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복지국가의 조건

류창욱 주주l승인2020.05.19l수정2020.05.2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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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서울 한 구청 사회복지법인 이사후보자로 선정된 지 2년 가까이 지나서 법인으로부터 처음으로 면담요청이 왔다. 복지실무자 세 분과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고, 이후 온라인으로도 질문이 와서 고민 끝에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한권을 추천하기도 하였다. 인터뷰는 음식복지와 의료복지에 대한 생각과 더 크게는 복지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복지실무와 관련된 다양한 차원에서의 질문이 이어졌고, 다른 많은 복지실무자들도 비슷한 관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으며, 그 관심의 끝에는 근본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한겨레 1만호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소견(所見)을 간략하게라도 남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 음식과 의료, 그리고 복지

의사는 모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했다. 잘못된 음식을 적절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으로 체질을 바꾸는 근본적인 것이다. 이것은 상식(물리학)이며, 진리이다.

의료제도의 문제도 근본적인 해결이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음식과 주거 등의 다른 복지의 수준이 낮으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음식과 주거 등 다른 복지가 수준 이하이면 환자가 끊임없이 양산되고, 아무리 의료제도가 좋다고 하더라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지속성에 문제가 있다. 또한 특정 국가의 의료제도가 좋다고 하여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같은 성과가 나지도 않는다. 관련된 모든 변수를 똑 같이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복지의 수준이 높고, 그 높은 수준의 특정의 복지형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의료제도가 존재한다면 그 나라는 바람직한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을 예로 들 수 있겠고, 의료 공공성과 공공의료의 비중이 높다는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공성으로 낮은 공공의료의 비중을 일정부분 보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련하여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미국이다. 의료기술은 세계최고의 수준이지만, 의료보장이나 전반적인 국가복지의 수준이 높지 않다. 그런데 더 모르고 있는 부분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도 공공의료의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미국이 우리나라 보다 4배 가까이 공공의료의 비중이 높다. 진료가 수입으로 직결되지 않는 의사의 비율이 4배 가까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굳이 많은 환자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충분한 진료시간을 가지고 과잉검사나 과잉치료를 할 유인이 적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온라인 : 저(低)발전국의 문제

저(低)발전국들이 바람직하게 발전하려면 발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지나온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정치경제학 박사인 홍기빈의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하다. 그는 책에서 복지국가 또한 사회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생겨난 부산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부산물일 뿐이지 복지국가가 사회민주주의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논하려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이 책은 사회민주주의를 쉽게 알 수 있는 역사서이자 복지국가를 만든 과정을 다룬 책이다. 책을 보시기에 앞서 책에 없는 내용을 보완할 필요가 있는데...

영국과 미국의 역사를 봐야한다. 탈규제와 분권화를 강조하는 비(非)조합주의(corporatism) 모델인 영국과 미국은 과거 다른 나라들이 절대왕정과 낡은 정치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선거제도를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제도화하여 경제·사회적 포용성을 보장했다. 이것이 영·미식의 경제체제가 압도적인 경제적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진 정치적 배경이다. 그런데 작금의 세계에서 영국과 미국의 정치 및 경제·사회 체제는 주요 국가들 가운데 포용성이 가장 낮아졌다. 이는 지난 100여 년에 걸쳐 유럽 복지국가들이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통해 정치체제의 포용성을 압도적으로 높여오는 동안 영국과 미국은 배제와 소외를 양산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유지하며 더 이상 경제·사회적 포용성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안주하게 된 것 때문이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나 평등한 자유와 삶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전 지구적인 하나의 연합을 거쳐 하나의 국가로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사회민주주의로 가게 될 것이라 예상해본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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