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91] 대만 사람과 사업하기(JIE WANG-1)

김동호 편집위원l승인2020.05.26l수정2020.05.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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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시장으로 등산장비가 활발하게 수출되던 1995~6년경에도 항상 새로운 사업 종목을 찾기 위해 신경을 쓸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교역이 활발하던 때가 아니어서, 홍콩 업체의 도움을 받아 홍콩 국경에서 중국 입경증을 받고 선전(深圳)으로 들어갔으며, 광저우(廣州)의 켄톤(광동)페어도 참관했습니다.

그때의 선전은 지금과는 상전벽해였습니다. 저녁 식사하러 가는데 호우가 쏟아지자 금세 배수가 안 된 물이 발목을 지나 무릎까지 차오르더군요. 식당에 갔는데 정전이 되는 바람에 암흑이 되더니 종업원들이 익숙한 동작으로 양초에 불을 붙이고, 선풍기도 멎은 식당에서 땀을 흘리며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제가 묵었던 호텔 5층까지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어느 순간 전기가 들어와 창밖을 보니 시내가 환(?)하게 불이 밝혀졌는데, 5층보다 높은 건물이 하나도 안 보이더군요. 당시 처음 중국 땅을 밟았던지라 제가 묵었던 호텔이 어느 지역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홍콩을 통해 들어갔던 뤄후(羅湖)에서 멀지 않은 선전 중심지였을 걸로 추정합니다.

밤이 늦어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문을 부술 듯이 흔들며 문을 열라고 합니다. 공안(경찰)이 과잉 동작과 눈을 위아래로 부라리며 겁주는 고약한 인상으로 여자가 있는지 확인을 하더군요. 당시 대만사람들이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남녀가 호텔에 있으면 불문곡직 잡아다가 심문을 하고, 돈으로 무마하는 경우도 있고, 버티면 여권에 빨간 스탬프로 호색한(好色漢)이란 도장을 찍었답니다. 대만에 돌아오면 여권 분실 신고를 하고 재발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당시 중국에서 가장 큰 전시회가 켄톤(광동)페어였고, 규모도 생각 외로 컸습니다. 많은 서양 바이어들이 보였지만, 한국 바이어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대만에 갔더니 伍 先生이 고등학교 동창 한 친구가 타이베이에서 사업을 하는데 한국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싶어 한다며 함께 가자고 합니다. 300Km가 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서 올라갔습니다.

▲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을 일본에 할양된 대만. 대만은 일본의 한 섬이었지요. 대만에는 아직도 당시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타이난 기차역사 옆에 술과 담배를 팔던 전매소.
▲ 현재는 전시장으로도 사용합니다.

두 친구도 고등학교 졸업 후에 처음 만난다고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사우나에 들어갔습니다.

내가 만난 대만 사람들은 온탕에 거의 들어가지 않더군요. 나는 온탕에 들어가고 두 사람은 냉탕에 들어가서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민난위(閩男語, 복건성과 대만에서 쓰는 방언)로 대화를 합니다.

이 이야기는 대만 이야기에서 이미 언급했었지요. 이 친구의 실명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부인과 이혼하며 숨어 지내야 했고, 회사도 부인에게 넘어가야 했던 가족사가 있어서 그냥 C라고 하지요. 이 C가 설립한 회사가 JIE WANG입니다.

자기는 베어링 등에 들어가는 쇠 구슬(鋼球, Steel Ball)을 일본에서 수입해 대만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대만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품질은 좋고 가격은 일본 제품보다 저렴한 쇠 구슬을 한국에서 수입하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친구들이나 대만 동료들이 한국 사람은 신용이 없다. 이익을 위해서 언제나 뒤통수를 친다며 배신을 잘하는 민족이라고 반대를 하더랍니다. 그러다 친구 소문을 통해 한국과 거래하는 伍 先生 소식을 듣게 되어 연락을 취했답니다.

그러자 그 냉탕에서 伍 先生이 C에게 그러더랍니다. “나와 김동호는 이미 6~7년 지내온 친구라면서, 만약 김동호가 너와 거래하며 금전적인 손해를 끼쳤다면 그만큼 자기가 변상하겠다.”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자기가 조만간 한국을 찾겠다고 하였습니다.

C가 한국에 오겠다고 하고 헤어진 후 얼마 안 되어 중국의 대만해협 봉쇄와 미사일 훈련으로 대만 경제는 정지됩니다. 따라서 C의 방한은 IMF 상황이 터진 1997년경으로 기억합니다.

등산장비 수출은 멎고, 아직 새로운 사업 거리도 없는 상태에서 1년 넘게 아무 소득 없이 맞이한 그 긴긴날은 제가 사업하며 격은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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