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럼집 중에 “역사의 노도 속에서 민초의 정치학을 외쳐온 김중배의 시평” <민초여 새벽이 열린다> 라는 칼럼집이 있다.

이 칼럼집이 발행 된 것이 1984년 4월이니 무려 31년이 지났다. 그러나 오늘 다시 읽어도 전혀 퇴색되지 않은 번득이는 시대정신과 샤프한 비판은 일그러진 오늘의 현실을 말 하는 듯 감탄이 절로 난다.

참으로 선지적 통찰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평소 존경하던 분과 오월의 마지막 주일 1박2일로 백기완 선생님이 지도 하시는 장산곶매 등산패가 마련한 수련 산행에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날 수련회에는(존칭생략) 백기완 김중배 명진스님 임진택 김세균 이수호 석치순 현상윤 신학림 유초하 기륭전자 해고자들 동양시멘트 해고자들 쌍용차 해고자들도 이외 여러분이 함께 했다.

김중배 선생님의 명성과 경륜을 말 하는 것은 너저분한 사족일터~ 해박한 지식과 공명정대한 언론관, 시민적 철학, 깊은 성찰로 쓰인 정론직필은 이 땅의 독재자와 그 잔당들, 불법 부당한 무리들과 시정잡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고 민초들에게는 불끈 솟는 용기와 힘찬 희망을 불어 넣었던 한 줄기 빛이었다.

8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전설이 된 민중의 새 장산곶 매의 생성과 이어 받아야 할 정신을 포효하듯 강론하시는 백기완 선생님의 열강이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김중배 선생님의 의미 있는 시국 진단 역시 듣는 이의 가슴에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오대산 선재길 을 걸으며~ 소금강 계곡에서~ 나는 선생님께 여쭈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 그렇다고 절망해서는 더 안 되는 세상! 어떻게라도 절망은 짓누르고 희망을 고추세워 좋은 세상 만들어야 되겠는데 그런 새날을 열어 주는 새벽은 올 것인가? 선생님의 칼럼집 제호<민초여 새벽이 열린다>와 같은 예언적 경구처럼 아직 오지 않은 새벽은 언제 오느냐고…….

88년 5월 한겨레 창간 이전 청년시절에 나는 동아일보 애독자였다.

지금이야 수구신문으로 읽기를 거부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나마 동아일보가 깨어 있는 언론이기도 했지만 김중배라는 걸출한 논설위원이 있었고 그가 쓰는 시평 칼럼 [그게 이렇지요]를 읽지 않고는 숙제를 안 한 학생 같이 불안하고 챙겨야 할 소지품을 깜박 잊고 외출한 듯 온종일 찜찜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새벽은 있으리라 계층과 계급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해석은 다르겠지만 새벽을 의미하는 것은 성현말씀이나 시인의 혜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희망 구원 해방 민주...

괴테는 새벽 같은 젊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초에게 새벽은 무엇인가? 정의롭고 평등한 시민사회, 진정 민이 주인인, 부정부패 패거리 없는, 피터지는 경쟁이 아니라 보듬어 안아 주는, 희망을 노래하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30여년전으로 거꾸로 가는 역사 앞에 새벽을 기다리는 민초의 소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수 밖에 없다.

84년 2월 선생님께 일생일대의 통한의 수난이 있었다. 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은 80년 광주 민주항쟁을 총칼로 참혹한 난도질을 하면서 미친개처럼 날뛰었고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언론 길들이기를 시작했는데 <민초여 새벽이 열린다>로 출간된 시평 칼럼 [그게 이렇지요] 역시 그들의 잔인한 칼날 아래 강요된 절필을 당한다.

글 쓰는 이가 붓을 꺾이는 더 할 수 없는 수모와 치욕 속에서도 선생님은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이하게도 새벽의 종소리를 듣는다. 지금은 새벽이다. 그 누가 가로 막아도 태양은 찾아 든다. 동이 트기 전의 하늘은 한때 마지막 어둠으로 멍들뿐이다. 그러나 새벽의 종소리는 그 무렵부터 달려 온다.”

그 이후 그문의 예언대로 민주화의 봄은 찾아 왔고 소위 군부 독재 종식을 의미하는 87년 6.29 민주화선언에 이어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초에게 잠시나마 새벽이 오는 듯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민초가 원하는 새벽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김중배 선생님은 나의 우문에 "장닭이 울지 않아도 새벽은 온다. 짐승만도 못한 자들이 권력을 쥐고 민초를 짓밟고 있다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유례없는 600만 명 서명과 사상 초유의 단식 중단 요구 단식 투쟁이 있었다(유민이 아빠 단식). 흡혈 박쥐는 몸이 아파서 사냥을 못하는 동료 박쥐에게 흡혈을 한 건강한 놈이 빨아 온 피를 나누어 먹는다. 코끼리는 가족이 죽은 장소를 매년 순례한다. 짐승도 이만한데 지금의 위정자들이 짐승만도 못하지 않은가? 얼마 전에 세월호 관련 집회에 참가하거나 지지한 사람 중에 현행법 위반으로 연행, 구금, 구속된 사람이 79명이라면서 이들을 외부세력"이라고 발표한바 있다.

세력이라면 일정한 조직이 형성된 것을 말하는데 자발적 개인 참여자를 세력운운 하는 것도 가관이다. 신자유주의 어원만으로 보면 좋은 느낌인데 이것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격한 반대와 도전을 받고 있지 않은가?

신자유주의는 재난 자본주의다. 재난을 만들거나 재난이 일어나야 먹고 사는 것이 신자본주의 본질이다. 우리가 전설의 장산곶 매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새벽을 기다리는데 이렇게 세상이 어두운 것을 보면 새벽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새벽 동이 트기 직전은 더욱 어둠이 짙은 법! 어찌 새벽이 오지 않겠는가? 나는 우문을 드린 부끄러움과 현자의 현답에 기쁨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선생님은 절필을 당하시면서 쓰신 <민초여 새벽이 열린다>의 마지막 칼럼 “미쳐 못 다 부른 노래”에서 “달은 보이지 않아도 조수를 움직인다. 끈이 이어진 셈이다. 나는 나의 곁을 돌아온 조수를 겨레의 살갗인 양 만지며, 거기 자유와 민주와 정의에의 뜨거운 열정의 눈물을 담아 나의 나라로 돌려 보내려 한다. 미쳐 못다 부른 노래들도 거기 담겨질게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오늘, 서산에 저무는 태양은 아주 저물어 버리기 위해서 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내일, 새롭게 다시 떠오르기 위해서 저물어 간다는 것을 끝내 믿는다”라고 쓰셨다.

선생님은 즉흥적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작금의시련과 고통 저들의 그릇됨은 새벽을 여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라는 명쾌한 현답을 하셨다 31년 전 갖었던 소신이 그대로 한 점 손상 되지도 않았고 가감도 없이 다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1박2일간 오대산 선재길과 소금강 계곡에서 백기완 선생님 김중배 선생님 명진 스님 명창 임진택 소리꾼 이외 많은 분들의 좋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여기에 다 올리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산행 수련회의 소감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낚시를 나갔다가 월척을 수십수 올린 그런 행운^^

알백이 조기를 만선 가득 잡은 어부가 된 듯한 행복한 수련회였다.

갑갑함과 분노의 되새김질로 혹사 당하는 머리와 가슴에 오랜만에 청정 냉수를 공급 받은 기분이다. 이시대의 전설이 되어가는 존경하는 분들이 곁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이분들의 정신과 가르침을 표구속의 박제로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귀감으로 본받아 살고 싶다.

“어둠 속에서도 야경의 파수꾼은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의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새벽이 온다는 걸 외쳐야 한다. 새벽의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민초여 새벽이 열린다> -서문 중에서-

오래 오래 건승하시기를 기원한다.

▲ 소금강 마을 산장에서 장산곶매 강론과 인사 말씀하시는 백기완 선생님
▲ 소금강 마을 산장에서 장산곶매 강론과 인사 말씀하시는 김중배 선생님
▲ 너털 웃음 명진스님
▲ 오대산 소금강 계곡에서 열변하시는 깁중배 선생님

/편집=최홍욱 편집위원

윤명선 주주통신원  goqkd8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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