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 1] : 최초의 낯선 사람

~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부터 ‘나의 살던 고향(故鄕)은...’이란 제목으로, 아득한 옛날(?)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나다가 부모님 손에 이끌려 서울에 올라오기까지 4년 정도의 고향 마을에서의 기억의 편린(片鱗) 조각을 끌어모아 몇차례 기록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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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향수(鄕愁)]

 

위에 전재(全載)한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제목의 시는 가곡으로도 불려져 널리 알려졌는데, 그 내용이 예전 시골마을에서 살던 보통의 한국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려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고향은 충청남도 천원군 성거면 모전리에 자리잡은 ’새터’라는 아주 조그만 마을이다. 지금은 천안(광역)시에 편입되었지만, 내가 태어난 1955년 무렵만해도 전깃불도 없이 초가집에서 호롱불로 밤을 밝히던, 거의 두메 산골과 다름없던 곳이었다.

나의 고향 마을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만 2살 정도의 아장아장 걷던 유년시절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 지금에도 기억나는 그 최초 유년시절의 기억의 편린(片鱗)조각을 더듬어 기록해본다.

 

[기억의 조각 1] : 최초의 낯선 사람

우리집은 원래 ‘새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핍말’이란 좀더 큰 동네의 할아버지 댁에서 살다가 분가하여 독립한 부모님이 사시던 초가 삼간으로, 전형적인 시골 농가(農家) 구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봄날로 기억되는 따스한 어느날, 나보다 13살 위의 큰누님과 두세 살 정도로 추정되는 내가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빈집에서 놀고 있을 때, 중절모를 쓰고 가죽가방을 든 어떤 늘그수레한 아저씨가 갑자기 집을 방문하셨다. 그리고 가방에서 무슨 서류봉투 같은 것을 꺼내 “집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을 하면서 큰누님에게 전달하고는 나가셨다.

거의 발가벗고 이방 저방 다니며 숨어있는 큰누님을 찾아다니며 놀던 나는, 그 당시 큰누님 옆에 멀거니 서서 낯선 이를 맨 처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는 경험을 해서 (거의) 최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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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허익배 주주통신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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