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모도(大茅島)

이 섬은 청산도에 속한 작은 섬이다.

1789년에 편찬 된 호구총수에 의하면 강진현의 부속 도서로 되어 있다.

이 대모도를 두고 이르기를, 아침을 먹고 밭에 가면서 퇴비를 한 짐 지고 갔다 오면 점심때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곳 주민들은 예부터 근면 성실하여 논밭으로 개간할 수 있는 땅만 있다면 거리를 따지지 않고 경작을 하였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실제로 고개를 몇 개 씩 넘어가면서 농사를 지었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고구마로 주식을 삼을 때도 있었다. (당시에는 고구마를 삶을 때 어른 몇 개, 아이들은 몇 개씩이라고 개수를 세어서 먹기도 하였던 때가 있었다.)

산의 능선을 따라 동서로 갈리는데 동쪽은 모동리, 서쪽은 모서리라고 한다. 청산도에서 보면 섬이 두 개가 보이는데 하나는 대모도이고 하나는 소모도인데, 소모도는 모도의 본섬 북쪽에 있다고 하여 모북리로 부르고 있으나 '작은 모도'라는 뜻의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청산도에서 보아 섬이 두 개라 하여 두 섬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나, 띠풀이 많다고 띠 모(茅)자를 써서 모도(띠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모동리'는 1620년경에 馬氏, 方氏, 徐氏가 입도한 후 秋氏, 金氏 등이 이주해 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1994년에는 추씨 20호를 비롯하여 51가구에 122명(남자 64, 여자 58)이 살았었고 주업은 자연산 톳과 미역이 주 소득원이었으나 지금은 전복양식 등으로 부(富)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모서리'는 같은 시기에 마씨와 진씨가 들어왔으나, 그의 후손들은 없고 이천 서씨를 비롯한 문씨, 장씨등 73가구 211명(남자 110, 여자 101)이 반농반어로 비교적 풍족하게 살았다.

▲ 하늘에서 본 '대모도' 전경

특히 모서리는 신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였는지 1921년에 '모도원숙'이란 개량서당을 세우고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1923년 9월 청년 14명이 개량서당을 지원할 목적으로 배달청년회를 조직하고 총책이었던 천병섭 외 5명은 이웃 섬인 소안도의 배달청년회와 연대하여, 국권회복을 열망하는 애국가와 혁명가를 보급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25년 1월 월례회의에서 일본인을 비롯한 친일세력과 단절할 것을 결의하였고, 4월에는 일본인들을 응징하는 경찰서 등 관공서를 파괴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그 비밀이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관련 회원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천홍태 애국지사는 1926년 10월 4일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혹독한 고문후유증으로 1927년 6월 18일 교도소에서 순국하였다. 사후에는 그러한 공을 인정받아 1993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이 섬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톳 양식을 하면서 전복을 채취하여 공동으로 분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3년에는 1억9천만 원의 소득을 올려 분배하였다고 한다. 1994년 말에는 한전이 75%, 군 도비 25%로 공동투자하여 자가 발전시설이 들어섰다. 그러나 2004년부터는 해저케이블을 이용하여 24시간 전기를 쓰고 있다.

교통수단으로는 명령항로에 취항하는 새마을호가 전부였지만 승선정원이 45명이어서 낚시객이 많을 때는 지역민은 후순위로 밀려 나가고 싶은 시간에 갈 수가 없는 때도 있었다. 이 섬에 그만큼 낚시 승객이 많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섬사랑 7호'가 06시10분, 15시, 하루 두 차례 배가 다니고 있다.)

 

섬은 모두가 그러하듯 모서리는 당제를 지내고 있으나 모동리는 지내지 않는다.

모서리의 당제는 정월 초하루 저녁 무렵 당집에 올라가 초이튿날 9시쯤 산신과 지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비는 의식을 하고 바닷가로 내려와 갯제를 지낸다.

갯제는 볏짚으로 만든 배를 만들어 그 위에 음식을 차려 놓고 굿을 하며 바다풍년이 들기를 빌고 바다로 떠나보낸다.

이때 제주(祭主)로 선택된 사람은 한 달 전부터 금기를 하고 제사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의 말을 해서도 아니 된다. (꼭 말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손짓으로 의사표시를 함)

제사가 끝나더라도 한 달 간은 궂은일을 삼가지만, 만약 마을에 궂은 일이 생기면 제사를 잘못지내서 라고 생각하고 다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온 정성을 다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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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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