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셨다는 소식 엊저녁 접했습니다. 먹먹해지더군요. 뒤숭숭해지고요. 여행에서 돌아온 참이라 많은 일이 밀렸는데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남북 양쪽에서 ‘간첩’이 되고 사형을 다섯 번이나 구형 받고도 구순에 이르셨으니 짧지 않게 사셨습니다. “나, 이대로 못 죽어. 통일되기 전엔 억울해서 못 죽어” 하셔놓고 어찌 눈 감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평화와 통일에 조그만 힘이나마 선생님 몫까지 보태겠습니다.

올해 제가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는 선생님 뵙고 온 것이군요. 지난 1월 설을 며칠 앞두고 불현듯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돌아가신 뒤 눈물 흘리며 명복 비는 것보다 살아생전 웃으며 한 번이라도 찾아뵙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 거죠. 팔순을 앞둔 윤영전 선생과 칠순을 넘긴 한상렬 목사와 함께 찾아뵀을 때 숨을 좀 가쁘게 쉬면서도 열변을 토하셨는데...

▲ 2008년 저서 <민족의 형성, 분열, 통일> 출판기념회 때의 김낙중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고문. 사진 에큐메니안 제공(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지난 20여년 선생님과 이어온 인연 떠올리며 밤새 뒤척였습니다. 선생님에 관해 쓴 글 몇 편 다시 꺼내봤습니다. 여기저기 실렸던 선생님 관련 기사도 다시 찾아봤고요. 2008년 “존경하는 간첩 김낙중”이란 제목으로 제가 쓴 글과 2014년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에서 선생님과 대담한 기사를 제 지인들과 공유하겠습니다.

이 글 쓰고 있는데 조금 전 선생님 카톡으로 아드님이 부고를 보냈군요. 지난달 말 “내 아들 김선혁 고려대 교수에게도 이교수님의 글들을 직접 보내주시기를 부탁합니다”라는 선생님의 ‘부탁말씀’ 아래로요. “코로나19 상황으로 조문은 정중히 사양합니다”고 했지만 조금 이따 찾아뵙겠습니다.

2020년 7월 30일, 재봉 드림.

 

“존경하는 간첩 김낙중”
http://blog.daum.net/pbpm21/15(이재봉의 평화세상)

“간첩 김낙중, 사형선고만 다섯 번…후회하지 않는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13566(2014년 1월 31일 인터뷰 기사)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이재봉 주주통신원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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