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에 나는 이화여중 3학년생이 되었고, 서울 돈암동에서 서대문까지 새벽 버스를 타고 가서 정동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화 교정이 보이고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1960년 4.19 무렵이 되자 정동의 돌담을 끼고 전경버스가 끝없이 늘어서 있더니 어느 순간부터 데모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향하여 최루탄을 쏘아대기 시작하여 교정 안에서도 눈물이 줄줄 나고 수업은 중단되었다. 길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열한 장면들은 모두의 정신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나에게는 6.25 전쟁을 상기시켜주는 사건이었다. 전쟁 당시 우리 가족은 서울서 부산까지 가서 3년간 피난생활을 했다. 그 당시 겪은 트라우마는 1964년에 고국을 떠나 브라질, 캐나다로, 그리고 미국으로 3차 이민을 하며 살아 온 동안 가시지 않고 내 의식의 저변에 침전되어 있었다. 전쟁과 피난, 4.19의 고함과 5.16의 군화소리는 60년간 내가 평화로운 삶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게 되었고 사회적 긴급 상황이 수시로 뉴스로 나오는 것을 듣게 되자 그간 항상 따라다니던 위기의식이 스르륵 녹아내리고 모든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 속에서 모종의 평안을 느끼며 잘 지내고 있다. 대한민국이 코로나 방역에서 세계 일등국으로 등극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지난 주말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가족이 함께 앉아 재검토하기로 했다.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은 어떤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각자 답을 생각하도록 했다.

나의 답은 “팀스피릿-팀워크”였다. 개인의 부족한 점을 극복해 가면서 힘을 합쳐서 ‘함께창조’로 도약하는 것이다. 그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 2년 전 사진

우리 6인 가족은 복잡한 다문화를 구성하고 있다. 1.5세인 할머니 (나), 2세인 딸-아들-며느리, 혼혈아인 손자 손녀 (프랑스계 한국인). 며느리 후보는 두 살 때 백인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한국과 단절되어 미국인으로 성장한 입양인. 프랑스인 (전)사위는 프랑스에 살고 있으며 가부장의 음성적 폭력이 종교와 더불어 전통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구 프랑스 문화권이다.

아주 한국적인 딸과 손자손녀는 5년 전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지금까지 할리우드 부근에서 같이 살며 나와 함께 감성치유를 꾸준히 해왔다. 이제 우리는 평온을 찾고 가족이 함께 헐리우드 오디션을 나가곤 하는데,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집콕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집에서 찍어서 보내는 오디션을 하고 있다. 대단히 정신적 팀워크를 요하는 작업을 해내고 있다. 

프랑스 문화에 젖은 손자 손녀가 1.5세 한국 할머니와 감성적 조율을 하는데 큰 작용을 하는 것은 한국 음식이다. 5년을 나와 살면서 익숙해진 한국 음식 맛.  특히 내가 현미밥을 해서 대형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누룽지를 만들어 놓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다 팔려 버린다.

"할머니, this is really good."

"그래, 누룽지 정말 맛있지."

코로나 집콕 동안 손자 손녀와 일주일에 세 번씩 한국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것을 진행하는 나의 목표는 그들이 할머니의 가치관과 조율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할머니가 이 집의 '여왕 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할머니는 그들의 "엄마의 엄마"라는 말을 항상 듣고 있다. 그런 할머니는 그들을 한국과 연결해 주는 다리라고... 한국은 그들이 빨리 다시 가보고 싶은 선망의 나라이다.  

우리 손주들은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과 나의 외할아버지가 북에서 살다가 돌아가셨고 내가 평양에 여러 번 갔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2015년에 Women Cross DMZ 국제여성평화걷기 행사를 했을 때 나와 딸이 참석하여 판문각을 거쳐 내려왔었다. 그들은 상하이에서 아빠와 비행기를 타고 우리를 보러 오기도 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우리나라가 스위스 같은 영세중립국이 되어 영구히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을 바란다는 식의 말을 나누곤 한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반아 시민통신원  vanak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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