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燃燈)

올해로 불기 2564년이다. 석가탄신일인 초파일(初八日)에 연등을 켜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문헌상의 기록을 보면 연등하는 풍속은 한 무제(漢武帝)가 태일(太一 ,가장 존귀한 천신(天神)의 이름)에게 제사할 때 밤새도록 연등하여 대낮처럼 만들어 놓고 복(福)을 기원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 연등 : 번뇌와 무지로 가득찬 암흑의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빛을 밝혀 자비로 충만한 세상을 열자는 뜻에서 건 등불.

당 현종(唐玄宗) 때 정월 15일에 수많은 등불을 켜고 현종이 연희문(延喜門)에 거둥, 월광분곡(月光分曲)을 연주하게 하고, 김예자(金荔子:과일 이름) 1천 개를 흩어놓은 다음, 궁녀들로 하여금 서로 줍게 하여, 많이 주운 자에게는 홍권녹훈삼(紅圈綠暈杉)을 상으로 내렸다고 한다.

고려의 옛 풍속에는 2월 15일에 등불을 켜놓고 천신(天神)에게 제사하기를 중국 원소(元宵)의 행사처럼 해 오다가 공민왕(恭愍王) 때에 이르러 요승(妖僧) 신돈(辛旽)이 왕에게 4월 8일로 행사하기를 주청, 이날은 석가여래의 생일(生日)이라 하여 연등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습속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2월 15일에 연등하는 것은 석가여래가 2월 15일 밤에 입적(入寂)했다고 한 때문에 등불을 켜놓고 제사하게 된 것이니 곧 부처의 기일(忌日)이고, 4월 8일에 등불을 켜게 된 것은 부처의 생일인 때문이니 불가(佛家)에서는 욕불일(浴佛日)이라고도 한다. 주이준(朱彝尊)의 일하구문(日下舊聞)에, 지금 경도(京都)에서 중들이 염불할 때 팥알을 가지고 그 숫자를 세다가 4월 8일, 즉 부처의 생일이 되면 그 팥을 삶아서 약간의 소금을 넣어 가지고 길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도록 하는데, 이것을 결연(結緣)이라 한다.

우리나라 풍속에도 4월 8일을 욕불일(浴佛日)이라 하여 으레 검은 팥을 삶아 약간의 소금을 넣어 가지고 서로 주고받으니, 곧 결연의 풍속이라고 한다. 석가는 BC 563년 4월 8일(음력) 해뜰 무렵 북인도 카필라 왕국(지금의 네팔지방)의 왕 슈도다나(suddhodana)와 마야(maya)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석가모니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에 의해 자라면서 왕족의 교양에 필요한 학문과 기예를 배우면서 성장하였다. 왕자로서 아주 유복한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의 허무함과 고통에 대하여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날 성문 밖으로 나가 병든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과 죽은 사람을 보고 인생의 괴로움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29세에 성을 나와 진리를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행의 길을 떠났다. 오랫동안 고행과 수도하면서도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여 괴로워하던 그는, 어느 날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았다. 거기서 그는 진리를 깨치지 못하면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사색과 정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부처가 되었다. 그는 인간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제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제자들과 함께 중생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설법을 베풀어 불교를 널리 퍼트리다가 80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리는 초파일을 계기로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무었을 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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