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배를 만들고 배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바닷가를 많이 돌아다녔다.

자주 가는 곳은 옛날의 선소(船所)가 있었던 곳이었다. 주로 서해안과 남해안에 많은 선소가 있었다.

선소란 배를 만들었던 곳이나 매어두었던 곳을 의미한다.

우리 완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죽청리의 선소, 대야리의 부추언(艀堰), 정도리의 부추언은 지금 우리가 방풍림이라고 하는 바닷가를 말한다.

완도의 정도리에서 옛날에는 이곳에 관한 연말 총회 때 부추림(艀林)에 관한 건을 의안으로 상정할 만큼 중요시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는 배를 만들 때 사용하였던 황장목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회의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장흥의 죽청리 선소자리는(장흥군 관산읍 죽청리 산 26-1번지 일대) 여몽 연합군의 전함을 만들었던 곳(장흥문화원)이고, 조선소 터 위에 도목수의 묘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선소, 부안의 진안리 조선소,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여수의 진남관 앞 중앙동 4거리의 선소(지금은 매립되었음)와 돌산읍 군내리 서외마을의 방탑진 선소 등이 있고, 여천선소유적지는 고려 때부터 배를 만들었던 곳이라고 하며, 임진왜란 때는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광양의 선소, 우이도 선소(영조 21년(1745) 3월), 남해의 선소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1972년 2월 12일 지정되기도 하였다.

제가 남해의 선소를 찾을 때였다. 거기에는 진린도독이 남긴 비가 있다.

▲ 남해군청 홈 페이지

길도 서툴고 선소의 자리도 몰라서 찾은 곳이 남해군청이었다. 관광과를 찾아 문 앞에 섰으나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서있는 시간이 약 10여 초였을 것 같다.

그때 한 사람이 계장 자리에서 일어나 제게로 와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선소를 찾아왔다고 하면서 자료를 요청했다.

그 계장은 자리를 권하고 자료를 찾더니 한 권 밖에 없는데 복사를 해드리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냥 '복사해 드릴게요.' 라고 말할 수도 있었는데, 제 뜻을 물었고, 차는 가지고 왔느냐 지리는 아느냐고 물었다.

잘 모른다고 했더니 공익 요원을 불러서 이 어르신을 안내해 주라고 동행하게 해주었다. 그 고마움을 10여 년이 넘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탐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생각하니 그분이 누구인지도 모른 체 안내를 받았다.

고마움을 전할 길을 생각하다 남해 군수님께 사연을 적은 편지를 했는데 직원 전체회의에서 그분을 앞으로 불러내어 칭찬해주었다고 답신을 주었다.

너무도 고마웠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도 보물섬이라는 남해군의 소식지를 보내오고 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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