당 900원 정도의 환율로 미국의 특수 페인트를 수입하던 친구도 가파르게 오른 환율과 나라 경제가 부도나기 직전 상황에서 여의도 아파트를 처분하더군요.

제 기억에 달러당 원화가 1,800원대까지 올랐습니다. 저는 가지고 있던 달러를 팔았고, 마침 伍 先生이 환율 덕에 마지막으로 한 컨테이너 물량을 수입했습니다. 그 돈으로 사업을 접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지요.

97년, 98년 당시 모두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던 지인은 당시 30만 달러를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국이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외채 지급을 연기하고, 한국도 곧 디폴트 상태가 될 거라는 흉흉한 소식이 전해지며 달러가 자취를 감추던 상황. 그 지인에게 은행 지점장이 연락해서 만났답니다. 고객이 달러당 2,000원에 30만 달러를 사겠다고. 그래서 6억을 받았고, 당시 목동에 막 새로 지은 고층 주상복합 꼭대기 아래층을 샀지요. 나중에 입주하고 방문해서 서울 야경을 감상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웃을 수만도 없고, 다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힘든 산을 오르고 나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듯, 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인연이 연달아 저를 찾아왔습니다.

한국을 찾기로 했던 JIE WANG의 C(Mr 정)가 방한하여 스틸 볼 업체들을 방문하였습니다. 여러 업체를 방문하고 품질과 가격 그리고 서비스가 좋았던 안산의 태양금속과 거래를 텄지요.

이 친구 덕분에 한국에 있는 스틸 볼 업체는 거의 다 방문했습니다. 규모나 품질은 창원의 한국강구가 으뜸이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고요. 당시 안면 있던 스틸 볼 업체와의 인연이 후에 저에게 최고의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Mr 정의 아버지는 초콜릿 원료를 가공하여 업체에 납품하는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자기도 일찍 사업을 했다고 하더군요.

옆에서 본 Mr 정이란 사람은 학교 성적은 내세울 수 없을지라도 사업적인 아이디어와 결단력 등은 탁월했습니다. 특히 본인의 학업이 짧다는 걸 인지하고 공부를 많이 하였습니다. 사회 대학원 강의를 통해 새로운 경제이론과 사회변화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았으며, 제가 가면 말 잘 듣는 제자를 만난 듯 신나게 강의를 하곤 했습니다.

대만 이야기 앞선 다른 글에서 아내와 이혼하고 빈털터리가 된 이야기를 소개하였습니다. Mr 정은 아내가 고소한 탈세혐의 등으로 맨몸으로 나와 한동안 친구(조 쉬: 제가 홀로그램 필름 사업을 하도록 도운 인물) 사무실에 얹혀살았습니다.

지난 10여 년 누구보다 정력적이고 쾌활하게 사업을 했던 사람. 제가 타이베이에 가면 혼자든 친구들과 가든 반드시 공항에 나와 픽업해주고 푸짐하게 음식대접을 해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를 대중교통을 이용 무척 어렵게 찾아갔더니 어느 건물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낯설고 초췌한 그를 마주했습니다. 사무실로 올라가니 눈의 초점은 흐릿하고 얼굴은 부스스하며 맥이 다 풀린 상태로 ‘사람을 찾습니다’ 코너에 본인의 범죄형 흑백사진이 실린 일간지를 내밀더군요.

그 일 이후에도 두세 번 더 찾았고, 약 1~2년 지나서 친구 조 쉬는 가족과 사업장을 중국 상해지역으로 옮겼습니다. 조 쉬가 세운 홀로그램 관련 회사를 Mr 정이 사용하여 베어링 사업을 시작합니다.

다시 사업을 한다기에 또 찾아갔습니다. 그때도 Mr 정은 차가 없어 역시 힘들게 찾아갔지요. 외진 곳에 창고를 빌리고 합판을 이용 작은 사무실을 차렸더군요. 에어컨도 없고, 냉장고도 없는 사무실에 오로지 선풍기 하나 의지해서 50대 중년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물이라도 시원하게 마시라며 사무실 오픈 기념으로 냉장고 사줄 터이니 나가자고 했습니다. 펄쩍 뛰더군요. 어려울 때 자기를 찾아준 것만도 고맙다며 두툼한 지갑을 꺼내 보여주면서까지 거절을 하였습니다. 지나친 호의는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운 이야기와 식사만 하고 해어졌습니다.

이미 소개했던 이야기라 여기서 그치고 다음에는 Mr 정이 절망적인 상황,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하여 성공한 실화로 이어가겠습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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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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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짱아치 2020-06-17 12:50:02

    사업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스토리가 보통이 아닙니다. 더위마저 잊게하는 한 편의 드라마? 잘 읽고 있습니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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