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이 어머니

                        - 이 기 운

 

범이 외할아버지는 일찍 상처하여 깊은 산에 들어가
어린 남매 둘 키우며 홀로 살았다
어쩌다 기생출신 여인을 만났으나
버선발에만 신경 쓰고 양담배만 피워대니
사뭇 아이들 걱정되어 헤어지고 말았다
 

십리 밖 버덩말에서
삼굿하는 날이면
어린 남매 산속 집에
밤늦도록 남겨두니
범인지 무슨 산짐승이
퍼런 불 번쩍이며
사립문 흔들어대고
누나야 무서워
동생아 나도 무서워
이불 뒤집어쓰고 숨죽이던
양구 어느 산골


산비탈 복사꽃
비에 젖는 봄날
얼굴 바알간 열여섯 살 누이는
아버지 따라 사흘 걷다가
버스타고 또 걷고 걸어 일주일
충청도 어느 산골에 보내져
낯선 남자 각시가 되었네
반딧불이 같은 설렘도 꺼지고,
명절 같은 기쁨도 지나가고
글 모른다 무시 받고
착해서 모욕당하던 기나긴 날들
그리워라 그리워라
늦게까지 아버지 안 오시던
캄캄한 그 밤이 그리워라


보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곳
꽃피던 그 산골 눈에 어려도
어드멘지 찾아갈 수 없네
상처를 덮어가며 살아온 날들이
염색한 흰 머리칼 같네
이제는 검버섯 가득한 얼굴, 범이 어머니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이기운 주주통신원  elimhill@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