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은 결국 산을 옮겼는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산을 옮겼다고 생각하고 제목을 지었나요?"
"아직은 미완입니다. 그래서 진행형이죠."
 
지난 6월 20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 윤태영 작가의 신작, <바보, 산을 옮기다>의 독서모임이 있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이 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86년에 졸업을 하고 딱히 할 일이 없어 결혼부터 했는데, 이렇다 할 기술도 없고, 학생운동 했다고 취직도 안돼서 결국 집에서 주로 번역을 하며 지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은 야권의 분열로 결국 '6월 혁명'이 되지는 못했다. 그 반쪽의 승리를 이어받은 88년 총선은 야당이 대승을 거두며 국정감사 제도를 부활시키고, 보좌진도 대규모로 충원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전 총리가 초선의원으로, 유시민 전 장관, 이광재 전 지사, 안희정 지사가 초임 보좌관으로 여의도에 등장했다.
 
"저도 그 시기 다른 의원의 비서로 들어갔는데, 노무현 의원님이 국회 대정부 질문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멋있어서 꼭 한번 만나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인연이 닿기를 바라며 노무현 의원실에서 보좌관 친구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노 의원이 나타나서 다짜고자 친구에게 큰소리로 욕을 했단다. 자유주의자이던 그 친구가 며칠간 무단 결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그 친구도 노 의원에게 욕을 하면서 맞받았단다.
 
거센 부산 사투리가 욕설로 들린 것이다.
"그만큼 의원과 비서 간에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였던 거죠."
 
당시 노무현 의원실의 자유로운 분위기, 노 의원과 함께한 자유로운 토론, 며칠밤을 지새우는 팀워크 등은 다른 의원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의원 보좌진 하다가 당에서도 일하는 등 정치 4년을 딱 해보니까 정치랑 성향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여기서 철수하자고 생각했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당시 영업부장으로 출판사에 가 있던 안희정 현 충남지사의 권유로 출판사에 입사하게 되었죠.”
 
안희정 지사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입사를 결심했지만, 안희정 지사는 그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사해, 당시 부산에서 낙선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출판사에 근무하게 된 그는 '노무현의 책을 내면 잘 팔릴것 같아'서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에세이 <여보, 나좀 도와줘>에 합류했던 작가가 정치적 분야 서술에 한계를 느끼게 되어 경험이 있는 윤 전 대변인이 대타로 투입됐다. 그 때부터 고 노무현 대통령과 윤 전 대변인은 지속적인 교류로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너무 솔직해서 좋았다. 보통 부끄러운 부분, 숨기고 싶을 이야기도 다 가감없이 보여주는 분이었다."
 
"그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정말로 왜 그렇게 솔직한 걸까? 왜 꼭 솔직해야 되는 걸까?"
 
"의도적인 게 아니라 천성인 것 같아요. 머뭇거림 없는 솔직함."
 
'존경하던 노 의원을 위해서 한번 봉사를 해보자'고 생각하며 무작정 뛰어든 대선의 판세는 불리했다. 모두가 이인제를 외치던 시절이었다. '우린 안 될거야'라는 마음으로 출발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의 대변인에 올라 있었다.
 
"리더 옆에는 항상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글을 쓰는 것은 굉장히 성공에 유리한 기술입니다. 왜냐면 리더에겐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정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리더의 생각과 살아온 궤적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해요."
 
의도적으로 마감시간에 맞춰 글을 내서, 미처 원고를 고칠 새도 없게 하던 윤태영 대변인의 '꼼수'도 고 노무현 대통령에겐 통하지 않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윤 전 대변인이 연설 전날 제출한 글에 "이건 자네 글이지, 내 글이 아니네"라고 거절 의사를 분명히 해, 밤을 새워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글을 공부해 다시 연설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분열의 아이콘였던 신자유주의자. 4대개혁입법 중 단 하나도 성사시키지 못한 무능한 지도자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 하지만 그만큼 '국민을 위한' 개혁적 화두를 던지는 정치인은 역사상 없었고, 지금도 없다.
 
바보! 미처 산을 옮기진 못했다.
 
하지만, 우공의 산도 늙은 우공과 대대손손 뜻을 함께해 나갈 후손들의 굳은 의지에 감동한 신선이 도와 결국 옮겨졌다는 전설이 있다.
 
산은 서서히 옮겨지고 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
 
석가의 말씀을 전한 아난존자는 모든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6년 전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뜻일 말과 글을 이어받은 많은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 움직인다면, 바뀐다! '사람사는 세상'으로.
 
국민공부모임 [경연]은 어느덧 113회차를 맞는다. 오는 7월 4일 모임은 '오리 이원익 대감'이 주제다. [가라오케근현대사]를 열강 중인 배기성 IB&IGCSE 국제교육컨설팅 대표 겸 신촌대학교 문리대 학과장이 강연자로 나선다.
 
 
편집 : 김유경 편집위원
이대원 주주통신원  bigmot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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