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내를 외출할 때면 가끔 서두르다가 마스크를 빠뜨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아차’ 하고는 다시 현관문 비번을 누르곤한다. 이제 코로나19로 마스크쓰기가 일상화되고, 혼밥(=혼자 밥먹기)과 혼술(=혼자 술마시기)과 혼놀(=혼자 놀기), 혼커(혼자 커피마시기)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고 비대면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개인주의가 극대화되고 신경이 날카로와지다 못해 타인에 대한 혐오와 공감력 부재가 우리 모두를 짓누르는 비정상적 생활이 정상처럼 보이게 되는 부작용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며칠전, 1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다가 두 번이나 중간에 아래층 이웃들과 마주치는 상황이 되었는데,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시선을 회피하며 마스크 침묵 속에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아주 길게만 느껴졌다. 분명히 올해 2월까지만해도 먼저 탄 사람이나 나중에 타는 사람이나 서로 가볍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거나 목례(目禮) 정도는 교환하던 이웃들이 마스크를 쓴 상대를 애써 외면하게 될줄이야!

이것은 약과(藥果)라 할수 있고,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승차장에서도 서로를 경계하게되고, 승차해서도 앉으려는 자리도 살피게되는 침묵속의 휴대폰 ‘열공’이 더욱 심화되는 느낌이다.

오늘자(~8.17일) 한겨레 신문 21면에 프로파일러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만나지 않는 세상의 특별함’이란 칼럼을 읽었다. 그 내용 중에 심히 공감되는 대목이 있어 옮겨본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시선 접촉으로 습득해야하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심각하게 결손될 가능성이다. ~ (중략) ~ 특히 타인과의 시선 접촉은 인간의 고등 정신작용, 그 중에서도 공감능력을 발달시키는데, 바로 이러한 공감이야말로 본능적인 폭력성을 억제하는 매우 중요한 기제가 된다. 디지털 세상이 계속되면 이런 찰나의 (상대 감정의)변화를 읽지 못하는 공감능력이 부재한 ‘감정문맹’이 많이 탄생할까 걱정이다.~”

 

어제 외출후에 귀가하면서 1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 올라가려는데, 남매로 보이는 두 아이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더니 누름단추를 누르려다가 멈칫하고는 그냥 올라가는대로 내버려두길래, 일부러 아이들 얼굴을 봤더니 바로 올해 1월 중순경에 이사온 옆집 젊은 부부 아이들이다. 이사온 다음날 인사차 떡을 아이들에게 들려보내서 몇학년인지 물어본 기억이 있어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언제 개학하는지 물었더니 다음주 초에 개학한단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씩씩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보인다.

~부디, 어서 전세계적 돌림병(=팬데믹?)으로 인류의 재앙이 되어버린 코로나19의 난국에서 벗어나, 엘리베이터와 길거리, 버스정류장, 지하철 승차장, 산책길, 식당과 까페 등지에서 마음놓고 웃는 표정으로 시선과 몸짓을 주고받는 일상사가 다시 전개되기를 두손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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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태평 편집위원

허익배 편집위원  21hi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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